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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소프트 '집단사고'에 갇혔나 thebell note

원충희 기자공개 2021-09-13 06:56:18

이 기사는 2021년 09월 10일 07:5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게임만큼 제판(제조-판매)분리가 정착돼 있는 업권도 드물다. 통상 모기업이 유통(퍼블리싱)을 맡고 자회사들이 게임소프트웨어 개발업무를 담당한다. 개발자회사가 만든 게임이 모회사의 글로벌 마케팅과 네트워크를 타고 전 세계적으로 팔리는 구조다.

개발자회사는 지분투자로 인수한 경우도 있으나 상당수는 모기업에서 갈라져 나온 곳이다. 큰 회사일수록 조직체계가 관료화 된 탓에 여기저기서 개입과 터치가 많아지기 때문에 개발팀을 별도회사로 떼어내 독립성을 보장해준다.

일명 '3N(쓰리엔)'이라 불리는 국내 3대 게임사(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중에서 엔씨소프트는 유독 이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개발팀을 자회사로 빼지 않고 본사에 둔다. 게임개발의 전반적인 방향성을 이끄는 주체는 창업자인 김택진 대표다. 그가 최고경영자(CEO)이면서 최고창의력책임자(CCO)란 보직을 갖고 있는 이유다.

엔씨소프트는 이런 자기만의 방식으로 20년 넘게 성공을 거뒀다. 대표작인 '리니지' 시리즈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아성을 쌓았고 '린저씨'란 충성고객을 대거 확보했다. 이는 게임 대장주란 영예도 함께 가져다줬다. 이게 독이 되었을까.

성공의 방정식은 고착화되고 단단한 틀로 굳어져 누구도 의문을 제기할 수 없게 만든다. 엔씨소프트 신화를 일군 창업자와 측근들의 입김이 짙게 배어들어 개발과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사고의 경직성을 불러왔다. 별 생각 없이 관성적으로 예전에 해왔던 방식을 답습한다.

지난달 25일 선보인 신작 '블레이드 앤 소울2(블소2)'의 흥행 참패와 충성고객의 이탈은 그간 쌓였던 불만이 터져 나온 현상이다. 사용자들이 계속 컴플레인을 표했던 과금 구조를 손대지 않았고 게임시스템도 모두 리니지 방식을 차용했다.

게임 즐기는데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돈 있는 자들이 노력하는 자보다 더 잘 나가는 모습을 게임 속에서도 봐야 한다는, 리니지 신화의 그림자로 비판 받는 과금정책과 헤비 과금러 위주의 시스템 운영 등 예전 성공방식을 그대로 썼다. 유저들이 등을 돌린 것도 이 때문이다.

그 대가로 엔씨소프트의 시가총액은 2주 만에 5조원이 증발했다. 1900억원 가량의 자사주 매입 카드를 꺼냈으나 아직은 주가가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 사태를 뜯어보면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 최악의 결정을 하는 '집단사고(group think)'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엔씨소프트 측은 민심을 달래기 위해 블소2의 대대적인 개선작업에 들어갔다. 게임을 고치면 문제가 해결될까. 이 사태는 긍정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신뢰도가 떨어져서 생긴 일이다. 게임 개발프로세스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계속 반복될 문제다. 결국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지배구조다. 창업주가 개발업무에 손을 뗀 넥슨, 넷마블 사례를 보니 어쩌면 김 대표의 결단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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