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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온스를 움직이는 사람들]한국의 '존슨앤존슨' 꿈꾸는 윤성태 부회장①'인화' 강조한 선친 경영 철학 계승, M&A 성공 배경엔 탁월한 '인재 중용 능력'

최은수 기자공개 2020-06-29 07:10:47

[편집자주]

휴온스는 보수적인 한국 제약업계에서 M&A로 성장한 몇 안되는 곳이다. 1997년 연매출 60억원에 불과했던 회사는 8개 계열사, 5000억원 매출을 기록하는 중견지주사로 거듭났다. 이같은 성장을 인수합병만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인재'를 중히 여기는 윤성태 부회장과 그의 복심들의 역할이 있었다. 더벨은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으로 약진하는 휴온스 그룹 핵심 인물들의 면면을 들여다 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6월 18일 07: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윤성태(56) 휴온스글로벌 부회장은 30대 초반부터 회사를 책임졌다. 이제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윤성태 부회장의 얼굴엔 젊은이의 혈기 대신 인자한 미소가 자리한다. 회사를 도맡을 당시 60억원 가량이던 연매출은 5000억원까지 컸다.

윤 부회장은 여전히 '부회장'이란 타이틀을 쓴다. 8개의 자회사를 거느린 지주사의 대표지만 회장 직함을 부담스러워한다.

휴온스의 전신 광명약품공업 창업주이자 선친 윤명용 회장(사진)은 1997년 작고했다. 윤 부회장은 지금도 선친의 초상화를 집무실에 두고 어려운 선택과 판단 앞에서 지혜를 얻는다. 회장 직함을 달면 살갑던 임직원과의 거리가 멀어질 것이란 생각도 있다.

윤 부회장은 위기와 기회가 점철된 녹록지 않은 경영 20여년간 "틀리지 않은 길을 걸었다"고 말한다. 1965년 창업 당시부터 인화(人和)를 강조한 선친의 경영철학을 계승하고 몸소 실천한 덕이다.

◇한국의 존슨앤존슨, 사람에서 길 찾다

제약업계에서 윤 부회장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따라오는 수식어는 'M&A 전문가'다. 윤 부회장은 존슨앤존슨과 같은 '토털 글로벌 헬스케어' 사업을 염두에 두고 회사를 발굴해 왔다. 지금의 휴온스글로벌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도 성공적인 M&A 덕이다.

소비재로 잘 알려진 존슨앤존슨이지만 제약 분야에선 글로벌 톱티어에 속하는 초우량 글로벌 기업이다. 시가총액은 3800억달러(한화 약450조원)에 달하고 2019년 매출은 821억달러(한화 약99조원)로 글로벌 빅파마 가운데서도 압도적 1위다.

휴온스가 존슨앤존슨을 따라잡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소비재와 제약을 아우르는 헬스케어 사업을 추구하는 방향성은 일치한다. 20년간 이어온 빠른 성장이 계속 된다면 한국판 존슨앤존슨은 가능한 일이다.

윤 부회장을 측근에서 경험한 관계자들은 "M&A 수완과 함께 사람을 포섭하고 쓰는 능력이 최고"라고 입을 모은다.

휴온스그룹을 움직이는 계열사 수장들의 면면을 보면 윤 부회장의 인재 중용 능력을 엿볼 수 있다. 계열사마다의 주력사업과 각 계열사 수장들의 커리어, 전문성은 정확히 일치한다. 관 출신 인사도 가리지 않는다.

휴온스글로벌 관계자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윤 부회장의 능력은 유기적 성장을 이끈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윤 부회장은 지금도 인화(人和)를 중심으로 한 경영을 강조한다. 창업주의 경영철학을 잇는 형이상학적 대의 때문 만은 아니다. 사회초년생 시절부터 사람을 귀히 여겼고 관계 형성의 중요성을 체득한 덕이다.

◇위기 극복 후 급성장까지

윤 부회장은 사회생활의 시작을 한국IBM에서 했다. 제약 산업과 상관없이 본인의 능력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윤 부회장은 한양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카투사 제대 후 1989년 한국 IBM에 입사했다.

한국IBM은 당시만 해도 국내에 자리잡지 못했던 주 5일 근무제를 운용했다. 윤 부회장은 "'워라밸'이란 개념이 없던 시절 한국 IBM에서 입사 동기들과 화합하고 주말에 가족들과 캠핑을 다니곤 했는데 지금도 즐거운 추억으로 손꼽힌다"고 밝혔다.

1992년 당시 한국 IBM 사원이던 윤 부회장은 광명약품공업으로 합류하라는 아버지 윤 회장의 갑작스런 부름을 받는다. 오너 2세라면 바로 고위직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대리급으로 직급을 받았다.

하는 일의 대부분은 막내 지원이 담당하는 허드렛일이었다. 시설투자로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탓에 급여도 절반 가량으로 줄었다. 윤 부회장은 "그럼에도 아버지,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뻤다"고 말했다.

윤 부회장이 합류한 후에도 상황은 쉽게 나아지질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윤 회장의 건강이 악화됐고 1997년 타계했다. 윤 부회장은 위기의 연속이었던 이 시절이 사람의 진정한 가치를 몸소 느낄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회고했다. 회사를 도맡은 이듬해 발생한 IMF 금융위기와 화성 공장 화재 수습 과정에서 임직원이 단결하자 놀라운 결과를 냈다.

광명약품공업의 키를 쥔 윤 부회장은 서른 초반 패기 넘치는 공학도에 불과했다. 젊은이의 혈기만으로 업력이 본인 나이와 맞먹는 회사를 이끌기란 쉽지 않았다. 1998년엔 IMF 금융위기가 덮쳤다. 연매출에 맞먹는 자금을 투자한 화성공장에도 화재가 났다. 큰 위기였다. 초유의 위기 상황 앞에서 윤 대표는 자신을 낮추고 임직원에게 다가갔다.

윤 부회장은 78명의 직원들에게 "어려운 상황이지만 회사를 살리기 위해 함께 뛰고 이겨내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 손편지를 써서 보냈다. 화성 공장은 화재 후 6개월만에 재가동에 성공했다. 이후 1999년 광명제약, 2003년 휴온스로 사명을 바꾸고 급성장하는 데엔 걸림돌이 많지 않았다.

◇지주사 설립, 경영분쟁 제약업계 반면교사

윤 부회장은 사람, 직원 간 신뢰를 강조한다. 피인수기업 인력 또한 한 가족으로 보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 왔다. 경영권 이전 과정에서 분쟁이 발생할 소지를 최소화하고 기존 임직원들의 권리와 고용 등을 보장하는 것이 골자다.

윤 부회장은 "기업 인수 후 점령군이 아닌 조력자가 되기 위해 파견 인력을 최소화하는 것을 핵심 방침 중 하나로 삼는다"는 지론을 강조해 왔다.

휴온스가 지주사 체제를 완성하기에 앞서 수 차례 M&A를 단행했지만 임직원 고용승계 및 PMI(합병후통합) 과정에서 잡음이 나지 않은 것도 이같은 경영철학과 수완이 뒷받침된 덕이다. 윤 부회장은 본인의 성장 경험을 세 아들 인상·연상·희상 씨도 공유하기를 원한다. 임원이 아닌 실무 인력으로 배치해 회사를 경험하도록 하는 중이다.

윤 부회장은 2016년 5월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사 휴온스글로벌을 설립했다. 이같은 용단을 내린 것은 경영권 분쟁에 따른 사내 불화의 단초를 최소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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