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7년 03월 13일 07:3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 회장은 한달 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신탁업법을 분리 제정한다는 금융당국의 발표 직후였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의 한 부분인 신탁 업무를 따로 떼내 별도의 신탁업법을 만든다는 발표였다. 황 회장은 이를 불특정금전신탁의 부활로, 은행에 자산운용업을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했다.황 회장의 발언 직후 하영구 은행연합회 회장은 '종합운동장'론을 펼쳤다. 은행-증권-보험회사가 각각의 운동장에서 자신만의 경기(업무)를 하는 전업주의가 아니라, 종합운동장에서 모든 경기(은행·증권·보험)를 같이 하는 겸업주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한 곳에서 모든 금융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하자는 논리다.
하영구 회장과 황영기 회장간의 논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초에도 은행의 투자일임업 허용 여부를 놓고 대립했다. 하 회장은 "은행에 투자일임업이 허용되면 고객에게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황 회장은 "은행에 투자일임업을 허용하는 것은 국내 금융업 체계의 근본을 흔드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결과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한해 은행에 투자일임업이 허용됐다.
법적으로 투자일임업은 금융투자업의 한 종류다. 그런 만큼 은행에 투자일임업을 허용하는 것은 전업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다. 현재도 은행은 지주회사 산하의 자산운용 자회사를 통해 투자일임업을 겸업(兼業)하고 있다. 은행에 투자일임업을 허용하는 것은 은행이 투자일임업을 겸영(兼營)하겠다는 것이다. ISA로 한정되긴 했지만, 은행의 투자일임업 허용을 위한 단초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렇게 보면 황 회장이 1년 만에 '운동장'론을 끄집어 낸 속셈이 조금은 엿보인다. 신탁업법 제정을 빌미 삼아 증권사의 법인 지급결제 허용 문제를 부활시켜 보려는 계산으로 읽힌다.
그런데 신탁업은 투자일임업과 다르다. 신탁업무는 은행·증권·보험회사가 모두 겸영하고 있는 업무다. 은행은 1961년부터 신탁업 인가를 받았고, 증권사와 보험회사는 각각 2005년, 2007년부터 신탁업을 겸영하고 있다. 자본시장법에서 신탁업법을 떼내는 것을 놓고 은행만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다. 당장 금융투자협회의 회원사인 증권사 스무 곳이 신탁업을 영위하고 있다. 자산운용협회 회장이라면 모를까 금융투자협회 회장으로서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하 회장도 황 회장의 이런 약점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종합운동장 비유나 소비자 입장에서의 편리성 등의 논리가 그렇다. 그렇지만 현 상황에서 겸업주의 도입이 필요한 지 의문이다. 이미 모든 은행지주회사 산하에 자산운용 자회사가 있는 마당에 모회사인 은행에까지 투자일임업을 허용해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가뜩이나 은행 중심인 국내 금융업 체제를 공고히 할 소지가 다분하다. 또 투자일임 업무에 문외한인 은행원에게 투자일임 업무를 맡길 경우 신의성실 의무 위반이나 불완전판매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당장 지난해 일부 은행의 일임형 ISA 수익률 공시 오류와 고객통지 의무 위반 등이 대표적이다.
하 회장과 황 회장은 각각 은행과 금융투자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의 수장이다. 그런 점에서 각 권역의 이익 대변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타 권역에 대한 공격으로 성과를 내려고 하기보다는 ISA 혜택 확대나 은산분리 완화 등 묵은 과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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