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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실사, '유연한' 의무는 통할까 ③모범규준, 힘의 균형 초점…예외규정, 효율성 저해할수도

황철 기자공개 2012-01-18 10:03:57

[편집자주]

2012년, 회사채 발행시장에 큰 변화가 예고됐다. 금융당국과 증권업계가 고민 끝에 만들어 낸 제도개선이 본격 시행된다. 사실상 무늬에 그쳤던 대표주관사의 수요예측과 기업실사가 의무화된다. 이로 인해 관행으로 굳어졌던 수수료녹이기나 바터(barter) 등도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새로 도입되는 발행절차의 내용은 무엇이고 그로 인해 어떤 변화가 생길 것인지 머니투데이 더벨이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이 기사는 2012년 01월 18일 10:0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회사채 시장 선진화 방안의 핵심인 기업실사(Due Diligence)의 모범규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금융당국은 최근 제법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시행세칙(7장 24조)을 마련하고 내달 1일부터 의무 적용하기로 했다.

모범규준은 큰틀에선 원칙론을 앞세웠지만 세부적으로는 자율성을 최대한 부여해 다소 유연한 입장을 취했다. 주관사·발행사에 운신의 폭을 넓혀줘 단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시장 불만이나 혼란을 최소화하는 데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과도한 예외 규정이나 완화 방침이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국내 회사채 시장처럼 잘못된 관행이 넓게 퍼진 경우 과도기적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강도높은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 또한 높다.

◇ 1월 중 내부통제시스템 구축 '발등의 불'

모범규준은 우선 발행사에 과도하게 집중한 힘의 균형을 맞추는 데 주안점을 뒀다. 정확하고 내실있는 기업실사를 위해서는 을의 위치에 있는 IB의 위상을 끌어올리는 게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판단.

총칙을 제외한 세부항목 첫장(2장)부터 주관사보다 발행사를 강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당장 주관사의 가장 중요한 의무로 꼽은 것이 발행사에 정확한 정보를 요구하는 것이다. 주관사 입장에서는 의무라기 보다는 사실상 권리에 가까운 조항이다. 금융당국은 기업실사 전 발행회사에 증권신고서의 거짓 기재로 인한 민·형사상 책임과 금융위원회의 행정조치 내용을 충분히 설명토록 했다.

수수료 외 대가 수취나 부당 이익 제공 행위를 금지하는 등 쌍방간 힘의 논리가 작용할 수 있는 연결고리도 끊었다. 대표적 불공정 관행인 바터(Barter)나 청약사무를 제3자에게 위탁하는 행위(모집주선 시)도 엄격하게 감시하기로 했다. 일련의 이해관계를 배제해 기업실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본론은 역시 실사의 주체인 주관사 역할에 관한 세부지침이다. 금융당국은 체계적이고 내실 있는 기업실사 능력을 쌓는 게 IB의 힘을 끌어올릴 선결과제로 봤다. 모범 규준은 일단 듀 딜리전스 관련 내부통제시스템을 이달 말까지 구축하도록 했다. 실사의 원칙과 이론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춘 조직을 우선적으로 꾸리라는 것이다. 관련 자료를 수집·분석할 수 있는 양질의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최근 증권사별로 리서치 조직을 강화하고 크레딧 애널리스트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이종기 금융감독원 기업공시국 수석은 "1월중 금융투자회사별로 리스크관리위원회나 이사회에서 내부통제기준을 만들어 의결을 마무리지어야 한다"며 "실사 담당자는 사후에도 듀 딜리전스 이행결과 보고서를 작성하고 관련 자료를 5년간 보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하반기 일차적으로 기업실사 관련 실태를 대대적으로 점검하기로 했다.

◇ "획기적 제도 정착, 실패 감수도 필요"

그러나 세부 과정에서는 주관사의 판단에 따라 실사 강도를 조절할 수 있게 하는 등 상당한 유연성을 발휘했다. 신용등급이나 보증, 일괄신고서 제출 유무를 가려 실사 기준을 완화할 수 있는 조항을 마련했다. 주관사가 위험 정도를 파악해 정식실사와 약식점검 중 하나를 임의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주관사에게는 운신의 폭을 넓혀 줬고 우량사나 조달이 빈번한 금융기관에게는 조달 편의성을 높여줬다. 시장의 현실을 반영해 제도 개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편과 혼란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나친 유연성이 오히려 제도 도입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같은 조치가 효용성을 가지려면 IB의 내부통제시스템이 보다 정교해야 한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시행 전인 제도이고 세부적으로는 보완할 것들도 많아 효과를 예단하긴 어렵다"며 "다만 국내 자본 시장처럼 비정상적 관행이 고착화한 경우 일정부분 혼란을 감수하고라도 강도높은 원칙을 적용해 시장을 끌고 나가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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