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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 뿐인 자본, 신종자본증권]흥국생명 콜 행사, 관례는 지켰는데 '법규'는?②금융감독원세칙 상환요건 미달…'제도-관행' 모순

고진영 기자공개 2022-11-28 09:14:07

[편집자주]

흥국생명이 2009년 우리은행 사례 이후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를 결정하면서 자본시장에 예상치 못한 후폭풍이 불었다. 금융당국까지 나서면서 사태를 진화했고 결국 흥국생명은 입장을 번복해 콜옵션을 행사했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30년 혹은 그 이상이고, 발행사가 자기 의지대로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도록 설계돼 그 특징을 토대로 자본으로 인정받는다. 다만 흥국생명 사태 이후 신종자본증권을 진정 자본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THE CFO가 조명하고자 하는 곳도 이 지점이다. 더불어 금융사보다 발행 규정이 느슨한 비금융사의 신종자본증권은 취지대로 발행되고 운용되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11월 21일 15:55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0년 전에도 신종자본증권이 '자본'이냐 '부채'냐를 두고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민간기업으로선 처음 공모시장에서 영구채를 찍었을 때다. 당시 자본이라 하기엔 애매하다는 금융위원회, 자본이 맞다는 금융감독원의 해석이 엇갈리면서 당국은 쉽사리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한국회계기준원에 결정을 맡겼는데 역시 합의점 도출에 실패했다. 그만큼 갑론을박이 복잡한 문제였다는 뜻이다. 회계기준원은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에 질의서를 보내 공을 넘겼고 최종적으로 2013년 10월 자본으로 분류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근거는 뭘까. 회계기준원은 ‘계약상 상환의무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채권의 형태를 따고 있지만 만기가 30년 이상으로 길기 때문이다. 이론상으론 연장해서 영원히 갚지 않고 이자만 낼 수도 있다.

그러나 신종자본증권이 실제로 통용되는 모습은 이와 다르다. 5년 안에 콜옵션(조기상환)을 행사하는 게 오랜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 사실상 투자자로선 5년을 만기로 믿고 신종자본증권을 매입하는 셈이다. 불문율을 깬 흥국생명이 시장에 엄청난 파장으로 다가온 것도 그래서다.

사태가 커지자 흥국생명은 ‘금융시장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비난을 이기지 못하고 7일 콜옵션 미행사에서 조기상환으로 입장을 바꿨다. 환매조건부채권(RP) 4000억원어치를 팔고 보험사대출로 1000억원을 채우는 방식이다. 어찌됐든 관행은 지킨 결과가 됐지만 문제는 제도적으로 따질 때 흥국생명의 콜옵션 행사가 규범에 맞는지 여부다.


우리 보험업법은 제114조에서 자금차입의 제한 등에 관한 사항을 ‘보험업법 시행령’이 정하도록 하고 있다. 시행령은 제58조 제4항을 통해 신종자본증권 등 자금차입 방법에 대한 세부사항을 ‘보험업 감독규정’이 정하게 했으며 감독규정(제7-11조의2)은 또 신종자본증권의 조기상환 요건 등은 ‘감독원장이 정한다’고 위임했다.

감독원장이 위임받은 부분은 ‘보험업감독업무시행세칙’이 구체적 내용을 정했는데, 신종자본증권의 상환에 대해 다시 보험업 감독규정 제7-10호 제3항부터 제7항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른 신종자본증권의 상환 요건을 보면 우선 갚은 이후의 지급여력비율(RBC)이 150% 이상이어야 한다. 만약 그 이하일 경우에는 아래의 모든 조건을 만족할 때만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

지급여력비율이 100% 이상이면서 상환 전까지 유상증자 등 자본적 성격이 강한 조달로 기존 신종자본증권을 대체할 것, 임의상환이 가능하다는 명시적 조항이 계약서에 있거나 당사자간 합의했을 것, 상환하지 않을 때의 금리 조건이 현저히 불리할 것, 그리고 상환 전에 대체자금 조달을 완료할 것 등이다.

여기에 흥국생명의 케이스를 대입해보면 9월 말 기준 RBC가 154.4%로 150%를 간신히 웃돌았다. 조기상환 이후론 150% 윗줄 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조건들을 충족해야 하는데 흥국생명은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경 금리 조건이 불리해지기는커녕 정반대다. 대체자본 조달 역시 유상증자가 아닌 RP 매도를 통해 상환 뒤에나 이루어진다.

이처럼 흥국생명이 시행세칙과 배치되는 입장 번복, 즉 콜 행사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금융당국과의 교감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유상증자 ‘등’이기 때문에 다른 자본조달도 가능하다는 등의 적극적인 유권해석으로 조기상환을 허락해줬다. 시장의 혼란을 가라앉히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승인이 적정했는지를 두고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물론 신종자본증권의 세부적 상환요건을 정한 ‘보험업감독업무시행세칙’은 행정규칙인 금융감독원세칙이고 법률이 아니다. 개정 권한도 금감원에 있다. 하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세칙 제정의 근거는 법률인 보험법이 주고 있기 때문에 금감원의 유권해석 재량범위를 마냥 넓게만 보기 어렵다.

법조계 관계자는 “금융감독업무를 명확하고 예측 가능하게 하기 위해 시행세칙을 정하는 것이고, 기준이 모호할 때는 법제처 등의 기관이 원칙을 구체화하라는 지적사항을 전달하는 경우도 꽤 많다”며 “재량권이 큰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시행세칙에 규정이 있다면 그대로 지키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실제 해외 사례를 보면 이달 초 호주 금융감독당국원(APRA)은 APRA의 ‘건전성 표준(Prudential Standard)’에 반하는 조기상환은 자제할 것을 당부하는 레터(Letter)를 보냈다. 대상은 예금수취기관(ADI)과 보험사들이다. 구체적으로 가산금리가 더 높거나 더 비싼 대체발행을 감수하면서 신종자본증권 콜을 행사해서는 안된다는 내용 등을 적고 있다.

신종자본증권의 자본성을 두고 국내에서 의구심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번 일은 제도와 관행의 모순을 더한 측면이 있다. 신종자본증권에 ‘자본’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후순위성과 이자 지급의 임의성, 그리고 만기의 영구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국생명이 울며 겨자먹기로 콜을 행사한 것은 시장에 만기가 길어봤자 5년이라고 못박은 것과 다름없다. 자본으로 인정할 명분이 부족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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