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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기업 ESG 트래커]'그들만의 리그' 불모지서 생존좌우 키워드로내수중심 '보수성향' A+ 이상 1곳 불과, '롯데·CJ·현대백' 유통공룡 첫발

최은진 기자공개 2021-02-24 08:08:49

[편집자주]

수년 전부터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재계 트렌드로 부상했지만 국내 유통기업들에게는 불모지나 다름 없었다. 내수를 중심으로 성장 가도를 달리며 그들만의 시장이 고착화되면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공정거래 및 지배구조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소비자와 투자가들의 요구가 커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유통 공룡을 중심으로 ESG 행렬에 가세하면서 변화의 물결이 몰아치고 있다.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유통기업들의 ESG 현황과 전략 등을 들춰본다.

이 기사는 2021년 02월 23일 07:34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2020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에서 A+ 이상의 등급을 받은 기업 16곳 가운데 유통사는 풀무원 한곳이었다. 세부 항목인 환경과 지배구조 평가에서 A+등급 이상 받은 유통사는 한곳도 없었다.

채널, 식품 등 국내 유통사들은 그간 ESG 평가에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내수를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는데다 명맥이 오래된 기업들이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에 보수적인 문화가 관성처럼 굳어졌다. 이미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기업인 만큼 지배구조 등의 ESG 평가보다는 상품이나 서비스 등이 기업 이미지를 좌우했다.

반면 글로벌 플레이어와 경쟁하는 '중후장대' 기업의 경우 해외 투자가들의 눈높이를 따라가기 위해 변화를 거듭하며 선진화를 이뤘다. 지배구조와 이사회는 물론 조직분위까지 혁신적으로 바꿨다. 흔히 애플과 삼성을 비교하는 것처럼 기업의 하드웨어가 곧 소프트웨어를 결정짓는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 같은 변화는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최근 유통사들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투자가들이 ESG 잣대를 들이밀며 주주행동주의에 나서는가 하면 소비자들도 착한기업에 대한 소비를 장려하는 분위기다. 공정거래 등 법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롯데, CJ, 현대백화점그룹 등 유통 대기업들이 먼저 움직이며 변화의 첫걸음을 뗐다.

◇2021년 경영화두 부각, 갑질·환경 논란 등 해소 키워드

유통 대기업들이 2021년 내놓은 화두에서 빠짐없이 등장한 키워드가 있다면 ESG가 꼽힌다. 그간 대부분이 외형성장과 서비스 개선 등 실적과 직접적으로 맞닿는 전략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형의 가치인 사회적 관점 중시는 전향적인 변화다.

ESG를 강조한 것은 외부의 시선으로 내부 정책을 변화시키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사회·환경정책부터 지배구조와 이사회, 더 나아가 주주정책까지 다방면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걸 생각하면 그룹의 골격과 철학 자체를 뒤흔들 정도의 혁신까지 기대해볼 수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연초 열린 사장단 회의에서 '사회적 관점'에서의 변화를 요구하며 ESG 대안마련을 주문했다. CJ그룹은 역대 신년사 중 처음으로 ESG를 언급하며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고 강조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비전2030'에서 ESG를 공식 경영방침에 넣고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겠다고 공표했다.


이들 유통 대그룹들이 보수적인 조직문화 속에 구태한 정책들을 고수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변화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그간 유통 대그룹들은 ESG가 내포하는 개별 요소들에 등한시 했던 게 사실이다.

2013년 남양유업 갑질논란, 2015년 롯데그룹 400여개 순환출자고리 및 황제식 경영시스템 이슈, 2018년 현대백화점그룹에 대한 주주행동주의 움직임, 2020년 쿠팡 근로자의 잇딴 과로사 논란 등 매년 국내 유통기업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들이 불거졌다.


표면적으로는 각각 다른 이슈로 보이지만 문제의 본질은 결국 ESG와 맥이 닿는다. 갑질 등 공정거래 이슈는 사회문제로 S(social)에 해당하고 순환출자고리 및 구태한 이사회 관행, 주주행동주의는 G(governance)에 포함된다.

E(environment)의 경우에는 화학물질을 배출하는 중후장대 제조업과는 다르게 상대적으로 유통사와는 거리가 먼 이슈로 평가됐지만 최근 과대포장 및 친환경 소재 관련 이슈가 부각되면서 역시 중대 이슈로 부상했다.

◇공정거래·사회적 약자 중심…新플레이어 등장, 산업 재편 움직임

대형 유통기업을 중심으로 ESG에 대한 변화가 급물살을 타는 데는 다양한 배경이 있다. 정부를 중심으로 '공정거래 및 사회적 약자'에 초점을 맞추면서 정책 및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중소상공인 및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한 유통산업발전법 제정이 눈앞에 있고 신흥유통 강자로 떠오르는 쿠팡 등 이커머스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시키려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유통 대기업들이 필연적으로 거래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는 중소상공인, 전통시장, 대리점 등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압박이 보다 체계화 되고 있는 셈이다. '함께 성장하지 않으면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이 전제로 깔려있는 조치다. 일감몰아주기, 내부거래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소비자들이 SNS(Social Network Service)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연대하게 됐다는 점도 배경으로 꼽힌다. 특정 사건의 한 단면만으로 남양유업이 갑질기업으로, 오뚜기가 '갓(God)뚜기'로 인식된 게 전형적이다. 롯데그룹의 과거 지배구조 등을 두고 일본기업이라는 이미지로 반일 이슈가 나올 때마다 뭇매를 맞고 있다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단순 기업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것이 아닌 불매운동 등을 통해 사업의 존폐까지도 우려할 수 있을 만큼 강한 파급을 낳았다. 어떡해서든 착한기업이라는 명예를 얻어야 할 충분한 유인인 셈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등 주주행동주의의 등장도 부담스러운 이슈다. 외국계 헤지펀드는 물론 국내 자산운용사와 국민연금까지 행동주의에 나선다. 유통사들의 잘못된 이사회 구조 및 짠물 배당 등은 빠지지 않고 나온 단골소재였다. 현대백화점그룹의 전 상장계열사들이 주주행동주의의 타깃이 됐던 게 불과 몇해 전 일이다. 당시만해도 외면하면 그만이었던 이슈들이 논란의 중심이 되면서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주는 중대 리스크로 부각됐다.

상위권 대그룹의 변화 또는 리스크를 반면교사 삼는 전략이 ESG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삼성그룹의 불법승계 이슈, 정권과의 부정한 결탁 등이 사회이슈로 확대되고 수년간 법적공방으로 이어지면서 급기야 오너의 구속까지 야기했다. 이는 일종의 정부의 코드, 시대적 흐름에 편승해야 한다는 강한 동기유발을 낳았다.

몇몇 유통사들이 장악하고 있던 산업에 신생사들이 대거 유입되며 경쟁이 치열해 지고 있다는 점도 자극요소가 됐다. 채널은 이커머스가, 식품은 밀키트 및 기존 유통대그룹들이 경쟁사로 떠올랐다. 업권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며 개편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생존을 위한 발빠른 혁신을 갈망하게 했다.

하지만 유통기업들의 ESG 경영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삼성, SK그룹 등 재계 상위권 대그룹들이 관련 정책을 중대 경영사안으로 삼고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반면 유통기업들은 방향설정만 했을 뿐 이렇다 할 조직조차 마련 돼 있지 않다. 유관기관의 등급 평가를 올리는 데 급급한 게 아니라 얼마나 진정성 있게 변화를 이뤄나갈 지가 관건이다.

E나 S와 같이 정량적으로 끌어 올릴 수 있는 등급보다 G의 변화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오너 중심으로 강한 오너십이 뿌리내린 유통기업들이 대부분인데다 지배구조 자체도 선진화를 이루는 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지배구조 연구기관 관계자는 "유통사들은 상당히 보수적인 문화가 자리잡은 산업으로 기본적으로 기업공개, IR 등과 같은 투명화 조차 이루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이제 막 ESG 경영을 논하기 시작했지만 얼마나 진일보를 이루게 될 지가 관전 포인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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