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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셈의 방어적 비관주의 [thebell note]

조영갑 기자공개 2020-07-03 07:27:58

이 기사는 2020년 06월 30일 08:10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45010!. 인천 송도 제너셈 본사 곳곳에 붙어 있는 숫자다.

공정라인을 안내하던 한복우 대표에게 의미를 물었다. 한 대표는 “올해 매출액 450억원과 영업이익 10% 달성을 목표로 매진하자는 의미”라고 소개했다. 거창한 함의를 기대했던 터라 맥이 다소 빠졌지만 이내 관심이 동했다. “너무 목표를 겸손하게 잡으신 거 아닙니까?.”

‘방어적 비관주의(defensive pessimism)’라는 개념이 떠올랐다. 한 심리학자가 성공한 사람들의 성향을 따져봤더니 비관주의자들이 제법 많은 것을 발견하고 만든 용어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사람 중에 비관론자가 많았다는 이야기와 맥락이 같다. 올해 예기치 못한 불황이 이어지면서 이 말이 고개를 들고 있다. 넘치지 않는 ‘방어적 기대’와 최악의 상황에 대한 ‘숙고’를 갖추면 훌륭한 방어적 비관주의자다.

제너셈은 2015년 코스닥에 상장한 반도체 후공정 장비 제조업체다. 한미반도체 출신 자동화기계 전문가인 한복우 대표가 2000년 창업한 진테크놀로지가 모태다. 비전(광원검사)을 강점으로 반도체 레이저 커팅기, 테스트 핸들러(패키지 테스트), 소 싱귤레이터(패키지 절단) 등의 장비로 외연을 넓혀 왔다.

하지만 상장 후 3년간 특허소송에 휘말리면서 말 그대로 ‘생고생’을 했다. 제작이 완료된 장비를 납품하지 못하면서 대량 재고손실이 발생해 3연속 적자늪에 빠지기도 했다.

제너셈은 2019년 370억원의 매출액과 영업이익 30억원(영업이익률 8.17%)을 기록했다. 굴지의 자동화기계 벤더에 비하면 작지만 자신감을 찾기에 충분한 수치다. 여기에 100여 건에 이르는 특허등록 및 출원 기술을 기반으로 커팅, 테스트, 비전(vision), 물류(pick&place), 세척 및 건조 등의 풀 패키지를 구축했다. 적자 상황에서도 끊임 없이 R&D에 투자한 결과다. 신사업 부문으로 분류되는 소 싱귤레이터, EMI실드(전자파 차단)장비는 올해 초부터 공급계약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한 대표는 "저 숫자(45010)도 구상보다 100을 낮춰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넘치지 않는 적당한 기대와 돌다리를 두드리는 숙고. 전형적인 방어적 비관주의로 보였다. 한 대표는 3, 6층의 연구소를 안내하며 "소송을 거치면서 제너셈은 더 자라야하고, 그 핵심은 소프트웨어라는 걸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자동화기계의 제작에서 자동제어 SW는 브레인이다. 제너셈은 SW 전문가를 지속적으로 늘리면서 브레인을 살찌우고 있다.

최근 특허소송을 마무리 지은 제너셈은 반전을 준비하고 있다. 발걸음은 조용하지만 경쾌하다. 마침 제너셈을 방문한 날은 장비를 설치하러 간 엔지니어들의 해당국 자가격리가 끝난 날이었다. 설치가 본격화되면 대량 매출인식이 예상된다. 하반기 예측을 묻는 질문에 한 대표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괜찮을 것 같기는 한데, 잘 모르겠어요. 열심히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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