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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 아산 정주영 레거시]정주영의 ‘새 봄을 기다리며’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19-12-11 08:00:00

이 기사는 2019년 12월 11일 08: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아산은 1977년 2월에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에 선출되었다. 1987년 2월까지 5선 연임해서 10년을 봉직했다. 경제계를 위해 관, 정치권과의 마찰을 마다하지 않았다. 문제는 1981년 2월이었다. 서슬이 퍼랬던 제5공화국 초기였다. 아산은 정권이 전경련 회장직을 내놓으라고 한 압력에 맞서서 결국 전경련 회장에 재선임되었다.

그 무렵 아산은 서울신문에 ‘새 봄을 기다리며’라는 제목으로 글월을 한 편 발표했는데 당시의 심경도 잘 반영되었겠지만 매우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글이다. 중반에 사무실 이야기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되었다가 다시 앞의 조용함을 되찾는다. 마치 ‘이별의 곡’이라고 부르는 쇼팽의 연습곡 10-3번을 듣는 것 같다. 이 글은 아산이 직접 남긴 몇 안 되는 귀중한 서면 유산이다.

아산은 생애도 드라마틱했지만 언행도 좋은 의미에서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재미있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회고담에서 나타난다. 교류하는 사람들의 종류도 매우 다양했는데 문인들도 포함되었다. 이 글도 아산의 그런 성격의 단면을 보여준다. 일단 당시와 같은 타이밍에 이런 글을 써서 발표까지 한 것 자체가 반전이다.

생각이 많은 사람이 대개 인간성이 풍부하고 성품이 재미있다. 언행의 반전은 거기서 나온다. 단서를 찾아보니 아산의 회고록에 이런 말이 있다.

“누군가가 서양의 점성술로 알아보니 나라는 사람은 듣기에 따라서는 아주 ’한심한‘ 인물이라고 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내가 태어난 별자리의 사람은 항상 너무나 생각이 분주하고 바빠서, 생각이라는 것이 잠시도 한자리에 멈춰 있지를 못한다고 했다..나는 잠잘 때 빼고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에는 거의 끊임없이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 생각을 해야지 하고 의지로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스스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고 하는 말이 맞다.“ (이 땅에 태어나서, 160~161)

아산은 가정 형편과 유년기의 시대적 상황 때문에 학교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다. 1930년에 고향에서 송전소학교를 (차석으로) 졸업한 것이 다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이 많은 사람이면 학교와 관계없이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지게 되고 알고싶어하는 것이 당연하다. 독서는 물론이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지식을 스폰지처럼 흡수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많은 혁신적 사업계획이 나왔을 리 없다. 사람은 아는 만큼 좋은 생각이 떠오르고 가지고 있는 정보의 양과 질이 창의성을 결정하는 법이다.

그렇긴 해도 아산은 학교에서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평생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철인 아산이 아래와 같은 술회를 하는 것을 보면 약간 숙연해지고 찡해기까지 한다.

”내가 학식이 없는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학식이 없다고 해서 생각도 머리도 지혜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한 인간이 가진 자질과 능력에 대한 평가를 학교에서 배운 학식의 부피나 깊이만으로 내린다는 것은 크나큰 오류이다.“ (위의 책, 233)

아산은 1969년 4월 8일 지금의 울산대학교 전신인 울산공업학교 설립을 필두로 많은 교육사업을 했고 1977년 7월 1일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해 국내외에서 학술을 지원하고 장학사업을 벌였다. 울산대학교 홈페이지에는 창학정신으로 아산의 설립사가 걸려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해내는 법이다. 젊은 시절, 어느 학교 공사장에서 돌을 지고 나르면서 바라본 대학생들은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나에게는 한없는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때 이루지 못했던 배움에 대한 갈망이 여기에 배움의 주춧돌을 놓게 하였으니, 젊은이들이여! 이 배움의 터전에서 열심히 학문을 익혀 드높은 이상으로 꾸준히 정진하기 바랍니다.“

아산이 돌을 나르던 곳은 지금의 고려대학교인 보성전문학교 교사 신축공사장이었다. 1933년이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62년 후인 1995년 3월 고려대는 아산에게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필자의 서울대학교 동료 교수 한 사람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미국 존스홉킨스대에 유학 중이었다가 환율 폭등으로 짐을 싸서 귀국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데 마침 학교에서 아산스칼라십 혜택을 주었다. 원래는 유학생들에게 적용되지 않는 것이었지만 상황이 워낙 예외적이어서 가능했다고 한다. 아산의 장학금이 없었다면 지금 탁월한 서울대 교수 최소한 한 사람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래는 아산의 글이다. 아산사회복지재단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이다. 과연 학력과 공력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것임을 알게 해 준다. 원문에는 한자가 많이 들어있는데 한자를 다 지우고 리마스터링해 보니 아래와 같이 산뜻한 글이 새로 나타났다. 상당히 길지만 독자들은 눈으로만 읽지 말고 스크롤 압박을 극복하면서 찬찬히 한 번 읽어 보시기 권한다. ’불도저‘라고 불리기도 했던(아산은 이 별명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했던 것 같다) 아산의 새로운 면모가 느껴질 것이다.

정주영, 새 봄을 기다리며
(서울신문, 1981. 2. 25.자 칼럼 리마스터링)

창밖으로 내리는 부드러운 함박눈은 오는 봄을 시새는 것인가. 예로부터 입춘 지나서 오는 눈은 꽃을 시샘하여 내린다 하여 꽃샘 눈이라고 부른다.
초봄의 여신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마음속에 흐뭇하게 안겨준다. 인왕산 골짜기엔 해빙의 물소리가 졸졸 흐르며 삼라만상을 에워싼 대기에는 약동하는 새봄의 기운이 서렸음을 알려준다. 춥고 지루하던 겨울은 지나가고 깊고 깊은 겨울밤의 사색에서 깨어나 긴 기지개를 켜는 봄을 바라본다.
이른 봄 먼 곳에서 동경(憧憬)의 여인이 살며시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새봄을 기다리며 인왕산 음지의 잔설에 아쉬움을 보낸다.
조춘의 아침은 상쾌하다. 차갑고 부드러운 바람이 뜰 안에 가득하고 나목을 한 둘레 돌아와서 나의 옷깃을 파고든다. 며칠 사이 확실히 달라진 것이 많다. 2월의 이른 봄은 봄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대답하면서 찾아왔다.
봄을 기다린 사람은 많다. 그 중에서도 산간농촌 잔설 사이 양지쪽 논두렁에 불을 피워놓고 구정 대보름달을 맞이하는 사춘기의 아이들 마음속에 봄은 맨 먼저 온다. 도시의 운동부족인 일과를 다소라도 메우려고 새벽 출근길에 반은 걷고 반은 뛰어가는 사이에도 천지간에 새 봄이 찾아들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다.
눈을 밟으며 뛰어가는 운동화 바닥으로 봄을 느낀다. 겨울눈과 봄눈은 발바닥에 밟히는 촉감부터 다르다. 봄눈의 감촉은 부드럽고 연하며 겨울눈은 이보다 딱딱하다. 달려가는 새벽길의 겨드랑이 속으로 스며드는 봄기운은 생명 속의 오염된 찌꺼기를 씻어 내는 맑은 냉수와도 같다. 새벽녘 경복궁의 중후하고 긴 돌담장 옆을 달리며 아직은 찬 침묵 속이지만 봄의 태동을 곳곳에서 느낀다. 조춘의 감격을 가슴 그득히 들이마시며 아직 밝지 않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러나 사무실에 들어서면 봄은 간곳없이 사라진다. 비단 봄뿐이 아니고 모든 절기의 변화에 대하여 그 반사감각은 무디어지고 먼 어린 시절의 감상을 되씹는 일밖에 없다. 계절이나 자연은 그때에만 민감할 수 있고 유정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어린 날의 순박한 자연은 어느새 멀리 뇌리에서 사라져버리고 고향을 등진 도시의 유랑민처럼 거북한 긴장 속에서만 살아왔던 일을 되돌아본다. 이러한 세월이 제2의 천성으로 화하여 다년간의 생활 감정도 이런 습관에 이어져서 바람직하지 못한 개별의 나를 형성해 놓았다.
오늘의 현실은 4·4 분기제의 소득확대 추구를 위한 치열한 적자생존의 투쟁으로 채워지는 4계절뿐이다. 기업인에게는 환희의 4계절이나 낭만적 4계절은 연분에 닿지 않고 대자연이 가까이 있음을 알고는 있으면서도 심정에 다가서지 않아 멀고 먼 데에 있는 것과 같은 실정이다.
가난하고 어리석은 젊은 계절에 궁핍에서 헤어나기 위하여 굶주림과 헐벗음을 딛고 일어서기 위하여, 그리고 구멍가게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기업인으로서 불안한 첫발을 내디뎠을 때, 또한 그 일을 기점으로 하여 내 생애의 발목이 잡힌 후 오늘날까지 모험과 투쟁 속을 헤쳐 나왔다. 나로서 최선을 다하는 그 혼신의 집중과 정열과 전심전령을 소진하는 질주의 기나긴 행로만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형편이 나 하나뿐이라고 생각지는 아니한다. 기업의 대열에 서 있는 여러 기업 동지들이 이와 같은 형편에 놓여있을 것이다. 남이 잘 때 깨고 남이 쉴 때 뛰어가지 않으면 기업의 육성은 불가능하다. 절하다고 할 만큼 각박한 경합사례들을 수없이 치러내면서 달리고 있다. 그러므로 봄이 와도 봄의 줄밖에 서서 혼미한 어둠에 몸을 적시고 있는 수가 많다.
경쟁에 이기는 것만이 삶의 전부로 생각해온 폐쇄적 열기에 갇혀 지내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봄은 환상 속에만 있는 관용의 여인과 같다.
봄은 만인이 듣는 복음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봄은 가난한 사람들과 힘없는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온다. 춥고 음침한 긴 겨울을 힘겹게 견디어 낸 사람들에게 봄은 더욱 따스하다. 살며시 스며드는 봄은 자애의 어머니 같은 성품 그대로이다. 포근하고 훈훈하다.
언제나 긴장하고 서두르면서 마음의 안식이라곤 없는 기업인들은 하늘의 별을 딸 듯한 기세로 달려가지만 정치가나 공직자 또한 성직자들의 비판 앞에서는 자라목같이 움츠러들기를 잘한다. 그 허약한 기업 군상들.
유구한 유교의 사상이 그러했고 사농공상의 선조들의 실정이 그러했거니와 제아무리 천만금을 손에 잡은 사람이라도 봄바람에 녹는 잔설과 같은 인간적 허약의 일면을 숨길 수 없다. 기업의 사무실에는 봄·여름·가을·겨울의 화려한 순환도 속절없이 스쳐 지나가며 다시 새봄이 와도 봄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때가 많았다. <空地(공지)에 無花草(무화초)하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이다> (빈 대지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
기업인들이 봄을 기다리는 건 하늘에 별을 붙이고 돌아오는 여인을 기다리는 바나 다름없이 공소(空疎)한 경우가 되곤 했다.
그런데 봄이 또 왔다.
인왕산의 잔설을 밟으며 계절의 은혜를 새삼 되뇌인다. 봄볕이 하루하루 짙어져 간다.
천지가 새봄이다.
이제부터 기업의 단하에서 봄을 만끽하고 싶다. 경제단상에서 호기 있게 일하는 연출자들의 화려한 무대를 바라보면서 오랜만에 심정의 여유를 가지고 이 봄을 즐기리라. 봄눈이 녹은 들길과 산길을 정다운 사람들과 함께 걸으면서 위대한 자연을 재음미하고 인정의 모닥불을 피우리라. 천지의 창조주 앞에 경건한 찬미를 바치리라.
인생은 여러 가지이다. 온화한 삶과 질풍처럼 달리는 삶이 있으나 그 궁극의 염원은 한 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평화와 자족을 느끼는 마음이다.
봄이 온다. 마음 깊이 기다려지는 봄이 아주 가까이 까지 왔다.

*원문:아산사회복지재단(http://me2.do/xVJbOug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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