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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재벌시스템]'이재용'이 던진 화두, 가족세습경영의 종언?①3세승계서 드러난 문제 '사회적 수용' 걸림돌, '세습 모델' 미래 산업사회 적절성 쟁점

문병선 기자/ 박상희 기자/ 구태우 기자공개 2020-05-21 08:16:44

[편집자주]

세계 최대 농업·식품회사인 카길은 비상장이고 가족지배 기업이지만 현재 가족이 경영하지 않는다. 세계적 플랫폼 기업 구글도 창업자들이 1선에서 모두 퇴진, 인도 출신 순다르 피차이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소유·경영의 분리 사례다. 자본시장의 역사가 짧은 한국 기업은 태생적으로 소유·경영의 융합모델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고도 성장과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너경영 3·4세 시대에 접어들며 변화를 요구받는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이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지배구조 뿐 아니라 이사회·내부통제·조직구성에 까지 영향을 줄 사안이다. '포스트 이재용 선언'은 곧 '포스트 재벌시스템'이다. 이재용 선언 이후의 재벌시스템, 나아가 4차산업혁명 이후의 재벌시스템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5월 18일 14:5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14년 12월5일 00시57분경(뉴욕 현지시각 기준) 뉴욕 JFK 국제공항 제1터미널 제7번 게이트에서 유도로(taxiway) 방면으로 막 진행을 시작하던 인천국제공항행 대한항공 소속 A380 KE086편 항공기가 갑자기 푸시백(push back)을 결정, 게이트웨이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JFK 공항은 주기장이 좁아 약 10미터 정도만 푸시백 이동하더라도 다른 항공기의 통행에 장애를 주는 구조다. 당시 항공기가 푸시백을 하는 도중 사전 통제없이 멈추면 다른 항공기와 충돌할 가능성 등 상당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서성배 기장은 기내 사무장(박창진)으로부터 인터폰을 받고 주기장 통제소(ramp control)와 교신 후 본래 진행하던 반대 방향으로 멈추지 않고 이동을 했다. 기장과 사무장간 통화 내용은 이렇다. "부사장(조현아)께서 객실서비스와 관련해 욕을 하며 화를 내고 있고 승무원의 하기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014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두하고 있다.

일명 '땅콩 회항'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이렇게 일갈한다.

"돈과 지위로 인간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인간의 자존감을 무릎 꿇린 사건이다. 한 사람을 위하여 조직이 한 사람을 희생시키려 한 사건이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심이 있었다면, 직원을 노예쯤으로만 여기지 않았다면, 감정을 조절할 수 있었다면, 승객을 비롯한 타인에 대한 공공의식만 있었다면,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이다".

◇3세 승계서 드러난 문제들 사회적 수용 걸림돌

산업화 이후 한국 자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재벌시스템'이다. 재벌시스템의 근간은 세습경영이다. 2세로의 세습경영까지는 논란은 있었으나 사회적 수용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큰 문제를 야기하진 않았다. 3세로의 세습 때 부터는 달랐다. 그리고 3세로의 세습 과정에 현미경을 대는 계기가 바로 이 땅콩회항 사건이다.

과연 한국의 재벌 세습이 정당한가, 3세로의 때로는 4세로의 세습이 사회적·경제적 바람직한 지배구조 모델인가에 대한 논란은 거세졌다. 미래 산업으로 가는 최적의 지배구조 모델이 세습경영 모델 밖에 없는가의 논란도 뒤따랐다.

삼성그룹의 3세 승계 과정 논란은 조현아 사태와는 그 결이 다소 다르다. 조현아 사태는 '사회적 갑질'이 주된 포인트였다. 사회적 갑질의 이면에는 정당성이 결여된, 부도덕한 세습경영이 있었다는 공감대가 뒷받침됐다.

반면 삼성그룹은 '세습방식의 정당성'이 문제였다. 적은 돈을 들여 소수 지분을 매입한 뒤 다수 지분을 지배하는 모델의 정당성 문제다.

집권여당의 박용진 의원은 과거 그의 저서 '재벌은 어떻게 우리를 배신하는가'에서 "재벌이 권력을 형성하고, 나누고, 승계하는 방식은 혈연 중심이다. 자식에게 벼슬을 물려주던 봉건시대의 음서제도와 닮았다. 재산이야 일정한 세금만 납부하면 상속할 수 있지만 능력이 확인되지 않은 자녀에게 기업에 대한 지배력과 경영권을 물려주고 물려받는 행태는 누가봐도 시대착오적이다. 공산주의를 지양한다면서 대대손손 권력을 물려주는 북한 정권의 자가당착과도 묘하게 그 모습이 겹친다"고 했다.

삼성그룹의 비자금 사건 및 차명계좌 사건, 다수 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모그룹의 보복폭행 사건, 탈세와 횡령으로 조사를 받고 실형을 선고받은 다수 재벌 2~3세 사건 등 국내 재벌은 그동안 수많은 사건사고로 입방아에 올랐다. 조현아 사태를 기폭제로 이런 사안마저 한꺼번에 비판대 위에 올라서면서 한국의 재벌시스템은 논란이 아닌, 근본적인 수술대 위에 올랐다고 봐야 한다.

◇'가족세습경영' 모델, 미래 산업사회 부적합 지적

"세습하지 않겠다"는 이재용의 5.6선언은 재벌 승계경영의 여러 논란의 연장선 위에서 나왔다.

그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방법과 내용은 밝히지 않았지만 잠정적으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기자회견을 통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있었던 의혹에 대해 사과했다.

이 발언을 좀 더 확대 해석하면 '가족세습경영의 종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분석이 현재로선 설득력있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한진그룹 사태 이후 재벌세습에 대한 시각이 차갑게 변한게 사실"이라며 "능력이 검증되지 않는 3~5세 시대를 앞두고 있는 재벌 소유·지배구조는 다음 시스템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고민을 계속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최소한 '가족경영, 가족세습' 모델은 다가올 새로운 산업화와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지배구조 모델이 아니라는 의미도 있다. 어떤 모델이 최상 또는 차선의 모델일 지는 모르지만 가족세습 모델을 대안으로 선택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동형 작가는 '툭 까놓고 재벌'이라는 책에서 "그러나 한국의 재벌은 오너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고 오너가 모든 것을 판단하며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2, 3세들은 재벌가의 일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룹 최고위층으로 쉽사리 올라 버린다. 이렇게 해서 기업 경쟁력이 오르겠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가족세습이 문제가 많다고 해서 '절대 악'이라는 시선은 문제가 있다. 대기업의 한 간부는 "능력없는, 검증안된 3세 승계가 문제이지 능력있는 3세라면 충분히 경영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화진 서울대학교 교수는 그의 저서 '소유와 경영'에서 "가족은 전문경영인보다 당연히 훨씬 장기적 관점에서 일하기 때문에 혁신과 변화에 대한 절박함과 동력도 더 크다"며 "대기업의 경영권을 일종의 사회적 자산으로 보아 3세로의 승계를 일단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경제적, 사회적 가치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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