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파장]신속인수제, 시급성에 방점…논란 우려, 단기 종료 가능성BBB급 등 비우량기업 지원 전망…지원 서두르되 규모 줄여
이지혜 기자공개 2020-03-25 13:43:24
이 기사는 2020년 03월 24일 15:2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도가 부활한다. 2001년, 2013년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겪고 난 뒤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한 방편으로 쓰였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코로나19 사태로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들을 구할 카드로 여겨진다.회사채 신속인수제도에는 언제나 '도덕적 해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정부도 이를 의식한 듯 지속가능성이 있는 우량 기업 중심으로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종전보다 규모도 대폭 줄였다. 사안의 시급성을 고려해 일단 시행하되 논란이 불거지는 것을 최대한 차단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회사채 신속인수제, 7년 만에 부활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며 회사채 신속인수제도 도입을 공식화했다. 문 대통령은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회사채 신속인수제도 등으로 회사채 인수를 적극 지원하고 단기자금시장에도 유동성을 충분히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6조7000억원 규모로 관련 제도를 시행하려고 했지만 11조1000억원을 더 보태 17조8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는 특정 기업의 회사채 만기가 집중적으로 도래했을 때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를 말한다. 기업이 만기 도래 회사채의 80%를 사모채로 발행하면 산업은행이 이를 총액인수, 그 대금을 받아 기업이 기존 회사채를 상환하는 방식이다. 산업은행은 인수채권을 신용보증기금과 채권은행에 매각한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2001년이다. 외환위기 직후 대규모로 발행된 회사채 만기가 65조원 규모로 도래하자 기업들의 차환발행을 지원했다. 이 제도는 2013년에도 부활했다. 미국정부가 양적완화 축소를 검토하면서 신용 스프레드가 벌어지자 기업들의 자금 조달 여건이 저하됐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는 외환위기, 금융위기에 따른 후유증을 완화하는 역할을 맡았다. 채권시장 안정펀드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로 기업들의 자금줄이 경색될 때 즉각가동됐던 것과 다른 지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채안펀드와 함께 가동이 재개된다. 채안펀드가 여전채, 우량 회사채를 중심으로 유동성을 지원한다면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는 비우량, 비금융기업을 중심으로 자금줄 경색을 막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혜 시비…사안 시급성에 방점
회사채 신속인수제가 기업의 숨통을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그러나 논란도 따라붙는다. 특정 대기업에 특혜를 줌으로써 시장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회사채 신속인수제의 수혜를 본 기업은 대부분 대기업이었다. 2001년 지원받은 기업은 현대상선을 시작으로 현대건설, 쌍용양회, 성신양회, 현대유화,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 등이다. 현대그룹 계열사가 대거 포진하면서 일각에서는 현대그룹에 특혜를 주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2013년도 마찬가지다. 현대상선, 한진해운, 한라건설, 동부제철, 대성산업 등이 지원을 받았다. 당시에도 논란은 적지 않았다. 2001년에는 주채권은행과 자구이행계획약정을 체결하고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대주주 지분매각, 경영진 교체 등 제재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명문화했다. 그러나 2014년에는 이런 내용이 빠졌다. 유동성 위험에 빠진 기업으로 낙인 찍힐 것이 두려워 제도를 활용하려는 기업이 적자 정부가 고육지책을 쓴 셈이다.
이번에도 비슷한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이번에도 대주주 지분매각 등 제재가 포함되지 않을 수 있다. 더욱이 회사채 신속인수제도의 시행 목적 자체가 우량기업의 도산을 막는 데 있다는 점에서 대기업 등 지원 가능성이 높다.
크레딧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회사채 신속인수제도의 지원 규모를 줄인 것도 이런 논란을 의식했기 때문일 수 있다”며 “당장 유동성 지원이 시급한 곳은 BBB급 등 비우량기업이지만 채권시장안정펀드 등으로는 이들을 지원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가 밝힌 회사채 신속인수제도 시행규모는 모두 2조2000억원이다. 산업은행이 회사채 차환발행분을 직접 매입함으로써 지원하는 금액(1조9000억원)까지 모두 합쳐도 4조1000억원에 그친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도가 2001년 2조1000억원, 2013년 6조4000억원 규모로 시행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폭 줄었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부작용을 고려했지만 일단 ‘죽지 않을 만큼은 살려 놓아야 한다’고 사안의 심각함에 더 무게를 뒀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회사채 신속인수제도의 시행기간이 1년 미만으로 짧게 끝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2001년 회사채 신속인수제의 시행기간은 그해 1월부터 12월까지였고 2013년에는 그해 7월부터 2014년 12월까지였다. 기획재정부도 2001년 발표한 OECD한국경제보고서에서 “기업구조조정에 관한 시장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대마불사라는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며 “이런 역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해당 제도 시행은 단기간에 그쳐야 하며 성실하게 구조조정 노력을 기울이는 기업을로 대상을 한정해야 한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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