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피플&오피니언

금융지주 산하 VC와 애니멀 스피릿 [thebell desk]

박상희 벤처중기1부장공개 2023-03-17 09:00:38

이 기사는 2023년 03월 16일 07:5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모험 자본의 본성은 야성이다. 금융지주 산하 벤처캐피탈이라고 그 야성을 잃으면 안된다."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내정자는 최근 신한벤처투자를 이끌고 있는 이동현 대표에게 특유의 야성을 잃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주 산하 사장단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듣는 이야기가 리스크 관리일텐데 거기에 함몰되지 말고 모험자본 특유의 야성을 살린 투자활동에 힘을 실어달라고 주문했다는 전언이다.

신한금융지주 산하에는 은행, 증권사, 자산운용사, 저축은행, 캐피탈, 신탁, 카드, 보험사, 벤처캐피탈 등 다수 계열사가 포진했다. 이 가운데 창투사인 신한벤처투자는 신한금융지주가 2020년 인수한 네오플럭스가 전신이다. 신한금융 패밀리로 비교적 뒤늦게 편입됐다. 진 내정자의 커리어는 주로 리스크 관리가 최우선인 은행 중심으로 이뤄졌음에도 벤처캐피탈의 생리와 특성을 파악하고 격려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진 내정자가 말한 모험 자본의 본성은 '야성적 충동'으로 알려진 애니멀 스피릿(Animal Spirit)’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된다. 케인스주의 경제학의 창시자로, 정부 역할을 강조했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지만 기업인이 투자를 결정하는 데는 야성적 충동이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고객 돈을 최우선으로 지켜야하는 은행은 모험자본과는 속성이 다르다. 예금보험제도를 중심으로 한 은행 중심 시장은 리스크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으로 대표되는 모험자본 시장은 태생적으로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을 해야 한다. 은행권은 리스크 매니지먼트(위험 관리)가 더 우선이다. 그래서인지 금융지주는 그간 벤처캐피탈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2018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100% 자회사 설립이나 M&A를 통해 은행 중심의 보수적인 금융지주가 모험자본을 적극적으로 품기 시작했다. 비은행부문 수익 확대 차원이다.

최근 우리금융지주가 다올인베스트먼트 인수를 확정 지으면서 국내 5대 금융지주사(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모두 벤처 캐피탈을 품었다. 신한금융은 네오플럭스를 인수했고 하나금융과 NH금융은 각각 하나벤처스와 NH벤처스를 설립했다. KB금융만 금융지주 가운데 유일하게 1990년 초 설립된 창투사인 KB인베스트먼트를 보유했다.

오랜 역사를 가진 KB인베스트먼트조차도 AUM(운용 자산)이 2조원 넘는 VC 업계 톱티어로 올라선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2018년 한국투자파트너스 출신의 벤처캐피탈리스트 김종필 대표를 발탁해 운전대를 맡긴 것이 티핑 포인트였다. 김 대표 이전까지 CEO는 20년 넘게 은행 출신이 내정됐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도 네오플럭스를 인수한 이후 내부 출신의 이동현 대표를 CEO를 발탁했다. 조 회장의 뒤를 이을 진 내정자 역시 정통 벤처 캐피탈리스트인 이 대표를 전적으로 신임하는 모양새다. 이 대표 체제 하에서 신한벤처투자는 '1조 클럽'에 가입하며 빠르게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다올인베스트먼트를 인수한 우리금융 역시 기존 공동 대표 중 한명이었던 김창규 대표를 그대로 신임하기로 했다. 우리금융에서 1세대 VC벤처캐피탈리스트 출신 CEO의 경험과 전문성을 인정했다.

현재까지 금융지주 산하로 편입된 VC들은 자금력이 풍부한 계열사의 지원을 등에 업고 성장하는 모습이다. 전세계적으로 살펴봐도 은행 중심 금융그룹에서 대형 VC가 활약하는 것이 흔한 풍경은 아니라고 한다. 금융지주 계열 창투사와 신기사가 계속 덩치를 키워 시장 주축으로 자리 잡는다면 한국만의 독특한 VC 생태계가 구축될 수도 있다.

금융지주 계열사는 유독 외압과 낙하산 인사 논란이 잦은 곳이다. 아직까지는 벤처캐피탈 계열사는 정통 벤처캐피탈리스트 출신이 CEO로 선임되는 경우가 다수인 것으로 파악된다. 리스크 관리를 중시하는 보수적인 경영 문화가 자리잡은 은행 출신 낙하산 인사에서 애니멀 스피릿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금융지주 산하 벤처 캐피탈에서 계속해서 야성이 꿈틀거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주)더벨 주소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41 영풍빌딩 5층, 6층대표/발행인성화용 편집인이진우 등록번호서울아00483
등록년월일2007.12.27 / 제호 : 더벨(thebell) 발행년월일2007.12.30청소년보호관리책임자김용관
문의TEL : 02-724-4100 / FAX : 02-724-4109서비스 문의 및 PC 초기화TEL : 02-724-4102기술 및 장애문의TEL : 02-724-4159

더벨의 모든 기사(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copyright ⓒ thebell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