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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에 대한 경제적 학대와 금융의 역할 [WM라운지]

배정식 KEB하나은행 신탁부 리빙트러스트센터장공개 2019-10-04 10:28:40

이 기사는 2019년 10월 01일 10: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휠체어를 타고 조력자와 함께 은행을 방문하는 고령 고객들이 점점 늘고 있다. 치매와 고령으로 다른 사람의 조력이 있어야만 활동이 가능한 A씨(88세)도 그러했다. 그런데 A씨는 어느 날 간병인과 함께 와 자신의 예금을 모두 해약하겠다고 했다. 창구에 있는 은행원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요양원에 거주하고 있는 B씨(81세)는 먼 친척이라고 우기는 사람이 와서 자꾸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외롭게 살던 아파트에서 말벗이 돼줬던 이 사람은 요양원에서 B씨의 친척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B씨와 면담을 한 요양원 원장이 고민을 알게 되었다. 요양원 원장은 어떻게 해야할까. 이처럼 사회구조가 고령화 되면서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문제로 고민하는 어르신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서 국가의 복지정책을 구현하기 위한 예산규모도 늘고 있다. 정부가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한 2020년 예산규모는 513조이며, 작년 대비 증가분 40조의 절반가량이 복지사업에 투자된다고 한다. 복지 예산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2010년 27.7%에서 2019년 34.3%로 증가했고 내년에는 35%를 넘는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화 등으로 인해 등장하는 복지문제를 모두 국가예산으로만 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가족구조가 변화하고 부양기능이 약화되면서 노인학대의 문제도 간과해선 안된다. 노인복지법에서는 노인학대를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성적 폭력 및 경제적 착취 또는 가혹행위를 하거나 유기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노인학대의 행태적 분류 중에서도 근래에는 정서적 학대와 경제적 학대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고령의 노인에게 발생하는 경제적 학대는 다른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왜냐하면 회복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절망감과 자살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적 학대이후 정부의 지원은 우리 사회 부담으로 이어지게 된다.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의 기준에 따르면 경제적 학대를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번째는 노인의 소득 및 재산, 임금을 가로채거나 임의로 사용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재산에 관한 법률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재산 사용 또는 권리에 대한 결정을 통제하는 것으로 나눠진다.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고령자에게 발생하는 금융피해 및 금융사기까지 경제적 학대의 범위에 포함하고 있다. 일본은 고령자의 재산을 부당하게 처분하거나 부당하게 재산상의 이익을 얻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가 진행된 나라들의 경우 경제적 학대가 정서적 학대와 더불어 가장 많이 증가하고 있다 한다. 특히 연금에 의존하는 고령자가 증가하면서 그 비율이 느는 추세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매년 6% 이상 경제적 피해를 보고 있다고 추정된다.

우리도 물리적인 학대나 착취의 개념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노년의 행복을 위해서는 경제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여러 연구자료에 의하면 선진국에서는 별도의 인권법을 제정하여 노인학대에 대한 신고의무부터 다양한 대응방안을 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 가운데 경제적 학대로 의심되는 경우 주요 신고의무자에 금융기관도 포함시키고 있다. 일본 역시 누구나 시군구에 신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호주와 같은 경우는 금융기관에게 상당한 피해보상 규정까지 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금융현장에서 현재의 경제적 학대에 대응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 역할들은 무엇이 있을까? 경제적 학대에 대한 대응책으로 4가지 정도를 제안할 수 있다.

첫째는 영미, 일본 등 선진국에서 활용하고 있는 신탁제도를 적극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신탁은 원래 중세 유럽, 전쟁에 나가는 성인남자가 자신의 재산을 믿을만한 친구나 교회 등에 맡기고 살아돌아오면 다시 되돌려받고, 전쟁 중에 사망하면 자신의 어린 아들이 성년이 되면 돌려주도록 하는 제도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신탁은 단순한 금융상품이 아니라 재산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계약이고 플랫폼이다. 부동산 분양 역시 신탁제도를 통해 수분양자의 권리를 보호하며 퇴직금 등도 신탁으로 관리하고 있다. 또한 상속제도와도 결합돼 생전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관리하거나 사용하다가 사후에 자신이 지정한 사람 또는 기관에 이전하는 유언기능도 있다. 이런 기능을 적극 활용해 고령층 또는 장애인들의 재산을 맡아 관리하다가 사후에 원하는 곳에 집행하는 구조를 통해 경제적 학대를 적극 예방할 수 있다.

위의 사례들 역시 신탁을 통해 재산을 관리하고 노후에 필요한 자금을 신탁에서 관리 후 지급하는 방법을 통해 근심을 상당부분 덜 수 있을 것이다. 치매안심신탁이나 유언대용신탁 등을 결합하여 하나의 계약을 통해 노후의 재산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다.

둘째는 금융기관은 창구에서의 지급관리에 대한 보편적인 매뉴얼이 정립될 필요가 있다. 경제적 학대로 의심되는 경우 몇 가지 체계적인 질문을 통해 업무를 처리하고, 기준에 부합되지 않을 경우 거절하거나 전문기관 등에 의뢰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고령화에 따라 치매인구는 증가하고 있다. 75만으로 추정되는 65세 이상의 치매판정인구 외에도 약 170만명 이상 추정되는 경도인지장애까지 감안할 때 이젠 우리도 별도의 관리 메뉴얼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셋째는 금융기관과 노인보호전문기관과의 유기적인 협업이다. 금융기관에서 초기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전문기관의 후속조치가 원활해야 금융기관의 창구에서도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학대를 통해 회복이 불가능한 고령층이 늘면서 국가의 부담은 늘게 될 것이다. 사회적 부담을 덜기 위해 우선 보유하고 있는 재산이 고령층의 노후를 위해 쓰일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일정 범위내의 세제혜택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일정 금액까지 치매신탁에 대한 세제감면효과를 통해 관심을 제고하는 것이다.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

한양대 경제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수료, 서울대 금융법무과정(신탁법)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금융투자 전공10기) 졸업
[저서]'신탁 상속'(재산 분쟁 없는 희망 상속 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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