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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의 Money-Flix]영화<강남 1970>을 통해 되짚어 본 최근 부동산 논란의 해법인구구조·거주형태 변화 반영, 장기적 대책이 필요한 이유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공개 2020-08-10 10:56:40

[편집자주]

많은 영화와 TV 드라마들이 금융과 투자를 소재로 다룬다. 하지만 그 배경과 함의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는 참인 명제다. 머니플릭스(Money-Flix)는 전략 컨설팅 업계를 거쳐 현재 사모투자업계에서 맹활약 중인 필자가 작품 뒤에 가려진 뒷이야기들을 찾아내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려 한다.

이 기사는 2020년 08월 10일 10:5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63년생 시인 유하가 1991년에 발표한 시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는 강남이라는 지역과 그 거주민들이 한국 사회의 주류로 진입하였음을 알린 상징적 작품이다. 스스로를 원주민 혹은 이주해온 정복자로 나누어 부르던 강남의 젊은 세대들조차 배나무밭이 ‘상전벽해(桑田碧海)’된 압구정동을 낯설어한다는 묘사는 그러한 변화의 속도를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감독이 된 유하는 2004년 자신의 학창 시절 경험을 기반으로 만든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통해, 개발 초기 강남에 살던 청소년들이 겪었을 법한 이야기를 선보이며 다시 한번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2015년 훗날 강남으로 불리게 되는 남서울의 개발계획이 한창 준비 중이던 시기를 다룬 영화 <강남 1970>을 통해, 자신의 ‘강남 연대기’를 완성했다.

그 영화 <강남 1970>에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기타 선율이 배경에 깔리면서 부동산 투기를 부업으로 하는 술집 여사장(김지수 분)이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쪽 양재천 변에 도곡동 땅 있죠? 자주 오는 풍수가가 그러는데, 그 땅에 백두산 정기가 모인데요. 그 땅에 오두막을 지어도 나중엔 알함브라 팰리스로 바뀐답니다. 판잣집이 궁전이 될 만큼 명당이라구요.”

다분히 한 때 주택 가격 폭등의 상징이었던 타워 팰리스를 염두에 둔 대사였다. 굳이 알함브라 ‘궁전’을 ‘팰리스’라고 할 다른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마 이 영화를 다시 리메이크한다면, 그 대사는 이렇게 바뀌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지금 어디냐가 문제겠어요? 그냥 일단 있는 돈 다 긁어 모아 강남 아무데나 사세요. 이왕이면 한강이 보이는 반포가 더 좋겠지만…”

영화에서 다룬 것처럼 독재 정권이 통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개발하기 시작한 이래, 강남은 대한민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경제적인 공간인 동시에 지극히 정치적인 공간이었다. 민주화 과정에서는 ‘신정치 1번지’라는 평가를 받았고, 주택 가격 급등의 진원지로 지목되면서 가장 큰 정치적 골치덩이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중요한 것은 코로나19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경기 하락 국면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강남발 주택 가격의 상승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식이나 채권은 물론 금과 같은 안전자산과 암호화폐 등 위험 자산까지 동시에 급등하는 중이라, 정부는 물론 시민들까지 크게 당황한 것이 최근의 혼란을 증폭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좀 더 긴 안목에서 거시적으로 현상을 바라보려는 여유를 시민과 정부 모두 가지지 못했다. 어떤 정책을 통해 단기적으로 주택 가격을 안정화시킨다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 고민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연이은 단기 대책들이 쏟아져 나오며 부작용을 낳았고, 그 부작용이 일부 언론에 의해 정략적으로 활용되며 정책의 신뢰성이 무너지는 악순환으로 나타났다.

강남개발 초기의 상황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강남1970>의 영문포스터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지난 50년간의 시간을 차분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인 종기(이민호 분)와 용기(김래원 분)는 모두 1940년대 생인데, 그 세대는 극히 일부만 강남 개발의 혜택을 누렸다. 실질적으로 강남을 중심으로 하는 주택 가격의 상승을 본격적으로 누린 것은, 영화 속 주인공들의 자녀 세대인 70년 전후 출생자들이었다.

연간 약 100만명이 태어나 인구 구조상 가장 두꺼운 층위를 구성하게 된 그들은, 훗날 ‘X세대’라 불리며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들어낸 장본인들이다. 경제 성장의 과실을 누리며 자산을 축적한 그들은 서울 수도권 중소형 주택의 소유자들을 대표하는 주류가 되었고, 최소한 향후 10년간 그러한 위치에서 내려올 가능성은 없다.

작금의 주택 가격 폭등은 그러한 X세대의 탄탄한 주택 수요 위에, 1, 2인 가구의 급증이 겹치면서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되어왔다. 거기에 가계 자산에서 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우리나라만의 특성이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그럼에도 과거 모든 정부와 국회는 이러한 큰 흐름을 보지 못하고, 항상 단기적인 주택 경기의 사이클에만 대응한 것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있더라도, 정권과 국회의 임기를 넘어 10년 이후를 내다볼 수 있는 정책을 입안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조급한 단기 대책들을 되짚어 보고, 정책의 효과가 장기적으로 나타날 수 있음에 대하여 시민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 이 혼란이 단기적으로 해소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이기 때문이다.

- KBS <영화가 좋다>, <강남 1970> 해설편: https://www.youtube.com/watch?v=pLNzV1px1uI&t=431s (본편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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