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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비메모리 경쟁력 점검]삼성전자가 놓친 세 가지②줄줄이 무산되는 반도체 빅딜, 장벽 만난 삼성 '인오가닉 그로스' 전략

김혜란 기자공개 2022-03-22 08:28:05

[편집자주]

삼성전자는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반도체 불모지에 씨앗을 심었다. 그 싹이 자라 '세계 1위 메모리 강국'으로 꽃피우기까진 18년이 걸렸다. 2005년에는 파운드리(위탁 생산)에 도전했다. 반도체에 세트(완성품)까지 다 하는 기업은 삼성이 유일하다. 삼성은 2030년 비메모리에서도 1위가 되겠다는 새 비전을 제시하며 반도체 신화 제2막의 장을 열었다. 삼성 반도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를 뛰어넘을 미래를 조망해 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3월 15일 08: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을 본격화한 뒤 지난 40년간 부단한 노력 끝에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했다. 후발주자였으나 미국과 일본 등 과거 메모리 반도체 선진기업과의 '쩐의 전쟁'에서 밀리지 않았고, 기술 격차도 크게 벌리며 세계 시장을 삼켰다.

삼성의 과거 반도체 사업 성장 전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오가닉 그로스(organic growth)'에 가까웠다. 번 돈으로 공장 짓는 식으로 자체 자원을 활용해 사세를 키웠다. 반면 비메모리 분야(시스템 반도체 설계·파운드리)는 메모리와 시장 특성이 달라 인수·합병(M&A)과 투자 등을 통해 단숨에 역량을 끌어올리는 '인오가닉 그로스(Inorganic growth)' 전략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파운드리 재진출을 선언한 인텔 역시 단기간 경쟁력을 갖추고자 M&A에 적극적이다. 반면 삼성은 2000년대 중반 파운드리 사업을 본격화하며 시스템LSI사업부와함께 집중육성한다는 청사진을 내놨지만, 이후 '빅딜'이라 할만한 건 없었다.

일각에선 M&A 기회는 놓치고, 관련 사업부는 오히려 매각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냈다고 지적한다. 삼성은 무엇을 놓쳤을까. 시간이 흐른 사이 삼성이 놓인 글로벌 반도체 시장 환경은 어떻게 변했을까.

◇부천 Fab 매각을 돌아보는 이유

삼성전자의 M&A를 애기할 때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기업이 있다. 네덜란드 차량용 반도체 팹리스(설계 전문) NXP와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독일 인피니언이다.

이들 기업 인수는 삼성 반도체가 취약한 칩 설계 역량을 단번에 끌어올릴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다. 시스템LSI 사업부도 2020년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향후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에 삼성도 신성장동력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고 직접 밝힌 적이 있다.

삼성이 설계한 자체 칩인 엑시노스(자료:삼성전자 홈페이지)

1998년 차량용 반도체 칩 설계 사업부 부천 공장(Fab, 팹)을 판 일이 다시 회자되는 것도, 그때 매각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충분히 고성능 차량용 반도체 설계 능력을 갖췄을 거란 아쉬움 때문이다. 당시 부천 팹은 삼성자동차 등과 함께 차량용 전력 반도체를 개발했다.

외환위기 여파에 따른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천 전력용 반도체 사업과 인력 1200여명, 지적재산권(IP) 전부 4억5000만달러(약 5600억원)에 페어차일드반도체가 샀다. 이후 페어차일드는 부천 팹에서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로직반도체(논리적인 연산을 수행하는 반도체)를 양산하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당시 비메모리 전문 인력과 자산을 판 건 삼성의 반도체 역사에서 오점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 삼성전자 전 고위임원은 "그때 부천 팹을 팔지 않고 키웠다면 요새 '핫'한 차량용 반도체는 충분히 만들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 페어차일드는 온세미에 24억달러(약 3조원)에 매각됐다.

◇글로벌 파운드리를 잡았더라면…

인텔은 파운드리에 재도전한 지 1년도 안 돼 이스라엘 파운드리 타워세미컨덕터 인수 추진 소식을 알렸다. 양사 모두 파운드리 점유율이 낮아 큰 변수가 없다면 최종 관문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타워는 8인치(200㎜) 웨이퍼 기반 파운드리 주력이라 공정자체는 구형이다. 세계 시장점유율도 1%대에 불과해 삼성에 위협이 되진 않을 거란 관측이 많다. 하지만 한 주요 증권사 반도체 담당 연구원은 "파운드리업을 하는 삼성과 SK하이닉스에 자극이 될 것"이라며 "파운드리는 기술뿐만 아니라 고객기반, IP가 중요하다. 구형 팹이더라도 타워가 축적해온 노하우와 두터운 고객 자산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2015년께 순수파운드리 글로벌파운드리 매각설이 나왔을 때, 삼성이 인수 기회를 잡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글로벌파운드리의 점유율은 10% 미만이나, AMD를 비롯해 250개 팹리스와 거래관계가 있다고 알려졌다. 앞선 삼성 전 고위임원은 "과거 글로벌파운드리 인수기회가 있었는데 결과적으론 불발됐다"며 "그때 인수했더라면 지금보다 상황이 훨씬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물로 나온 영국 팹리스 암(ARM)을 인수할 경우 칩 설계 역량을 크게 강화하는 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엔비디아의 인수 시도가 영국 정부 반대로 불발된 데다, 인텔이 공개적으로 인수 의향을 밝히고 있어 삼성이 노리기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EUV(극자외선) 파운드리 생산라인이 있는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공언했던 빅딜은 언제, 늦어버린 타이밍

삼성전자가 지난해 이례적으로 '3년 내 의미 있는 M&A 추진'을 공언하면서 시장에선 반도체 포트폴리오를 보강할 매물을 찾은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형성됐다. 이어 지난 1월엔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부품과 완제품 부문 모두 가능성을 열어놓고 (매물을) 상당히 많이 보고 있다"며 "조만간 좋은 소식이 나올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 달 뒤 독일 증강현실(AR) 헤드업디스플레이(HUD) 소프트웨어 전문기업 아포스테라를 인수했으나 딜 사이즈가 크지 않은 데다 인수 주체도 삼성이 아닌 자회사 하만이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한 부회장이 말했던 조만간 가능할 거란 빅딜은 반도체가 아닌 5세대 이동통신(5G) 분야 기업이었는데 막판에 무산됐다"며 "5G 사업 보강도 의미 있겠지만 시장이 기대하던 바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삼성이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사실 이미 타이밍을 한 번 놓쳤기에 당장 하고 싶어도 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엔비디아와 ARM, 중국계 사모펀드와 매그나칩 반도체, 대만 글로벌 웨이퍼스와 실트로닉스의 합병 시도는 각국 정부 반대로 모두 불발됐다.

반도체 국가주의가 짙어지면서 반도체 기업의 국경 간 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는데,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M&A에 나섰다가 시간과 비용만 허비하는 수가 있다.

한 M&A 전문 변호사는 "삼성이 지금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열심히 알아보고는 있으나 점점 견제가 심해져 M&A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당분간은 시장 상황을 지켜보면서 장고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다만 IP 역량 확보를 위해 국내 디자인하우스를 인수하는 것도 전략적으로 고려할 수 있어 보인다. 디자인하우스는 팹리스에서 설계도면을 받아 파운드리 생산공정에 맞게 다시 디자인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 삼성도 세미파이브 등 여러 디자인하우스를 에코시스템 파트너(DSP·Design Solution Partner)로 선정해 협력 중인데, 내재화도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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