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the Musical]한국소설 창작뮤지컬 <부치하난>, 고래 유영하는 판타지 기술 눈길라이브러리컴퍼니 제작, 첨단 기술과 아날로그 감정의 만남
이지혜 기자공개 2024-10-07 08:25:07
이 기사는 2024년 10월 02일 10:1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어떤 영화 마니아들은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도록 자리를 뜨지 않는다고 한다. 영화 음악을 들으면서 만든 이들을 보며 작품의 감동을 마음 속에 되새기기 위해서다. 그래서인지 점점 많은 영화들이 엔딩 크레딧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의 시선을 고려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시각예술의 장인정신이 아닐까.뮤지컬 <부치하난>은 그런 혼이 깃든 작품이다. 165분, 짧지 않은 공연시간 내내 괴로운 현실과 고통, 그것을 넘어서는 사랑을 막연하게 그려내다 극의 막이 내릴 때쯤 고래를 등장시킨다. 1층 객석의 관객 머리 위를 날며 2층 관객과 눈을 마주치는 거대한 고래. 삶, 괴로움, 현실의 속박에서 벗어나 부유하는 고래는 작품 <부치하난>의 메시지를 은유하며 감동을 되새겨준다.
◇시각적 판타지로 차별화된 뮤지컬, 몰입감 극대화
뮤지컬 <부치하난>은 장용민 작가의 소설 『부치하난의 우물』을 원작으로 한다. 작품의 큰 흐름은 원작과 같다. 전설 속 인물인 '부치하난'과 '올라', 그리고 현실 세계의 '누리'와 '태경'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개된다.
순수한 청년 '누리'는 전설 속 '부치하난'의 운명과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고 믿고 그가 사랑했던 여인 '올라'를 찾아가는 모험을 시작한다. 마침내 '누리'는 현실의 소녀 '태경'이 자신의 '올라'임을 깨닫고 힘든 현실을 이겨내며 사랑을 지켜낸다. 현실과 판타지가 맞물린 여정에 독자와 관객이 함께하는 셈이다.
그러나 원작과 큰 틀만 공유할 뿐 소설과 뮤지컬은 각기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원작 소설은 낙원상가와 탑골공원 등 서울의 실제 장소를 배경으로, 주위에서 볼 법한 인물들과 현실적 고통으로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서 출발한다.
반면 뮤지컬 <부치하난>은 낙원상가를 살짝 비튼 가상의 현실 ‘파라다이스’의 뒷골목을 무대로 삼고 있다. 이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살리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시대적, 장소적 배경을 가늠할 수 없는 등장인물의 의상을 통해 뮤지컬의 시각예술로서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을 잠시 잊고 약 세 시간 동안 다른 세계로 초대받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소설 『부치하난의 우물』과 달리 뮤지컬 <부치하난>은 시각적으로도 판타지적 요소를 강화해서 차별화를 꾀하는 동시에 관객의 몰입도를 높였다는 얘기다.
◇관객 머리 위를 유영하는 고래, 첨단 기술과 아날로그 감정의 만남
뮤지컬 <부치하난>은 사랑이라는 아날로그적 감정을 최첨단 기술로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 특히 돋보인다. 700석 규모의 극장에서 이 정도 규모의 세트와 기술이 구현된 사례는 한국 뮤지컬 역사상 손에 꼽힐 정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라이브러리컴퍼니 관계자는 “공연 제작에 쓰인 첨단 기술은 단순히 볼거리를 제공하려는 게 아니라 작품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파라다이스’의 허름한 뒷골목과 전설 속 드넓은 사막까지 생생하게 구현해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의도”라고 말했다.
특히 객석의 상공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고래가 눈에 띈다. 이 고래는 천장에 매달린 게 아니다. 로봇 공학과 고도화한 드론 기술을 활용해 섬세하게 조종된다. 관객들의 머리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이 고래는 1층 관객의 머리 위를 유영하고 2층 관객과 눈빛을 교환하며 극장 전체가 무대인 양 움직인다.
무대 연출에도 공을 들였다. 가로 13m, 세로 10m의 초대형 LED 스크린과 4K 30000 루멘의 초고해상도 멀티 프로젝터가 쓰였다. 여기에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최첨단 조명시설 키네틱 라이트도 활용됐다.
또 ‘부치하난’이 등장하는 판타지 장면에서는 실시간 3D 제작 도구인 언리얼 엔진, 3D 애니메이션 및 시각 효과 제작을 위한 소프트웨어 후디니 등 글로벌 콘텐츠에서도 최신기술로 여겨지는 소프트웨어 기술이 적용됐다. 특수 소재인 무대 바닥에 숨겨진 원격 통신 프로토콜 DMX 컨트롤러 팬과 페더 실크로 연출되는 장면들은 신비로움을 더했다.
채진아 라이브러리컴퍼니 대표는 “앞으로도 국내·외 디자이너와의 지속적으로 협업하고 연구해서 무대와 영상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이라며 “관객에게 최고의 라이브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뮤지컬 <부치하난>은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전설의 리틀 농구단> 등을 쓴 박해림 작가와 뮤지컬 <빨래>로 예그린뮤지컬어워드 예그린 대상, <렛미플라이>로 한국뮤지컬어워즈 작곡부문 음악상을 받은 민찬홍 작곡가, 뮤지컬 <마리퀴리>, <팬레터> 등을 연출한 김태형 연출가가 만든 창작 뮤지컬이다.
‘부치하난’과 ‘누리’ 역에는 정택운, 유영재, 노윤 배우가 캐스팅됐다. ‘올라’와 ‘태경’ 역은 임예진, 지수연, 이재림 배우가 맡았다. 이 배우들이 두 시대를 오가는 이중 역할을 소화하며 작품의 핵심 인물을 연기한다. 티켓 가격은 OP석과 VIP석이 12만원, R석 9만원, S석은 6만원이다. <부치하난>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11월 17일까지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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