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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 헤드의 조건

김용관 ECM·AM팀장공개 2013-03-07 16:54:09

이 기사는 2013년 03월 07일 16:5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 거래가 개시되면 투자은행(IB)들은 사활을 건 정보전을 전개한다. 거래 당사자가 발송한 RFP 수령 기관 파악과 경쟁 양상을 체크하는 건 기본. 어제의 적을 오늘의 아군으로 삼는 대담함은 물론 언론을 상대로 역정보를 흘리며 상대방을 교란하기도 한다. 경쟁자가 세운 전략·전술을 사전에 파악하기 위해 내 사람을 심기도 한다.

하우스 간의 경쟁이 최고조에 이를 때는 물론 최종 프리젠테이션이 펼쳐질 때다. 사소한 변수 하나가 당락을 결정한다. IB 헤드가 동행하는 것은 물론 직접 발표자로 나서는 경우도 종종 있다. 외국계 IB들은 평소에는 보기도 힘든 바다 건너 본사의 헤드가 직접 날라오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이만큼 당신 회사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어요"라고 공개 구애하는 것이다. 주관사 선정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 IB 헤드가 참석할 정도로 정성을 쏟는 하우스에 관심을 기울일 수 밖에 없다. 이쯤되면 딜 소싱 단계에서 IB 헤드의 역할은 명확하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 증권사의 IB 헤드는 자신을 ‘장사꾼'이라고 부른다. "장사꾼이 돈을 벌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야지 체면차린다고 사무실만 지키고 있으면 안된다"고 했다. IB의 기본은 영업이다. 영업 잘하는 사람치고 사무실 지키는 사람은 없다. 특히 요즘같은 딜 혹한기에는 말할 것도 없다. 헤드가 참석하는게 유리하다는 판단이 내려질 경우 딜의 크기나 업무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렇게 수시로 기업체를 방문하고, 끊임없이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면서 딜 파이프라인을 꾸준하게 채워나간다. 지금 당장은 돈이 안되지만 수개월, 수년후 몇배의 이익으로 되돌아 온다는 것을 이들은 경험으로 안다. 그 이익이 개인적인 이익일 수도, 하우스의 이익일 수도 있다.

또다른 대형 증권사의 IB 헤드. 전략·전술을 수립하는데 능하다. 당장의 수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돈이 안되는 조직은 없애는 게 능사다. 비용은 쥐어 짜는 게 좋다. ‘소고기 먹고 싶으면' 돈을 벌면 된다.

호흡이 길어 수익 회수에 시간이 걸리는 업무는 관심 밖이다. 회사채 발행처럼 한건 두건 실적을 쌓아 돈을 벌어들이는 업무, IPO처럼 수년동안 작업해야 겨우 비용이나 건지는 업무는 기피 대상이다. 이들 업무는 기본적으로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좋은 관계를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다.

이 헤드는 직접 영업을 하지 않는다. 영업을 싫어한다기보다는 IB 출신이 아니라 영업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IB 영업의 생리를 잘 모르는 듯하다. 영업은 전문가인 RM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IB라는게 전략이나 잘 세우고, 엑스큐션(거래실행)만 잘한다고 되는게 아니다. 오랜 시간 얼굴 맞대고 네트워크를 쌓아야 겨우 딜 하나 수임할 수 있다.

그러니 잠재적 거래 상대방인 기업체에서도 원성이 자자하다. IB 헤드는 왜 코빼기도 안 비치는지 의아해 한다. IB에게 있어 기업은 절대 '갑'. 그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 딜 소싱의 기회는 멀어질 수 밖에 없다. "대표가 한번만 나서주면 딜을 따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직원들은 속으로 끙끙 앓기만 할 뿐이다.

따지고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아니다. 월급쟁이 임원의 한계를 엿볼 수 있다. 힘든 시기를 맞아 돈 안깨먹고 수익 높이는게 살아남는 지름길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나중에 책임질 일이 적어진다.

올초 SBS에서 방송한 '리더의 조건'이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우리 사회에도 리더의 자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을 대표하고 그들을 이끄는 리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IB 헤드의 평판은 결국 하우스의 생존으로 직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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