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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의 Money-Flix]'기생충' 혹은 낙수효과의 허상에 대한 봉준호식 까발림경제적 계층구조가 가진 문제점의 원인과 우회적 비판을 위한 설정들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공개 2019-06-03 10:24:18

[편집자주]

많은 영화와 TV 드라마들이 금융과 투자를 소재로 다룬다. 하지만 그 배경과 함의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는 참인 명제다. 머니플릭스(Money-Flix)는 전략 컨설팅 업계를 거쳐 현재 사모투자업계에서 맹활약 중인 필자가 작품 뒤에 가려진 뒷이야기들을 찾아내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려 한다.

이 기사는 2019년 06월 03일 10: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 이 칼럼에는 영화 '기생충'에 대한 스포일러가 없습니다. 단 영화의 예고편에 나오는 몇몇 장면들을 다루고있으므로, 1, 2차 예고편을 보시고 읽으시길 권합니다.

"도대체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것이 어느 정도 큰 일인가요?"

식사 자리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 지난해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본 사람은 커녕 그 제목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것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한국 영화 역사 100년만에 처음 받는 상이라지만, 어떤 이들에겐 언론의 대서특필이 호들갑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손흥민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헤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을 우승시킨 후, 발롱도르 상을 받은 상황"이라고 대답을 하니, 듣는 이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논란이 된 '지난 1년동안 제작된 세계의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는 청와대의 축전 역시, 황금종려상의 위상을 쉽게 설명하려는 맥락에서 나온 다소 부적합한 표현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맞아 보이는 이유다.

재밌는 것은 청와대 축전과 관련된 헤프닝이, 지난해 황금종려상을 받은 일본의 고레에다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万引き家族)을 둘러싼 논란과 묘하게 비견된다는 사실이다. 국내에선 17만 여 명의 관객을 동원해 1UBD(엄복동)에 그친 '어느 가족'은, 노부부가 사망했음에도 그들의 연금을 계속 받아 생활하다가 체포된 자녀 가족의 뉴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영화다.

영화는 혈연 관계가 없는 6살부터 70대까지 다양한 나이의 소외된 이들 6명이 유사 가족이 되어 함께 살며 겪는 사건들을 통해, 선진국 일본의 어두운 이면을 적나라하게 들춰냈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황금종려상 수상에도 아베 총리는 아무런 축전을 보내지 않았다. 평소 일본인의 해외 수상 소식이 있으면 불이 나게 축전을 보냈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일부 일본의 정치인들은 "일본에는 그런 가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까지 했다. 미국의 할리우드 리포터, 프랑스의 피가로 등이 관련 기사를 통해 이런 상황을 맹비난하면서, 확대되고 있는 일본 내의 소득불평등과 그에 따른 문제들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아베노믹스의 어두운 단면이라고 비꼬았던 이유다.

주목할 것은 '기생충'이 '어느 가족'과 이란성 쌍둥이 같은 영화라는 점이다. 확대되는 소득불균형에 따라 소외된 계층의 가족이 겪는 사건을, 한 영화는 매우 사실적인 드라마로 다른 한 영화는 매우 극적인 블랙코미디로 다루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와대가 '기생충'에 축전을 보냈다는 사실은 일본과는 달리 이런 문제 의식에 공감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기생충
한국 사회의 경제 계층간의 갈등 구조를 우화적으로 그려낸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그렇다면 '기생충'은 그런 문제 의식을 얼마나 훌륭하게 영화 속에 녹여내었기에 황금종려상을 거머쥘 수 있었을까? 그 답은 극장에서 영화를 먼저 관람을 하고 난 후, 이 영화에 대한 몇몇 심도 깊은 리뷰들을 읽어보며 찾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다만, 이미 예고편 등을 통해 공개된 몇 가지 힌트들에 대해서는 알아두는 것이 영화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 하다.

그 중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영화가 한국 사회의 경제적 계층구조를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방식이다. 기택(송강호 분)가족이 사는 반지하 집, 박사장(이선균 분)이 사는 고급 단독주택 그리고 그 집들의 안과 밖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계단들은, 매우 직관적인 상징성을 가지고 있어서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쉽게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리뷰들이 주목하지 않는 힌트가 하나 있는데, 바로 폭우다. 예고편에도 등장하는 것처럼 영화 후반부에 폭우가 내리고,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은 고급 단독주택을 거쳐 도로를 타고 가다 계단과 축대 아래 기택이 사는 동네로 세차게 흘러간다. 기택과 그 아들 기우(최우식 분) 그리고 딸 기정(박소담 분)은 그 폭우를 맞으며 집으로 간다.

그리고 그들이 반지하집에 도착해 맞닥뜨리게 되는 엄혹한 현실은, 영화의 클라이막스로 등장인물들을 이끌고 가는 역할을 한다. 봉준호 감독은 이런 설정을 통해 IMF에 의해 2015년 공식적으로 폐기됐으나 여전히 우리 사회를 유령처럼 맴돌고 있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까발린 것이다.

계단과 물, 이 두 가지와 함께 관객들이 주목해야할 또 하나의 힌트는 돌인데 이는 안타깝게도 스포일러 없이 언급할 수 없다. 다만 관객들 상당수가 가슴에 돌덩이 하나를 얹고 극장을 나서는 듯하게 느꼈다는 사실만은 꼭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아무리 블랙코미디라 하더라도, 지독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목도하는 일이란 쉽지 않은 것임을 증명하는 사례가 아닐까 한다.



'기생충' 1차 예고편:https://www.youtube.com/watch?v=jBdRhhSt3Bc
'기생충' 2차 예고편: https://www.youtube.com/watch?v=Q38h5XD4RKE
'어느 가족'예고편: https://youtu.be/LtrkFLwfb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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