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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정책 길을 묻다]"'규제완화' 방향성은 잡혔다…디테일은 지금부터"②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전무 "반도체 지원책 핵심키워드는 '부지·사람'"

김혜란 기자공개 2022-04-18 14:00:12

[편집자주]

전세계적으로 반도체 국가주의 물결이 거세지면서 산업에 대한 정부·정치권의 '패러다임 시프트'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간 소극적 지원에 그쳤다면 획기적인 인재양성책, 세제혜택, 규제완화 기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가 가장 절실하고 시급하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고 정부의 정책입안과 국회의 입법 지원은 어떤 식으로 이뤄져야 할까. 산업계와 행정, 입법부, 학계의 목소리를 듣고 대책을 모색해 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4월 13일 14:08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반도체를 생산하려면 사람과 공장 부지, 인프라, 자금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한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크게 보면 이 네 가지 부문에 초점을 맞춰 설계된다. 이 중에서도 기업 혼자 해결할 수 없어 정부 지원이 필수적인 부문이 있는데, 사람과 부지 이 두 가지다.

부지는 공공의 영역이고, 인재는 국가의 교육시스템이란 테두리 안에서 확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에서 정부에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도 부지 확보와 전문인력 양성 대책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사진)는 "반도체는 업황이 워낙 좋아 다른 산업에 비해선 자금 문제는 오히려 덜하다"라며 "가장 시급한 것은 사업을 할 수 있는 부지 확보와 인력난 해소"라고 힘주어 말했다. 새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공장을 적기에 지을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해소하고, 반도체특성화대학·반도체대학원 신설 등을 통해 인력을 더 많이 양성하겠다는 큰 그림을 내놨다. 방향성은 맞게 잡은 셈이다.

다만 아직은 큰 줄기만 잡혔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없는 데다 향후 국회 입법으로 풀어야 하는 사안도 많다. 앞으로 이해당사자와 정부, 정치권, 학계가 머리를 맞대 '디테일'을 하나하나 그려나가야 한다. 안 전무는 "인수위가 반도체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방향성을 세운 것은 고마운 일"이라며 "다만 너무 성급하게 해선 안 되고 디테일하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 전무와의 인터뷰는 경기도 판교 반도체 협회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반도체 투자환경 조성, '공공의 영역'으로 봐야

반도체 산업은 '속도 전쟁'에서 뒤처지면 나중엔 경쟁력을 완전히 잃을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선 반도체 공장 하나 지으려면 각종 규제 허들과 행정 절차를 넘고 민원을 해결하는 데만 수년씩 걸린다. 삼성전자가 평택공장을 완공하기까진 7년이 걸렸고, 2019년부터 추진한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사업은 첫 삽도 뜨지 못한 상태다.

반면 한국 기업이 미국이나 중국에 공장을 지을 땐 허가에서 완공, 가동까지 2년 정도가 걸린다. 삼성전자가 미국에 짓기로 한 파운드리 2공장도 올해 상반기 착공해 2년 후 가동을 목표로 한다.

일단 국내에선 부지 확보부터가 만만치가 않다. '수도권 공장총량제' 틀 안에서 부지를 결정해야 해 수도권 내에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수도권 밖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서울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를 벗어나면 인재들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안 전무는 "수도권은 부지 확보가 어렵고 인프라 지원도 잘 안 되며 향후 운영 시 규제도 강하다"며 "이렇게 안 좋은 조건임에도 기업들은 인재 확보 문제 때문에 수도권에 땅만 확보할 수 있으면 모든 걸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지를 정해도 용수와 전기 확보, 오·폐수 처리 등 기반시설을 구축하는 데도 난관을 지나야 한다. 예를 들어 발전소에서 공장으로 전기를 끌어오려면 다른 지역을 거쳐오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공장이 들어서는 지역뿐 아니라 인근 지역의 민원까지 모두 기업이 일일이 해결해야 한다.

안 전무는 "개별 기업이 민원을 모두 해결하기는 어렵다"며 "(반도체 투자환경 조성을)공공의 영역으로 보고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정부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실현하려면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을 비롯해 여러 법을 국회에서 개정해야 한다.

그는 "법이 나중에 무력화되지 않게 이해당사자와 중앙정부, 지방정부, 기업, 법률가들이 모여 관련 법을 한꺼번에 정비하고 국회에서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만의 경우 반도체가 국부산업이라 국민적 협력과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바탕으로 민원을 설득하는 데 정부가 직접 나서기도 한다는 것이다.

국회 '반도체 특별법' 처리 과정에서 봤듯 규제 완화 시도에는 엄청난 정치·사회적 갈등이 수반된다. 안 전무는 "작업자 안전과 근로자 건강, 환경 등 보호하고 지킬 건 지켜야 하나 규제가 너무 과해 산업이 파괴될 정도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라며 "규제의 적정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산업과 균형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국민적 공감대 바탕 '수도권 대학 정원 확대' 논의해야

반도체 인재양성도 수도권 규제와 얽혀 있는 문제다. 산업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데 한 번 짜인 교육시스템은 바꾸기가 어렵다. 2016년 622억달러였던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1280억달러로 두 배나 성장했으나 매년 배출되는 인력은 고정됐다. 구조적으로 인력난이 고착화될 수밖에 없다.

인수위 측도 "수도권 내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지역에선 신입생이 없어 폐교하는 대학교가 나오는 판에 정부가 무작정 수도권 대학 정원 늘리겠다고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학 내에서 자율적으로 학과 정원을 조정하기도 어렵다. 기초학문의 보호, 여러 당사자의 생존권 문제 등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 전무는 "지금 교육시스템에선 성장하는 산업의 인재를 제대로 양성하기가 어렵고 지역구 국회의원들에게 (지역균형발전을 이유로 수도권 대학 정원 확대를 반대한다고) 탓할 수도 없는 문제"라며 "국가를 먹여 살리는 산업은 대학 정원 외로 확대할 수 있게 하자는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확대하고 있는 반도체 계약학과는 현행법상 정원 외로 뽑는 게 가능하다. 기업이 운영하되 대학에 위탁을 주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다만 비용이 문제다. 대기업은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지만 중견·중소기업에는 큰 부담이 된다. 안 전무는 "중견·중소기업이 계약학과 운영할 때는 정부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도로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반도체 직업훈련학교'를 세우는 것도 대안이다. 정부가 지원하고 기업이 맞춤형 교육을 주도하는 형태다. 문과 졸업생이라도 직업훈련학교를 나오면 반도체 기업에 지원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한 법적 근거는 이미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반도체 특별법' 안에 들어있다. 제10조에 '수요에 맞는 인력 양성을 위해 산업교육기관에 직업교육훈련 과정이나 학과를 설치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세액'혜택' 아닌 투자 증대 위한 '공제'

안 전무는 세금 문제도 '혜택'이 아닌 '세액공제를 통한 투자여력 확보'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금을 감면하는 대신 그 이상으로 투자를 더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취지다. 안 전무는 "세액공제는 전 세계적으로 치열한 반도체 투자전쟁에서 국민이 우리 기업에 투자를 더 해서 살아남으라고 요청하는 차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판세는 지금 누가 빨리, 얼마나 많이 투자했느냐가 결정한다. 안 전무는 "지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투자를 더 해야 하는데 워낙 대규모 투자라 기업 입장에선 보수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주주중심주의의 미국 기업, 투자에 머뭇거리던 일본 기업은 생산기지는 쇠퇴했단 점을 상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안 전무는 "세액공제 비율은 기획재정부가 재정여력 등을 따져 정한 것이기에 지금 수준이 충분한지, 부족한지는 알 수 없다"며 "매년 모니터링해 판단해야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세액공제를) 많이 주면 줄수록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은 높아진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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