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銀, 시장안전판이냐 특혜지원이냐 엇갈린 구조조정 '특정 기업' 쏠림 논란…"정치논리로 정책금융 운용 안돼"
김영수 기자공개 2013-04-24 11:34:03
[편집자주]
새정부 출범이후 산업은행, 정책금융공사,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 재편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책금융기관 간 기능 및 업무 중복으로 정작 필요한 시기에 지원을 못하거나, 필요한 기업이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정책금융기관 재편은 그 동안 부처 간 이기주의나 정책금융기관 간의 조직 논리 등으로 인해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에 머니투데이 더벨은 산업은행 등 핵심 정책금융기관의 업무와 역할 점검을 통해 정책의 실효성을 제고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모색하는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이 기사는 2013년 04월 24일 11:3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산업은행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금융기관 재편의 중심에 놓여 있다. 산은의 핵심 역할 중 하나인 기업구조조정 업무도 원점에서 재검토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외환위기 이후 정부 주도의 각종 구조조정사업에 참여해 왔지만 구조조정 대상 기업간 형평성, 특정 산업·기업에 대한 정책금융의 과도한 쏠림현상 등의 문제점이 지적돼 왔기 때문이다.◇ 정치적 논리로 기업구조조정 독립성 훼손 우려
산은은 과거 대우그룹, LG카드, 금호아시아나그룹, 팬택, 대우조선해양, 쌍용자동차 등 굵직한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시장안전판 역할을 자처했다. 산은의 정책금융을 기반으로 한 기업구조조정 솔루션과 노하우가 다른 시중은행과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책금융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정책금융기관 재편과 맞물려 산은의 기업구조조정 업무 역시 정책금융의 효율적 분배 및 운용 차원에서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업계 관계자는 "산은의 민영화 중단은 민영화 추진 이전의 정책금융 기능에 충실하도록 재편되는 것을 의미한다"며 "기업구조조정 업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특정 기업 및 산업에 정책금융이 치우치지 않도록 기능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은이 대우건설을 인수(2010년)토록 면죄부를 씌어준 예외조항이 대표 사례다. 산은의 대우건설 인수 당시 걸림돌로 작용했던 자본시장통합법상 공개매수 조항에 대해, 금융위원회가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을 일부 개정해 '주채무계열이 주채권은행과 체결한 재무구조개선약정에 따라 주식을 매각할 경우 공개매수를 회피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을 추가로 신설해준 것.
산은 입장에서는 향후 유사 사례가 발생할 경우 구조조정 그룹 계열사를 인수할 수 있는 구조조정 툴을 하나 더 갖게 된 셈이다.
대우건설 인수와 관련해서는 과도한 매수가격뿐만 아니라 형평성 논란도 불거졌다. 대우건설은 1999년 부도를 맞은 대우그룹 계열사 중 ㈜대우에서 분할된 회사로 2006년 캠코가 금호아시아그룹에 매각했다. 2009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구조조정이 추진되면서 산은이 3년 만에 다시 되사오게 된 것.
산은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금호생명 역시 시장매각이 어렵게 되자 칸서스자산운용, 국민연금 등을 LP로 끌어들여 4800억 원에 인수했다. 감사원은 2010년 9~10월에 진행한 감사에서 산은이 부실기업인 금호생명의 경영권을 고가에 인수해 최대 2589억 원의 손실이 염려된다고 지적함으로써 대우건설에 이어 또 다시 고가매각 시비가 불거지기도 했다.
당시 구조조정을 추진했던 관계자는 "금호그룹은 대표적인 호남기업으로 대우건설 인수에 정치적 입김이 작용했다"며 "정부로서는 정책금융기관을 활용해 구조조정에 나선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산은의 구조조정 작업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히게 될 경우 당초 정책금융의 효율적 분배 및 운용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며 "국민의 혈세로 만들어진 공적기관이 정치적 논리로만 운영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 STX 구조조정…형평성 논란
현재 추진중인 STX그룹에 대한 경영정상화 계획도 정책금융의 효율적 지원 및 배분 차원에서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STX그룹은 지난해 5월부터 산은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고 구조조정을 추진해왔지만 조선·해운업황 악화로 STX조선이 자율협약을 신청하면서 최대 고비를 맞고 있다.
산은은 SX조선과 함께 수직 계열화의 또 다른 축인 STX팬오션 인수를 위한 실사를 진행중이다. STX팬오션을 인수할 곳이 없게 되자 산은이 인수를 검토하게 된 것이다. 다만, 조선·해운업황이 최악인 상황에서 STX팬오션을 인수할 경우 장기적인 손실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산은 관계자는 "STX가 무너질 경우 국내 금융산업 등 국가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파급효과가 상당하다"며 "민간부문이 장기적인 손실을 감내할 수 없는 만큼 정책금융 기능을 활용해 시장안전판 역할을 하는 산업은행이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 논리도 만만치 않다. 손실 발생이 자명한 상황에서 인수를 강행하려는 것은 또 다른 대우건설 사례를 만든다는 것이다. 당장 지분법손익이 반영되는 대우건설의 실적저하로 인해 적잖은 부담을 안고 있는 산은으로서는 STX팬오션 인수로 지분법손실 폭을 키울 가능성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산은의 STX에 대한 익스포저는 자기자본의 22%(4조 원, RG 등 포함)를 넘어서고 있어, 지나치게 과도한 수준"이라며 "STX팬오션까지 인수할 경우 STX그룹의 리스크를 정책금융기관인 산은이 대신 떠안아주는 것인 만큼 정책금융의 역할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한가지는 국내 4위 조선사인 STX그룹을 살리기 위해 과도한 정책금융을 쏟아 부었다는 비난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산은은 2009년부터 본격적인 민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계상황에 몰린 신아에스비, 21세기조선 등에 대해서는 신규자금 지원보다는 회수에 무게를 두고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조선·해운업황 회복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중소형 조선사에 대한 신규 지원은 무의미했다는 것이 산은의 설명이다. 정책금융기관이 대기업은 지원하면서, 중소형 사는 정리한 것이다.
또 STX팬오션 인수는 업황 악화로 고전하고 있는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
민간연구소 관계자는 "산은의 정책금융 기능은 국내 경제 및 기업을 뒷받침하는 순기능 역할을 해왔지만 특정 산업·기업에 대한 과도한 쏠림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며 "민영화가 중단된 상황에서 기업구조조정 등 정책금융의 키를 잡고 있는 산은의 역할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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