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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重 수빅조선소, 승부수에서 희망으로 세계 최대 도크 운용…채용·사회공헌 100% '현지화'

수빅(필리핀)=박창현 기자공개 2015-12-01 08:30:49

이 기사는 2015년 11월 27일 13:2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수빅조선소는 운명이고 희망이다.' 한진중공업 경영진의 의지는 단호했다. 2011년 조선업이 최대 호황을 누리던 당시, 한진중공업은 결단을 내린다.

당시 한진중공업은 부산 영도조선소에 메인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하지만 8만 평 규모의 협소한 부지 탓에 세계적 추세였던 선박 대형화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경영진은 승부수를 던진다. 일반 상선은 필리핀 수빅조선소가, 특수선은 부산 영도조선소가 전담하는 투 트랙 전략이 그것이다. 하지만 후폭풍이 거셌다. 영도조선소 사업 재편 과정에서 노동조합과 갈등이 불거졌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정치적 현안으로 그 본질이 변질됐다.

최고 경영진이 직접 나섰다. 2011년 8월 직접 호소문을 들고 나와 체질 개선의 필요성을 힘주어 말했다. 메시지는 분명했다. '한계에 직면한 한진중공업에게 수빅조선소는 희망이다.'

4년이 지난 지금, 희망의 씨앗을 품었던 수빅조선소가 하나 둘 성과의 열매를 거두고 있다. 그 현장을 가봤다.

◇수빅조선소, 살아 숨쉬다

울창한 숲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어우러진 수빅만(Subic Bay). 넓다란 대지 위에 한진중공업 수빅조선소가 우뚝 솟아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광활한 야드와 길게 늘어진 암벽, 골리앗 크레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대형 선박들이 한 눈 가득 들어왔다.

분주함 속에 질서가 있었다. 멀리 후판 야적장에서는 끊임없이 기자재들이 실려 나왔다. 다시 기자재들은 조립대로 옮겨져 선박 기본 단위 부품인 '블록'으로 탈바꿈됐다. 블록들은 도크로 나와 겹겹히 끼워맞춰졌다. 수 백개의 블록이 모이자 비로소 배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수빅조선소
한진중공업 수빅조선소 선박 건조 현장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6도크(길이 550m, 폭 135m)는 분주함 그 자체였다. 국제 규격 축구장 7개가 들어가는 부지 임에도 발디딜 틈이 없어 보였다. 4척의 대형 선박들이 동시에 건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 면에는 1만1000TEU급 초대형 컨테이선 두 척이 웅장함을 뽐냈다. 뒷편으로 9000TEU 컨테이너선과 300K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이 뱃머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골리앗 크레인의 굉음과 노동자들의 망치 소리, 불꽃을 내며 울려퍼지는 용접 소리가 짐짓 수빅조선소의 심장 소리와 같았다. 수빅조선소는 그렇게 살아 움직였다.

수빅조선소를 총괄하고 있는 심정섭 사장의 목소리에도 활기가 묻어났다. 심 사장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미래를 보고 수빅조선소에 투입했던 많은 시간과 자본이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수빅조선소는 2018년까지 일감을 확보해 둔 상태다. 수빅의 심장 박동은 그 때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백조로 탈바꿈한 수빅조선소

연착륙 전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대규모 생산기지를 구축하는 데 많은 비용이 필요했고, 한진중공업이 그 부담을 온전히 질 수 밖에 없었다.

한진중공업은 2006년 수빅조선소를 설립한 이래 지속적으로 신규 출자를 단행했다. 건립 첫해인 2006년 1623억 원을 시작으로 2007년 469억 원을 투자했다. 공사가 한창 진행되던 2008년 3086억 원을 투입했고, 2009년 다시 한 번 1238억 원을 출자했다.

초기 6000억 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한 한진중공업은 이후 수빅조선소에 나온 수익을 기반으로 계열사 운영에 나설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 위기 여파로 신규 수주가 급감하면서 수빅조선소도 자금난을 겪었다.

수빅조선소

결국 한진중공업은 다시 한번 수빅조선소에 대한 자금 지원에 나섰다. 지원 방식은 수빅조선소로부터 받아야 할 채권을 출자전환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먼저 지난 2011년 수빅조선소 미회수 상사채권 3947억 원 어치를 출자전환해줬다. 2013년 상반기에도 3399억 원 규모의 상사채권이 출자전환됐다. 한진중공업 입장에서는 수천억 원 규모의 대여금과 매출 수익을 포기하고 수빅조선소의 미래에 베팅을 한 셈이다.

전방위적인 지원에도 수빅조선소는 한동안 제 몫을 해내지 못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조선업 자체가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실제 초기 비용과 사업 부진 여파로 설립 후 5년 간 1500억 원이 넘는 순손실이 쌓였다.

하지만 불황이 장기화되자 오히려 가격 경쟁력을 갖춘 수빅조선소의 강점이 빛나기 시작했다. 2011년 들어 안정적인 수주 잔고를 토대로 매출 1조 원 시대를 열었다. 특히 저가 수주 경쟁을 피한 탓에 2012년부터 2년 연속 350억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냈다. 지난해 최악의 조선업황 부진 탓에 28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올해 다시 300억 원 가량의 영업이익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감을 넉넉하게 확보하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수빅조선소는 2018년까지 수주 잔고가 2조 원이 넘는다. 상선 분야에서 35억 달러의 수주를 따냈고, 올해 3분기까지 16억 1214만 달러 어치의 상선 건조를 끝냈다. 여전히 19억 달러에 육박하는 일감이 남아있는 셈이다.

◇필리핀에 녹아든 수빅조선소

민간 외교 사절단으로서의 수빅조선소 역할 또한 업계 안팎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해외 조선소 건립 당시, 세계 각지를 후보지로 올려두고 검토 작업을 진행했다. 많은 논의 끝에 최종 결정한 입지가 바로 필리핀 수빅이었다. 최적의 조선소 입지 자연 조건을 갖춘 것은 물론 영어 생활권과 경제 특구라는 인센티브도 매력적이었다.

필리핀은 한진중공업과 인연도 깊었다. 한진중공업 건설부분은 1973년부터 필리핀에 진출해 40여 년간 항만과 공항, 경전철, 교량 등 수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현지 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실제 수빅조선소 건립이 결정되자 필리핀 정부는 아낌없는 투자를 약속했다. 8년 간 모든 세금을 면제해주는 것은 물론 50년 간 90만평의 부지를 월 임대료 1000만 원에 사용할 수 있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한진중공업과 수빅조선소는 사회 공헌을 통해 필리핀 정부의 호의에 보답했다. 현지 근로자들의 복지 증진과 주거 안정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한진 빌리지' 사업이 대표적이다. 주택 1000여 대를 지어 분양하는 사업으로, 수빅조선소 근로자라면 누구나 시세 대비 60%의 파격적인 분양가와 저금리 장기 상환 특혜를 받아 자기집 마련의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 또 한진 빌리지 내에 900여명의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학교를 지어 필리핀 교육부에 기증도 했다.

수빅조선소
수빅조선소 의료 봉사활동 현장

이외에도 조선소 의료진이 정기적으로 주민들을 대상으로 내과, 치과 등의 무료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태풍 등 재난 발생시에도 비상식량과 의료품 등 구호물자를 지원하는 등 현지 구호활동에 적극 참여해 오고 있다.

수빅조선소는 현지 주민들의 노동력으로 움직인다. 말 그대로 운명공동체다. 운명공동체의 결집력은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황무지나 나름없던 수빅만에 수빅조선소가 생기자 없던 도로가 생겨났다. 그 도로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집들이 들어섰고, 자그마한 상가도 생겼다. 현지법에 따르면 이 주택과 상가 건물은 모두 무허가 건축물이다. 철거 대상인 셈이다. 그네들을 보고 던졌던 한진중공업 현지 직원의 한 마디가 가슴을 울린다. "이것이 그들이 사는 방식입니다. 다 같이 먹고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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