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8년 06월 04일 09:0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종신연금(annuity)은 노후설계 측면에서 가장 적합한 자산이다. 종신연금은 수급자가 죽을 때까지 받을 수 있어 장수리스크를 완벽하게 방어해준다. 만일 한 개인이 자산 일부를 인출해 일정한 소득을 만드는 자가연금을 실행하면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언제 죽을지, 자산 수익에 영향을 주는 시장수익률이 어떨지도 감안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종신연금을 외면한다. 은퇴할 때 목돈으로 종신연금을 드느니 스스로 운용하면서 일정 금액을 인출하겠다는 사람이 많다. 노후에 가장 적합한 자산을 정작 외면하다니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이를 연금퍼즐(annuity puzzle)이라고 부른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첫번째 이유로는 민간 종신연금이 내재하고 있는 결함을 들 수 있다. 국민연금과 달리 종신연금은 지급액이 물가에 연동되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 저금리에 장수 사회가 되면서 연금액이 줄어드는 것이다. 게다가 연금은 일단 수령이 개시되면 중도 해지가 불가능하므로 유동성이 사라진다. 또 민간 종신연금을 대체하는 공적연금을 국가가 공급하기 때문에 민간 연금상품에 대한 수요가 낮다.
두번째는 사람들의 행동경제학적 특성에서 기인한다. 예를 들어, 퇴직연금 확정기여(DC)형에 가입한 사람들은 퇴직할 때 수령한 현금 일시금으로 종신연금을 구매하기보다는 스스로 운용하며 인출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손에 쥐고 있는 현금을 주고 미래의 현금흐름을 사는 것이 당장 손실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연금을 투자프레임으로 본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종신연금에 가입한 뒤 빨리 사망해 손해를 볼까봐 스트레스를 받는다. 1억원을 주고 종신연금에 가입했는데 2년 후에 사망하는 경우가 그렇다. 2년간 800만원 정도 받는 셈이니 9200만원 손해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렇게 손해 보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120세 이상까지 산다면 큰 이득을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투자프레임으로 종신연금을 보기 때문에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순수 종신연금보다는 일정 기간 내에 사망하면 환급금을 받는 혼합형을 선호한다. 미국은 주로 투자상품으로 은퇴소득을 마련하다 보니 고령화된 시점부터(예를 들어 80세 이상) 죽을 때까지 연금을 받는 장수연금을 장려했다. 이 정책을 장려한 건 80세 이전까지는 투자상품에서 은퇴소득을 인출하고, 그 이후는 장수연금으로 장수리스크를 피하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연금퍼즐에서 본 것처럼 사람들은 장수연금 대신 일정기간 내에 죽으면 돈을 환급해주는 혼합형태의 장수연금을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다 보니 연금 수령액이 낮아져 장수리스크에 충분하게 대비할 수 없어졌고, 정책의도도 희석됐다.
연금상품의 제도적 속성, 사람들의 행동경제학적 특징, 연금에 대한 투자 관점으로 우리는 노후를 종신연금으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 수명은 길어지고 있는데 장수리스크에 노출되는 위험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하나의 방법은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을 잘 활용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에는 연기연금제도가 있다. 자신의 연금수령시기에서 1년을 늦추면 1년 후에 7.2%를 더 받고, 3년을 늦추면 21.6%를 더 받는다. 5년까지 연기할 수 있으니 최대 36%를 더 받을 수 있다.
연기연금의 효과를 알아보자. A와 B는 국민연금으로 매월 100만원을 62세에 수령할 예정이다. 그런데 A는 62세에 수령하는 반면 B는 5년을 연기해 67세부터 받기로 했다. 매년 물가상승률이 2%라고 생각하자. 두 사람이 82세가 됐을 때 수령액을 비교해보면 A는 월 148만원을 받는 반면 B는 202만원을 받게 된다. 매월 54만원이 차이가 난다. A는 100세가 되면 약 290만원을 받는다. 이 정도면 장수리스크는 피할 수 있다.
대부분의 은퇴자들은 국민연금과 적립한 은퇴자산을 가지고 퇴직한다. 이 경우 장수리스크를 헤지할 수 있는 은퇴소득전략은 국민연금 수령 시기를 최대한 늦추고, 늦춘 기간 동안은 축적한 은퇴자산을 통해 소득을 충당하는 방법이다. 배구의 시간차 공격처럼 은퇴자산과 국민연금의 조합에서 국민연금을 늦춰 받는 시간차 공격을 활용해서 장수리스크를 극복해보자.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미래에셋자산운용 채권운용 CIO
미래에셋캐피탈 대표이사
미래에셋자산운용 경영관리부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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