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6월 04일 08시03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성과를 내려면 비용이 든다. 영업이든 마케팅이든 접점이 필요한 일에는 일정한 자금 소요가 따라붙는다. 증권사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만들고, 기회를 잡는 과정에서 법인카드는 오랜 시간 자연스러운 수단이자 관행이었다.증권사 실무자들 사이에서 요즘 가장 조심스러운 건 법인카드다. 누구랑 밥을 먹었는지, 무슨 자리였는지를 일일이 적어야 한다. 그저 쓴 만큼 쓰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사용의 정당성과 맥락이 더 중요해졌다. 조직은 '성과 없는 비용'을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고정비를 줄인다는 차원이 아니라 자원을 더 잘 쓰자는 취지에 가깝다.
메리츠증권은 올해 초부터 이런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 누굴 만났고 어떤 자리였는지를 영수증에 기재하는 게 기본이 됐다. 그러다보니 애매한 자리는 스스로 줄이게 된다는 게 현장 얘기다. 내부에서는 줄인 비용이 성과급으로 돌아올 거란 기대도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신한투자증권도 비슷한 분위기다. 일부 부서에선 식사 자리에 참석한 고객 이름을 쓰지 않으면 비용 처리가 어렵다는 말도 돈다. 한 PB는 "이제는 누굴 만났는지보다 왜 만났는지가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괜한 자리는 줄고 목적이 있는 만남에 집중하게 됐다는 얘기도 했다. 전면적인 통제없이 분위기만 바꿨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비용도 줄고 일의 밀도도 높아졌다는 평가도 들린다.
물론 불편함이 없는 건 아니다. 누구를 만나는 자리인지 매번 적어내는 건 실무자 입장에선 번거로운 일이다. 업무가 아니라 보고를 위한 카드가 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래도 방향 자체에 대한 이견은 거의 없다는 전언이다.
단순한 절감보다는 조직 내 자원 활용의 정돈이라 할 수 있다. 메리츠증권과 신한투자증권은 이런 정돈의 흐름을 빠르게 정착시킨 곳들이다. 낭비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일하는 방식까지 바뀌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지출에 맥락을 요구하는 건 일의 목적을 다시 묻는 일이기도 하다. 무의미한 소비 없이도 일이 돌아간다는 사실은 조직에 적잖은 울림을 준다. 증권사 본업이 결국 성과로 이어지는 만남에 있다는 걸 다시 확인한 셈이다. 작은 절제 속에서 일의 본질을 찾으려는 시도는 결국 조직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흐름은 분명하다. 법인카드 한 장을 둘러싼 달라진 풍경 속에서 조직은 본질에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다. 눈에 보이는 절감보다 더 깊은 변화, 그 조용한 움직임을 응원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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