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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에 '대체'된 3자연합 [thebell note]

유수진 기자공개 2021-02-22 08:34:50

이 기사는 2021년 02월 19일 08:15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직장인들은 '책상 뺀다'는 말을 두려워한다. 고작 네 글자 짜리 경고지만 '넌 언제든 대체 가능해'란 의미가 내포돼 있는 탓이다. 밤낮으로 일에 매진하며 청춘을 다 바친 회사가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니 무시무시할 수밖에. 언제 책상이 빠질지 몰라 휴가 때도 맘 편히 쉬지 못한다는 대기업 임원의 푸념이 마냥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중에 나와 있는 온갖 자기계발서들은 '대체 불가능한 인재'가 되라고 떠들어댄다. 남들에게 없는 차별화 포인트를 갖춰야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조언에 귀가 솔깃하다. 누군가가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경쟁력을 갖추는 것. '롱런'을 꿈꾸는 모든 직장인들이 풀어야 하는 숙제다.

최근 한진칼 이사회에 한 통의 주주제안이 도착했다.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분리, ESG경영위원회 설치 등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회사 정관에 명문화하라는 요구다. 누가봐도 KCGI와 반도건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으로 구성된 3자연합이 보냈을 법한 내용이다. 그런데 웬걸, 발신인은 산업은행이었다.

3자연합은 작년 11월 산은이 아시아나항공 M&A를 위해 한진칼에 8000억원을 투자한다고 했을 때 완강히 반대했다. 유상증자를 막아달라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도 냈다. 주총에서 표대결이 펼쳐졌을 때 산은이 조원태 회장 편에 설 거란 우려 때문이다. 산은은 지분 10.66%를 쥐고 있는 '캐스팅 보터'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전개됐다. '특혜 의혹'을 의식한 산은이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입장이 난처해진 건 조 회장이 아닌 3자연합이다. 산은이 기업가치 제고 촉구 등 기존에 3자연합이 해오던 역할을 대신하며 존재 가치에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그간 3자연합이 한진그룹과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건 명확한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조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하며 꾸준히 몸값을 높였다. 하지만 산은의 등장으로 차별화 포인트가 사라졌고 심지어 주도권도 빼앗겼다. 결국 올해는 주주제안도 포기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운 카드를 꺼내 한진칼과 산은이 다시 상대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물론 산은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산은 몫 사외이사 세 자리 중 하나를 차지하는 것도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상황이 바뀌진 않는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란 얘기다.

3자연합은 다음 달 주총 이후 스텝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계속 연합전선을 유지할지 여부도 검토 중이다. 분명한 건 이미 산은에 '대체'된 이상 지금 그대로를 유지하는 건 결코 정답이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전략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3자연합은 새로운 경쟁력이 될 차별화 포인트를 찾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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