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08월 01일 07:2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08년. 현대중공업은 CJ그룹에 7500억 원을 주고 하이투자증권(당시 CJ투자증권)을 인수한다. 지금 와서 얘기지만 "비싸게 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당시만 해도 초호황을 누리던 조선 업황 덕에 풍부해진 현금 자산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단이 필요하다는 명분이 뒷받침됐다. 언제 하향세로 돌아설지 모를 경기 사이클에 대비한 전략이라는 '사업 다각화론'도 힘을 받았다.현재. 본업인 조선업 불황이 장기화되자 현대중공업은 가장 먼저 하이투자증권 매각 카드를 빼들었다. 그간 시장에서 가능한 시나리오로 제기돼온 현대오일뱅크 프리IPO(pre-IPO)는 자구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애착이 덜한 계열사부터 현금화하려는 현대중공업의 의지가 읽힌다. 8년 전 매입가(7500억 원)에 이후 유상증자 참여분(3600억 원)까지, 하이투자증권에 투입한 총 비용은 1조 1100억 원. 현재 모회사 현대미포조선의 장부가로 반영된 매각 대상 지분가치(85.32% 기준)는 8261억 원이다. 어떻게 해도 손실을 피하기 어렵단 사실을 현대중공업도 잘 알고 있다. 그만큼 하이투자증권은 팔아야 할 자산인 것이다.
2012년. 하이투자증권은 당해 IPO 시장 최대어인 CJ헬로비전 상장(공모 규모 2932억 원)을 대우증권, JP모간과 함께 주관하게 된다. 기업 일생에 단 한 번 뿐인 상장 업무를 추진하면서 CJ그룹은 옛정에 한 때 식구였던 하이투자증권을 공동 대표주관사로 발탁했다. 트랙레코드(주관 실적) 면에서 딱히 내세울 것 없는 하이투자증권이 국내 티어원(Tier-1)급 증권사 및 굴지의 글로벌 IB 하우스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만으로도 뉴스거리였다.
선처의 대가는 공모청약 참패였다. 일반 청약률이 26%(경쟁률 0.26대 1)에 그치는, 대량 미달 사태가 발생했다. 누가 봐도 하이투자증권의 역량 부족이 원인이었다. 당시 CJ헬로비전은 성공적인 증시 입성을 위해 해외 기관 모집에 각별히 공을 들였고, 그 역할을 JP모간과 대우증권에 할당했다. 해외 네트워크가 없는 하이투자증권에겐 자연히 국내 마케팅 임무가 맡겨졌다. 이게 패착이었다. 지점 수가 대우증권의 절반에도 못 미치다 보니 총 3000억 원 어치 공모에선 국내 투자자 유치조차 버거운 일이었다. 결국 다른 주관사가 이를 거들면서 업무 과부하가 걸렸고, 인수단 전체가 실권 물량을 나눠 떠안는 상황이 야기됐다. 하이투자증권으로서는 IB 딜 수행 능력의 한계를 뼈저리게 실감한 사례였다. CJ헬로비전 IPO는 4년가량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이투자증권이 주관한 가장 큰 규모의 거래로 남아 있다.
현재. 하이투자증권 매각 주관사인 EY한영은 최근 잠재 투자자들에게 매물 현황을 담은 티저레터를 보냈다. 인수 가능 후보라 생각되는 수십 곳에 일괄 배포했다는 전언. 보통 파는 데 자신 있으면 이렇게는 안한다. 이 가운데 투자 하이라이트로 거론되는 요소 중 하나가 '초대형 IB(자기자본 최소 3조 요건을 갖춘)'로 거듭나고자 하는 금융사에겐 썩 괜찮은 물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이투자증권의 자본총계 7000억 원에 PBR(주가순자산비율)을 1배 가까이 적용한다고 가정할 때, (메리츠종금증권처럼) 덩치가 애매한 증권사가 갖다 붙이면 그림 좀 나오지 않겠느냐"는 논리. 굳이 강조할 것 없이 여기서 논제는 하이투자증권 IB의 경쟁력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산 사이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사점. 하이투자증권 매각은 한 때 좋은 줄 알고 너도나도 증권업에 뛰어든 국내 재벌들의 시각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앞서 현대그룹이 현대증권 경영권을 처분한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다. 대부분 증권사를 그룹의 조달 창구 정도로 여기고 계열법인화 했으나, 이젠 규제 강화 등 이유로 계륵 취급하고 있다. 지금은 현대중공업보다 재무 상태가 양호한 다른 그룹들도 유사시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카드로 증권사 지분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걸 그때 그때 받아주는 인수자가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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