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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을 바라보는 산업의 불안한 시선 [thebell note]

최은진 기자공개 2019-04-09 11:27:24

이 기사는 2019년 04월 08일 08:1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올해들어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면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화두가 두가지다. 바로 주주행동주의와 산업은행 구조조정. 행동주의 펀드인 KCGI와 한진그룹의 전면전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더니 산업은행의 대우조선해양 매각, 금호아시아나그룹 구조조정 등이 잇따라 터지며 핵심 이슈로 급부상 했다.

주주행동주의나 산업은행 구조조정은 '금융'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한다. '효율'에 방점을 두고 기업을 진단하고 솔루션을 제공한다. 얼마를 벌었고 얼마를 썼는지, 부채는 적절한 수준인지 등 정량적 지표들이 기업 평가의 핵심이다. KCGI가 한진그룹을 상대로 한 주주제안이나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을 구조조정하는 배경 및 방식 등을 살펴봐도 효율을 중심으로 한 숫자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기업은 이윤활동을 하는 집단이고 금융은 이를 신뢰하고 투자하는만큼 재무제표 상 숫자가 기업 평가의 잣대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금융의 순기능은 '자금줄'이고, 이는 더 나아가 기업 인큐베이팅 및 퇴출이라는 자정작용 역할까지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숫자에 기반한 금융의 칼날은 꽤 예리하면서도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효율이 반드시 올바른 의사결정으로 이어지진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금융이 지닌 리스크도 상당하다. 금융이 교만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산업 현장에 있는 관계자들은 금융을 논하면서 이런 얘기를 성토한다. 시장을 키우고 산업을 육성하려면 때론 효율이라는 욕심을 버려야 할 때가 있는데 금융은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그래서 금융을 무서워하면서도 신뢰하지 않는다고 한다.

요즘 금융 영역이 기업에 회초리를 드는 모양새가 바람직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은 기업의 장기적인 비전을 공유하는 데 미약하고, 숫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산업 현장 경영자들의 노하우나 감(感)를 인정해주지도 않는 분위기다. '구조조정 그 이후'에 대해서도 시너지 창출이나 경영 정상화와 같은 추상적인 말만 내놓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매각이 산업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현대중공업에 편입된 후 어떤 기술 개발로 승부를 낼건지, 아시아나항공 구조조정이 항공산업에는 어떤 타격을 주는지 등 구체적인 큰 그림이 없는 건 물론이고 이마저도 밀실에서 논의하고 있다.

금융은 어디까지나 금융 영역에서의 전문가이지 산업 전문가는 아니다. '숫자'로 따질 수 없는 산업의 영역을 금융은 어디까지나 고려하고 있을까. 산업 현장에 있는 수많은 종사자들이 체감하는 불안이 짙고도 무거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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