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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재벌시스템]가문경영이 낳은 롯데 지배구조 '미스터리'①400여개 순환출자 고리, 감춰졌던 광윤사·L투자회사 존재…여전히 불분명한 日 주주 구성

최은진 기자공개 2020-07-13 07:42:18

[편집자주]

세계 최대 농업·식품회사인 카길은 비상장이고 가족지배 기업이지만 현재 가족이 경영하지 않는다. 세계적 플랫폼 기업 구글도 창업자들이 1선에서 모두 퇴진, 인도 출신 순다르 피차이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소유·경영의 분리 사례다. 자본시장의 역사가 짧은 한국 기업은 태생적으로 소유·경영의 융합모델이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고도 성장과 빠른 의사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너경영 3·4세 시대에 접어들며 변화를 요구받는다. 국내 대표 기업 삼성이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파장을 가늠하기 어렵다. 지배구조 뿐 아니라 이사회·내부통제·조직구성에 까지 영향을 줄 사안이다. '포스트 이재용 선언'은 곧 '포스트 재벌시스템'이다. 이재용 선언 이후의 재벌시스템, 나아가 4차산업혁명 이후의 재벌시스템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7월 07일 10:3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세계적 금융재벌 로스차일드 가문은 누구나 알지만 그 가문이 소유한 기업이나 지배구조를 아는 이는 없다. 록펠러·메디치·베어링 등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는 수많은 가문들의 영향력이나 실체 역시 음모론이나 배후세력 등으로 감춰진다. 수백여년간 명맥을 이어온 가문경영의 실체는 대부분 구전으로만 회자될 뿐 사실상 드러난 게 없다.

역사적으로 가문경영은 폐쇄성으로 귀결됐다. 자본주의 성장과 함께 막대한 부(富)를 챙겼던 자본가들은 더 많은 부를 독점하기 위해 카르텔을 형성하거나 정권과 결탁했고 이는 비밀주의 문화를 만들었다. 비밀주의는 다시 가문경영을 심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대표적인 가문경영으로 꼽히는 로스차일드 가문을 보면 그 속성과 단면이 여실히 드러난다. 가족만이 요직을 차지할 수 있고 모든 기업을 비상장으로 경영했다. 정보독점이 부로 이어진다는 걸 알고부터는 비밀주의와 폐쇄성을 지키기 위해 족내혼까지 강행할 정도였다.

개인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극히 꺼렸지만 사업을 위해 여러 국가와 관계를 맺는 데는 적극적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금융으로 시작해 철도, 석유, 운하사업 등으로 외연을 넓혔고 급기야 세계경제의 한 시스템으로 군림하기에 이르렀다.

동시대를 살았던 독일의 혁명시인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로스차일드 가문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가문간 화합과 조화를 위해 근친결혼을 했고 이런 식의 관계는 훗날 역사가들이 도저히 풀지 못할 복잡한 매듭을 만들었다"

현대로 넘어오며 가문경영의 비밀주의와 폐쇄성은 한계를 맞닥뜨렸다. 부의 세습을 막기 위한 상속세가 강화되고 여러 후계자로 승계를 거듭하며 외형이 쪼그라들었다. 정치환경 및 글로벌 패권의 변화로 성장의 뒷배가 됐던 일부 국가 및 민족과의 유착은 반대로 공격의 빌미가 됐다.

현재 로스차일드 가문은 음모론이나 배후세력 정도로 회자되며 유명세를 떨치지만 그 영향력이 일반에까지 파급을 미칠 정도로 큰 위상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문의 재산 일부가 매각되고 있다는 뉴스만으로 ‘옛날만 못하구나’ 정도만 어렴풋이 알 뿐이다. 가문경영의 흥망성쇠와 오늘날 그 위상이 갖는 의미는 국내 재계도 반면교사 삼을 만 하다.

◇한·일 오간 70여년 역사, 비상장·순환출자…지배력·정보독점 결과

국내 상위권 대그룹 가운데 가문경영의 속성을 보유하고 있는 곳을 꼽자면 단연 롯데그룹이 거론된다. 경쟁 대그룹과 다르게 한국과 일본 양국을 기반으로 가문중심의 사업을 벌인 데 따라 엄격한 비밀주의가 유지될 수 있었고 이는 불분명하고도 복잡한 지배구조로 이어졌다.

70여년의 역사를 지닌 롯데그룹의 지배구조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정점에는 누가 있는지 밝혀진 게 불과 5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은 놀라운 사실이다. 그나마도 다 드러나지 않았다. 실체를 알 수 없는 일본의 종업원 지주회, 광윤사 등 가문만 알 수 있는 비밀들이 일반에 드러나지 않고 있다. 롯데가(家)의 분쟁으로 하나 둘 '폭로'될 뿐이다.

다른 대그룹은 여러차례 오너위기를 겪으며 주식시장 상장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투명성을 강화한 것은 물론 지배구조를 단순화 했다. 오너일가가 배제된 의사결정 시스템을 만드는 데도 집중했다. 반면 롯데그룹은 비상장 전략, 오너 중심의 의사결정 체제 등을 유지하며 폐쇄성이란 철학을 그룹 근간에 뿌리내렸다.

롯데그룹은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일본에 제과기업을 설립한 게 시초다. 한일 수교가 정상화 물꼬를 트자 네명의 남동생들에게 자본금을 나눠주며 한국에서도 사업을 시작했다. 둘째동생 신철호 전 사장, 셋째동생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넷째동생 신선호 일본 산사스식품 회장, 다섯째동생 신준호 푸르밀 회장 등 신 명예회장의 가족 전부가 경영에 뛰어들었다.

가족 구성원들이 모두 요직을 장악하며 성장의 한 획을 그었다. 신철호 전 사장은 한국롯데를 세웠고 신춘호 회장은 롯데 이사로 근무하며 제과사업 등을 담당했다. 신선호 회장은 롯데리아를 일궜고 신준호 회장은 신 명예회장을 대신해 한국 롯데그룹을 총괄했다.

사실상 롯데가라는 가문을 만든 신 명예회장은 가족들에게 우러러봐야 할 무서운 존재였다. 신춘호 회장은 자서전에 신 명예회장을 '신적인 존재'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신 명예회장의 카리스마 리더십을 기반으로 가족 구성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고 이러한 문화는 그룹 구석구석 스몄다.

롯데그룹은 한국과 일본 양국의 이해관계에 맞는 교섭력을 확보하며 산업성장의 동반자 역할을 도맡았다. 한국과 일본 모두 롯데그룹의 기반이지만 그렇다고 그 어느 쪽도 완전한 정체성을 의미하진 않았다. 한국기업인지 일본기업인지 모를 어정쩡한 상태가 유지됐지만 한창 산업부흥기 때였던 만큼 롯데가가 가진 자본력은 교섭력을 지니기에 충분했다.


양국을 오가며 사업을 벌인 데 따라 한일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도 얽히고 설켰다. 신 명예회장을 비롯해 오너일가가 직접 주요계열사의 지분을 소유했고 이는 다시 계열사끼리 서로 지분을 확보하는 순환출자 구조를 만들었다.

한 때 롯데그룹의 순환출자고리가 국내최대인 420여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어느 대그룹보다도 복잡한 지배구조를 구축하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복잡한 지분구도의 정점에는 일본 롯데그룹이 있었다.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를 오너일가가 직접 소유하거나 계열사간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만든 것은 결국 지배력 및 정보를 독점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계열사 대부분이 비상장으로 경영됐다는 점도 폐쇄성을 한층 더 가중시켰다.

한국 롯데그룹의 최대계열사인 롯데쇼핑이 상장한 게 불과 10여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 주력 계열사 가운데 가장 먼저 증시 상장을 한 롯데칠성의 경우엔 200만원에 달하는 무거운 몸값으로 거래량이 겨우 1000주에 불과했다. 굳이 투명성을 강화할 이유도, 시장에 친화적일 이유도 없었다. 신 명예회장 한마디에 임직원들이 해고되는 이른바 '손가락 인사'도 유명한 일화로 회자된다.

◇분쟁불씨 남긴 불분명한 지배구조, 시대적 요구 '투명성'

가문경영의 속성이 낳은 폐해 등은 롯데그룹에도 여실히 적용됐다. 가문경영에서 가장 두려워 하는 게 구성원들간의 갈등이다. 롯데그룹 역시 가족 구성원들과의 끊임없는 분쟁으로 외형 축소 및 평판 손상을 야기했다.

신 명예회장은 동반경영을 했던 모든 형제들과 법적분쟁을 포함한 갈등을 벌였다. 이 때문에 일부 사업 및 계열사를 떼어내는 결단도 있었다. 2세대 경영으로 넘어오면서 신 명예회장의 두 아들 역시 같은 전철을 밟았다.


한일 롯데그룹의 얽히고 설킨 불투명한 지배구조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야기했다. 신 명예회장 1인 체제의 강력한 리더십 하에선 유용하게 활용됐던 복잡한 지배구조가 후대로 넘어오면서 분쟁의 불씨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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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분쟁 당시인 2016년 7월 3일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에서 신동빈 회장.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 광윤사가 있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났지만 광윤사의 최대주주인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대표이사 회장은 지배력이 없다. 종업원 지주회라는 실체를 알 수 없는 주주들과 연합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배권을 확보하면서다. 기이한 지배구조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한 롯데그룹의 분쟁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한국과 일본 양국을 등에 업고 이룬 성장은 오늘날 롯데가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 재계에 투명성과 정체성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롯데그룹의 불분명한 정체성 및 일본과의 관계는 반일감정이라는 역린을 건드렸다. 성장의 뒷배가 됐던 후광이 이제는 공격의 빌미가 되며 두고두고 발목을 잡고 있다.

현재 롯데그룹이 요구받고 있는 시대적 과제는 '투명성'으로 수렴된다. 한국과 일본을 넘나드는 복잡한 지배구조의 해소, 오너일가 중심의 황제식 경영시스템 철퇴, 주주중심의 경영구도의 안착 등이다. 결국 70여년 성장의 역사를 만든 폐쇄성 및 비밀주의와의 절연을 의미하는 것과 다름없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다른 상위권 대그룹보다도 더욱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구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너일가 중심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고착화 됐다"며 "포스트 재벌시스템을 논하기 전에 롯데그룹은 폐쇄성을 포기하고 그룹의 투명경영을 강화하는 것부터 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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