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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도크' 한진重 수빅조선소 가보니… 현지화 전략 초점, 글로벌 대형 선박 생산기지로 성장

수빅(필리핀)=강철 기자공개 2014-11-28 09:22:00

이 기사는 2014년 11월 27일 13:5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북서쪽으로 110km 떨어진 수빅(Subic). 마닐라에서 버스로 꼬박 3시간을 쉬지 않고 달리자 한진중공업 수빅조선소(HHIC-Phil)가 비로소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광활한 야드와 거대한 암벽, 진격의 거인을 연상케하는 골리앗 크레인 등이 눈앞에 펼쳐졌다.

조선소에 들어가기 앞서 먼저 방문한 곳은 조선소 인근 카스틸레호스(Castillejos) 지역에 위치한 한진빌리지였다. 한진빌리지는 한진중공업이 수빅조선소에서 근무하는 필리핀 현지 직원들의 복리후생을 위해 조성한 주택단지다. 현재 약 1000세대에 달하는 직원들이 거주하고 있고, 추가로 700세대를 확장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주택 외에 학교, 의료기관 등의 편의시설도 들어서 있다.

한진빌리지 입구에 있는 학교에서는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건강 검진이 이뤄지고 있었다. 100여명이 넘는 학생들은 무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냈다. 수빅조선소는 한진빌리지에 거주하는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무료 건강 검진을 실시하고 있다.

수빅조선소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지 인력들의 안정적인 삶이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한진빌리지에 대한 투자를 늘려왔다. 내집 장만과 자녀 교육, 적절한 의료조치가 여의치 않은 직원들에게 한진빌리지는 큰 힘이 되고 있다. 실제로 한진빌리지 내에 학교가 생긴다는 소식을 들은 몇몇 어머니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한진중공업에 감사함을 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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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빌리지 무료 건강 검진 현장

한진빌리지에서 나와 곧장 수빅조선소로 이동했다. 안진규 법인장(사장), 전우윤 관리본부장(전무), 김중규 영업관리담당(상무) 등 수빅조선소 임원들은 입구까지 나와 직접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인사를 마치고 본사 건물 옆에 위치한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겨 점심을 겸한 간담회를 가졌다.

안 사장은 인사말에서 "1만 1000개의 컨테이너가 적재될 수 있는 대규모 선박을 지난달부터 만들기 시작했고,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하는 LPG선도 착공했다"며 "글로벌 대형 선박 생산기지로 성장하는 수빅조선소의 제2의 도약을 잘 지켜봐달라"고 강조했다.

안 사장은 간담회 내내 현지화 전략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현지 인력들의 기술 숙련도와 근무 집중도를 최대한 향상시키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특히 빠른 기술 숙련을 위해 국내 엔지니어들을 수빅조선소로 대거 끌어오지 않겠다고 강조한 대목에서는 자체적인 역량 강화를 반드시 이루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느껴졌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현지 기술 인력들을 차근차근 양성하는 것이 현지화 전략의 본래 취지와 부합한다는 것이 안 사장의 생각이다.

현지화는 수빅조선소가 지속 성장이 가능한 조선소로 발전하기 위해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과제다. 고부가가치 선박의 제조와 원가절감이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 현지 직원들이 국내 엔지니어 못지 않은 기술력을 갖춰야 한다. 수빅조선소는 이를 위해 오래 전부터 트레이닝센터(SDC)를 건립해 설계부터 용접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별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교육 수료 인원은 4만 2000명에 달하며 이들은 각 생산 현장에서 실전 경험을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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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규 수빅조선소 법인장(사장)

간담회가 끝나고 본격적인 생산 현장 탐방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각종 선박 기자재를 가공하는 선각공장이었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후끈한 날씨 속에서도 인력들은 묵묵히 철판을 조립하고 자재를 나르는 등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선각공장을 거쳐 선박의 기본 자재인 후판이 겹겹이 쌓인 야적장을 지나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기자재를 실어 나르는 대형 선박이었다. 수빅조선소는 선박 건조 시 필요한 각종 기자재의 대부분을 부산에서 직접 조달하고 있다. 총 2대의 선박이 일주일에 한번씩 번갈아가며 기자재를 실어 나른다.

2009년 완공된 수빅조선소는 필리핀의 유일의 조선사다. 배를 만들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된 게 불과 5년밖에 지나지 않다보니 기자재를 공급해줄 수 있는 현지 협력업체가 사실상 전무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한진중공업이 수빅조선소 설립을 두고 장고를 거듭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열악한 조선업 인프라였다.

수빅조선소는 결국 부산에서 직접 기자재를 가져오는 방법을 택했다. 여기에는 영도조선소에 기자재를 납품하고 있는 부산 지역의 협력업체들을 배려하는 뜻도 담겨 있었다. 실제로 수빅조선소의 수주량이 늘어나면서 부산 지역의 조선부품 시장도 살아나고 있다. 수빅조선소 건립 당시 영도조선소의 폐쇄와 이로 인한 사업 파트너의 동반 몰락을 걱정했던 업체들은 현재 영도조선소 단독일 때보다 훨씬 많은 양의 기자재를 납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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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빅조선소에 정박 중인 기자재 운송선

기자재 운송선이 정박된 장소를 지나 10분 가량 걷자 길이 550m, 폭 135m의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6도크가 나왔다. 축구장 6개를 붙여놓은 크기의 도크 중간에는 2대의 골리앗 크레인이 튼튼한 지지대를 형성해주고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와 달리 눈앞에서 본 6도크의 위압감은 대단했다.

6도크에서는 총 2척(9000TEU급·6900TEU급 컨테이너선)의 배가 완공을 앞두고 있었다. 골리앗 크레인은 쉴 새 없이 블럭을 선박 상부에 쌓았고, 곳곳에서 용접 불꽃이 피어올랐다. 나머지 2척의 선박도 하부 구조물 구축 작업이 한창이었다.

총 4척의 선박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6도크는 한진중공업의 오래된 숙원을 풀어줬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4월 30만 톤급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을 수주했다. 영도조선소만 운영하던 시절에는 수주전에 참여하는 것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다.

6도크 좌측 가장자리 멀리 푸른색 지붕의 구조물이 보였다. 수빅조선소가 자랑하는 이동식 덮개인 쉘터(Shelter)였다. 거리가 멀어 정확하게 식별되지는 않았으나 쉘터 안에서는 선박 도색을 비롯한 실내 공정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수빅조선소 설립 검토 당시 열악한 조선업 인프라 못지 않게 발목을 잡았던 것은 현지 기후 조건이었다.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는 그렇다 쳐도 3개월이나 되는 우기와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세찬 소나기(스콜)는 원활한 조업을 어렵게 만드는 큰 장애물이었다.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열린 회의에서 우연찮게 "큰 우산같은 것으로 덮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왔다. 이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개발된 쉘터는 날씨 고민을 한번에 해결해줬다. 쉘터 덕분에 비로부터 선박 표면을 보호하는 동시에 무더위를 피할 수 있게 됐고, 이는 생산성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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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빅조선소 6도크. 멀리 보이는 푸른색 지붕이 쉘터(Shelter)

현장 탐방이 끝난 후 배를 이용해 버스가 세워져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멀어지는 수빅조선소의 전경을 바라보며 수빅조선소의 성패가 필리핀 경제를 좌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수빅조선소 덕분에 필리핀은 세계 4위의 조선업 경쟁력을 갖춘 국가로 부상했다.

수빅조선소는 필리핀 조선업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뿐만 아니라 한진중공업의 잠재 능력을 일깨우는 한편 조선소 운용 노하우를 진일보시킨 계기가 됐다. 더불어 삼성중공업을 비롯해 해외 조선소 건립을 검토 중인 경쟁사에 모범 답안을 제시했다.

한진중공업은 1937년 국내 최초의 조선소로 설립됐다. 선구자라는 입지에도 불구하고 부산 영도의 협소한 부지는 발전을 저해하는 큰 장벽으로 작용했다. 7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부산 영도에서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던 한진중공업은 수빅조선소를 통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필리핀 수빅에서의 신화를 창조할 날이 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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