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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금융제재 컴플라이언스 역량 제고되어야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0-09-23 08:00:19

이 기사는 2020년 09월 23일 07:5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근 JP모건, 뉴욕멜런, 바클레이즈 등 유수의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북한 등에 대한 국제사회의 금융제재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국제적 자금이동이나 자금세탁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금융제재의 메커니즘이 지극히 복잡하고 따라서 첨단 금융기관들의 컴플라이언스 조차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미국은 UN안보리결의의 실효적 집행에 있어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일방적 제재를 많이 활용하며 전 세계에 걸친 이해관계 때문에 금융제재의 집행에 관한 경험이 풍부하다. 미국은 그로부터 고도로 발달된 집행 메커니즘을 보유하게 되었다. 전 세계의 금융기관들이 미국과의 연계를 그 존립의 기초로 하기 때문에 미국은 금융제재를 매우 실효적으로 집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미국정부의 금융제재는 법률과 하위규정, 행정명령 등에 기초해서 이행된다. 미국은 안보리결의를 국내적으로 집행하는 데 필요한 포괄적인 수권법률을 가지고 있다. 제재결의가 채택될 때마다 미리 지정된 행정부 내의 부처가 위임입법을 통해 집행조치를 취한다. 미국이 제재를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이 분야는 고도로 전문적이다. 예컨대 “1998년을 기준으로 최소한 42개의 연방법률과 27개의 주법이 최소한 29개국의 30억 명에게 미국과 상사거래를 행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을 만큼 전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법률과 실무영역이다.

금융제재는 재무부 내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국무부, 기타 연방정부기관들과 협조해서 집행한다. 1950년에 설치된 OFAC은 금융제재뿐 아니라 미국정부의 경제제재 전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약 200명의 정보분석가와 법률가로 구성된다. OFAC는 이른바 SDN리스트를 작성해서 관리하는데 이 리스트에는 자산동결조치 대상 개인, 회사, 단체가 포함된다. 이들 개인, 회사, 단체는 주로 제재대상 국가의 소유이거나 그 통제 하에 있거나 그 국가를 위하여, 또는 대표, 대리하여 행동하는 자들이다. 그 외, 테러리스트, 마약거래자 등도 포함된다. 미국 국민은 원칙적으로 SDN과 거래하는 것을 금지당한다. 일반적으로, 미국 국민은 OFAC의 허가 없이는 경제제재 대상 국가와 지역에서 대부분의 경제거래를 행할 수 없다.

금융제재의 집행은 금융결제시스템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뉴욕연방준비은행이 실시간으로 자금의 이동을 모니터하면서 OFAC을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 결제시스템에 참여하고 있는 금융기관들이 자체 모니터링, 내부감사, 외부감사, 제보 등의 결과로 제재조치에 위배되는 내용의 거래가 이루어진 것을 발견하면 정부에 신고하는 것으로 집행 시스템의 기초가 형성되어 있다.

미국법 규제 하에 있는 금융기관이 SDN이 이해관계를 갖는 재산을 수령하게 되면 해당 기관은 즉시 그 재산을 동결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해당 거래를 거부할 수 있고 10영업일 이내에 해당 거래와 그 처리에 관한 상세한 사항을 OFAC에 보고해야 한다. 다수의 금융기관들이 이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보유, 운영하고 있다. OFAC은 위법한 거래가 집행된 것이 확인되면 필요한 조사를 거쳐 해당 기관이나 개인에 대해 경고나 민형사상의 조치를 취한다.

미국의 금융제재 집행시스템이 대단히 효율적이고 SDN들이 큰 타격을 받는 이유는 달러화 국제결제의 95% 정도가 CHIPS라는 지급결제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달러화 국제결제의 95%가 미국 및 미국과 거래하는 전 세계 금융기관들에 의해 모니터 대상이 된다. SWIFT 등 다른 결제시스템을 사용하는 금융기관들도 테러리스트 자금지원 방지 등의 목적에서 자발적으로 SDN리스트를 가지고 컴플라이언스에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세계의 모든 달러화 거래가 모니터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미국은 금융제재와 관련된 국내법을 국외에서 외국 회사들에 대해서도 집행하고 있다. 이는 비미국 금융기관이 미국에서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이 미국과의 연계요인이 있는 경우는 물론이고 미국과 아무런 연계가 없는 거래에 관하여도 미국과의 거래와 제재대상국가와의 거래 양자 중 택일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행된다. 예컨대 2009년 1월 로이드TBS는 연계은행을 통해 금지된 지급결제를 집행했다는 이유로 3억 5천만 달러의 벌금에 처해진 바 있다. 로이드는 미국 금융기관도 아니고 로이드가 미국 내에서 금지거래를 수행한 바도 없지만 로이드는 그 연계은행이 미국법을 위반하도록 했다는 이유에서 처벌되었다.

미국의 애국자법(Patriot Act) 제311조에 의하면 재무부는 국제적 자금세탁에 이용되고 있다는 의심이 있는 해외 금융기관이 미국 내 금융기관에 연계계좌를 개설할 수 없도록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는 국제적인 금융기관에게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여서 금융기관들은 SDN과의 우발적인 거래로 이에 저촉되지 않기 위한 컴플라이언스 실무를 개발해서 이행하고 있다. 2005년에 미국이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은행을 북한과의 거래 혐의를 이유로 제311조에 의한 금융기관으로 지정하려 하자 지정이 진행되기도 전에 뱅크런이 발생, 수일 동안 동 은행 예금의 34%가 인출되었고 결국 동 은행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그 후 마카오정부에 의한 의심 자산 동결이 뒤따랐다.

우리나라에서 경제제재, 금융제재에 관한 안보리결의의 국내 집행은 미국의 경우와는 달리 포괄적인 수권법률 없이 기존의 법령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행해진다. 즉 외교부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부 등 관계부처에 안보리결의 사실, 내용, 지침 등을 전달하고 관계부처들은 그에 따라 필요한 법령 개정조치를 취하는 방식이다. 금융제재의 경우 기획재정부가 고시를 개정, 추가로 지정된 제재대상자를 기재하고 관보에 게재한다. 그러면 은행연합회가 대책반 설치 등을 통해 각 은행에 상담센터를 설치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은행과 기업에 관련 정보를 전달하게 된다.

금융제재는 포괄적인 경제제재에 비해 대상국의 무고한 국민 인권 침해 등의 부작용이 없는 방식이고 신속하고 효율적이므로 비용도 적다. 제재 참여국들 간 공조가 용이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금융제재는 문서와 디지털 정보에 의해 물리적 수단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집행되므로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전문성이 요구되고 실효적인 금융정보의 확보를 필요로 한다. 민간부문으로부터의 능동적 협조가 더 필요하기도 하다. 국제적, 각국 국내적 차원에서의 관련 역량이 제고되어야 할 것이다.

금융제재의 법률적 문제는 우리나라의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직접 컴플라이언스 문제를 제기하게 될 것이다. 국제법적인 기초와 국내법상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 특히 우리의 입장에서는 안보리결의를 직접 집행하는 문제 외에도 미국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는 여러 제재의 집행에 있어서 제3자로서 그에 협조하는 문제를 안고 있으며 국내 금융기관들이 의도치 않게 미국 측의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컴플라이언스 실무의 개발이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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