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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CJ, 대그룹의 제약바이오 도전 왜 실패할까 미래사업 '낙점'에 과감한 투자 불구 현실 벽 높아

구태우 기자공개 2019-11-11 07:10:00

이 기사는 2019년 11월 08일 07:1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미래 성장을 담보할 바이오 사업에 전력을 다할 것"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2009년 전 계열사 임원이 참석한 경영전략회의에서 한 말이다. 한화그룹의 바이오 사업은 2000년대 후반에 들어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내 최초로 암세포만 골라죽이는 신약(항체 치료제)을 개발한 것도 이 때였다.

김 회장의 지시가 있은 후 그룹의 바이오 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오송생명과학단지 내 바이오 생산시설이 지어졌다. 2012년부터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 바이오시밀러(복제약)의 임상시험 성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김 회장은 재계 오너 중 바이오 사업에 대한 의지가 유독 강했다. 한화그룹은 1996년부터 바이오 사업을 시작해 무려 20여년 동안 이어갔다. 하지만 현재 한화그룹에서 바이오 사업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다.

제약바이오 사업은 국내 대기업의 '무덤'이라 불릴 정도로 실패 사례가 수두룩하다. CJ그룹과 롯데그룹, 아모레퍼시픽 등 유수의 기업들이 바이오 사업에 뛰어들었다 손을 털고 나왔다. 포스코는 지난해 미래 사업으로 바이오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불과 1년 여 만에 이를 잠정 연기하기로 했다. 포스코가 바이오 사업 진출 계획을 밝히면서 대그룹의 바이오 사업 도전기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한 때 바이오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릴 정도로 촉망받았다. 고령화와 기후·환경 변화 등으로 건강한 삶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고, 바이오 산업(유전자, 단백질 등 생체물질로 만든 약물 치료제)은 미래 핵심 사업으로 부상했다. 제조업에 한계를 느낀 대그룹들은 바이오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낙점했다.

대그룹들이 바이오 사업을 시작한 인과관계는 비교적 단순하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바이오 사업은 대그룹의 신성장 동력으로 꼽혔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2007년 바이오 사업을 발굴하라고 주문했다. 세계 의약산업 시장 규모가 향후 10년 내 2배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바이오 산업 관련 규제 개선 등 범정부적인 지원책도 함께 마련됐다.

'블록버스터'급 바이오 의약품의 특허가 2013년 전후로 끝나는 점도 한몫했다. 기존 의약품과 성능이 동일한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기대됐다. 바이오시밀러 개발 비용은 기존 의약품의 1/10 수준인데 성공률은 10배 이상 높다. 개발 기간도 오리지날 의약품의 절반 수준이다. 바이오 사업은 진입 장벽이 높지만, 제품 수명 주기가 길어 안정적인 수익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다.

2000년대 이전부터 바이오 사업을 준비했던 한화와 CJ, 롯데 등은 경쟁적으로 바이오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한화그룹은 바이오시밀러 개발 중 복병을 만났다. 한화케미칼이 개발 중인 다빅트렐의 오리지널 약품인 엔브렐 특허는 2012년 만료될 것으로 예상됐다. 오리지널 약품의 특허가 2028년으로 연장되면서 바이오시밀러의 상용화 시기도 늦춰졌다. 오리지널 의약품 한 개 당 다수의 특허가 등록돼 있다. 때문에 바이오시밀러 업체와 오리지널 업체의 특허 분쟁이 복병으로 부상했다. 수 년 동안 막대한 투자금을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쏟았는데, 매출화할 시기가 무한정 연기된 셈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석유화학 시황도 크게 악화됐다. 2012년부터 석유화학 시황이 크게 악화되면서 영업이익이 급감했다. 2014년 영업이익률은 1% 미만으로 주저 앉았다. 주력 사업에 집중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당시 한화그룹은 주력 사업인 화학 분야와 방산 분야를 집중 육성하기로 하고 삼성그룹에서 4개사(삼성토탈·삼성종합화학·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를 인수했다. 2조원 규모의 인수대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불투명한 바이오 사업을 이어갈 여력이 없어졌다.

한화그룹은 2015년 바이오 사업을 매각했다. 바이오 사업은 20년 동안 이어졌지만, 한차례도 수익을 내지 못했다. 비핵심 사업을 매각한 대금은 주력 사업에 투자할 종잣돈으로 쓰였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바이오 산업 특성상 상업화까지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은데 장기간 투자를 이어가기에는 본업의 업황이 악화되면서 여력이 없었다"며 "전문 회사가 바이오 사업을 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 사업을 접었다"고 말했다

CJ그룹이 제약바이오 사업을 접은 이유도 한화그룹과 대동소이하다. CJ헬스케어는 바이오 사업에 진출해 연간 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다수의 바이오시밀러가 임상시험을 통과해 시판됐다. 30여년을 바이오 사업에 매달린 끝에 중견제약사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바이오 사업은 CJ그룹의 주력 사업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CJ그룹은 2017년 CJ헬스케어를 한국콜마에 매각했다. 삼성과 SK 등의 바이오 사업과 비교해 성장세가 둔화됐고, 의약품 사업의 수익성이 악화된 점이 매각 요인이다.

대그룹들은 바이오 사업에서 제조업의 '희망'을 봤지만, 시장의 키 플레이어가 된 기업은 극소수다. 지난 10년 동안 국내 바이오 시장은 2배 이상 커졌다. 하지만 한화와 CJ 등 초창기 두각을 나타냈던 대그룹들은 바이오 사업에서 철수했다. 삼성(삼성바이오로직스)과 SK(SK바이오팜 등) 등 소수 대그룹들이 바이오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대기업들이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바이오 사업에 나섰지만, 신약 개발에 10년 이상이 걸려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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