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12월 12일 08: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정유·석유화학 업계는 경기가 좋을 때 크게 벌고 경기가 나빠지면 대규모 적자가 나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과 경쟁사의 설비 신증설, 글로벌 경기 상황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워낙 많다 보니 다운사이클에 보수적인 경영전략을 취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생산량을 줄이고 비용을 조이는 게 일반적이다.에쓰오일은 다른 길을 걸어왔다. 위기 국면에 오히려 더 큰 투자로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가 확산하기 직전에 1조원을 들여 벙커C 크래킹센터(BCC)를 완공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도 1조3000억원 규모의 파라자일렌 설비 증설을 강행했다. 2014년 유가 폭락기에는 5조원 규모 초대형 설비(잔사유고도화시설·올레핀하류시설) 투자를 결정해 정유에서 화학으로 확장하는 디딤돌을 놓았다.
세 건의 투자는 업황이 바닥일 때 결단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체질전환을 겨냥했다는 점도 같다. 투자 시점에 무리수라는 업계의 지적도 꽤 있었다. 그러나 설비가 가동되기 시작할 때 업황이 호황기에 진입했고 에쓰오일의 이익은 예상보다 더 높게 치솟았다. 에쓰오일이 업계 후발주자였지만 수익성 면에서 선도 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배경이다.
2023년부터 본격화한 샤힌 프로젝트도 이 투자 문법 위에 있다. 총 9조원 이상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에쓰오일 창사 이래 최대 규모 다운스트림 투자다. 모회사인 사우디 국영기업 아람코가 전 세계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다. 샤힌 프로젝트가 가동하면 에쓰오일은 정유 중심 기업에서 고부가 화학 중심 기업으로 체질이 바뀐다. 장기적으로는 수익성 구조 자체가 달라지는 변화다.
그러나 에쓰오일을 둘러싼 대외 환경은 녹록지 않다. 국내 석화업계는 정부와 함께 사업재편을 진행 중이다. 글로벌 경제 성장 둔화와 중국발 저가 공세 등으로 구조적인 불황이 계속된 탓이다. 울산산단에 설비를 둔 에쓰오일은 샤힌 프로젝트 가동 전부터 에틸렌 등 석유화학 제품 생산 감축을 정부와 업계로부터 요구받고 있다. 투자 완료가 곧바로 실적 개선으로 이어졌던 과거와는 상황이 다르다.
샤힌 프로젝트가 준공하는 새해는 공교롭게도 에쓰오일이 창립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50년을 돌아보면 에쓰오일의 투자는 결정적 순간마다 회사의 궤적을 바꿨다. 위기를 기회로 바꿔온 에쓰오일의 승부수가 다시 한번 시험대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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