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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베타맥스가 겹쳐보이는 이차전지

이영호 기자공개 2025-06-12 07:59:47

이 기사는 2025년 06월 10일 07시16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소니의 '베타맥스'와 JVC의 'VHS' 간의 비디오시스템 기술표준 전쟁은 1970~1980년대 영상저장매체 시장을 뜨겁게 달궜다.

베타맥스는 가격이 다소 비싸고 녹화분량이 짧지만 기술적 우위 덕분에 화질이 우수했다. VHS 특성은 달랐다. 가격이 저렴하지만 화질이 떨어졌고 녹화시간은 길었다. 기술표준 승자는 앞으로 십수년간 시장을 독점하며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승부는 1980년대 중반에서야 가려졌다. 승리는 VHS의 몫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베타맥스의 기술 우위는 비용 부담과 짧은 녹화분량에 빛을 잃었다. 소니는 호흡이 짧은 TV프로그램 녹화 수요를 겨냥했지만 결과적으론 오판이었다. 이때 쓰라린 패배는 훗날 소니가 '블루레이'로 차세대 영상저장매체 시장을 석권하는 원동력이 됐다.

불행히도 한국 배터리 산업은 베타맥스에 가까워지고 있다. 한국은 고성능 NCM 배터리를, 중국은 가격에 방점을 둔 LFP 배터리에 힘을 줬다. 현재로선 중국 메이커가 국내 플레이어를 압도하는 형국이다. 공교롭게도 베타맥스와 NCM 모두 기술 우위를 앞세웠다는 점이 유사하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국 LFP보다 한국 NCM이 더 우월하다는 인식이 대부분이었다. SK온, 에코프로비엠 등에 사모펀드 뭉칫돈이 몰린 건 이에 동의한 결과였다. 현재로선 오판인 셈이다.

이차전지 업계 관계자는 얼마 전 기자와 만나 "중국에 쏠린 공급망 리스크와 중국의 이차전지 기술력을 너무 얕봤던 것 같다"고 말했다. 뼈 아픈 자성이다.

업계를 취재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다. 자금수혈을 받지 못하면 곧 문을 닫아야 하는 회사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이 신규 자금을 확보하더라도 앞으로 얼마나 더 자금이 필요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에선 대부분 기업에 매도 리포트를 내며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그 사이 정권이 바뀌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집에는 전고체 배터리 R&D와 세제 지원 확대 등 이차전지 산업을 콕 집어 지원을 약속했다. 다만 장기적 관점의 지원인지라 급박하게 흘러가는 업계 위기의식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 대통령이 AI에 100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것처럼 파격적이고 즉각적 대책이 시급하다. 이차전지 업계의 몰락은 파급력이 크다. JVC에 밀린 소니처럼 한 기업의 손실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다수 기업과 투자자, 소속 근로자는 물론 국가 성장동력과도 직결된다. 국내 이차전지가 베타맥스 전철을 밟아선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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