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 프리뷰]STX는 인적분할로 '영원의 약속' 지킬 수 있을까②종합상사는 STX·해운업은 그린로지스로 집중도 확대, 전략가 배치로 '승부수'
허인혜 기자공개 2023-08-07 08:17:26
[편집자주]
주주총회 안건은 기업의 미래를 담고 있다. 배당부터 합병과 분할, 정관변경과 이사 선임 등 기업의 주요한 결정은 주주총회에서 매듭짓게 된다. 기업뿐 아니라 주주들의 의견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특별·보통결의 안건들은 주주의 구성에 따라 통과되기도, 반대의견에 부딪혀 무산되기도 한다. 더벨이 주주총회 안건이 불러올 기업의 변화를 분석해보고 주주 구성에 따른 안건 통과 가능성 등을 전망해 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8월 03일 14:2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TX그룹에는 내로라하는 기업만 만든다는 사가(社歌)가 있을 정도였다. 사가의 가사에는 당시 STX그룹의 자신감이 그대로 묻어난다. 해양대국, 세계와 지구촌. 후렴과 2절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핵심 메시지는 '영원하라'다. STX그룹은 결국 사가 속 영원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STX는 9월 인적분할을 예고하고 있다. 주력 사업들을 각각의 기업으로 세운다. STX는 무역상사로, 신설법인 STX그린서비스는 해운·물류 기업으로 출범한다는 목표다. 사업회사 측면에서는 미래 먹거리 발굴이자 과거의 영광 찾기가 핵심 목표일 것으로 보인다.
◇왜 STX·그린로지스로 분할하나
STX가 밝힌 인적분할의 목표는 각 사업의 집중도를 높이려는 의도다. STX는 기업 내에서 4가지 카테고리의 비즈니스를 동시에 경영하고 있다. 에너지 사업과 원자재 수출입, 기계와 엔진, 해운·물류 등이다.
한 기업의 사업 영역으로는 다소 넓지만 역사를 보면 이해가 간다. 한때 재계 10위권을 노렸던 STX그룹이 적잖은 계열사와 사업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STX에너지와 STX조선해양, STX팬오션, STX중공업, STX엔진과 STX건설 등이 STX의 자회사였다. 어려움 속에 많은 계열사를 팔았지만 흔적은 STX에 남아있다.
사업의 범위가 넓은 것을 고려하면 STX가 인적분할로 교통정리에 나선 것도 이해할 만한 수순이다. 4개의 비즈니스 중 집중 사업군인 무역업과 해운업, 물류업을 살려 각 회사로 분할한다는 계획이다. 과거 흥아해운 인수전에서도 시너지와 함께 계열사 구조 개편을 염두에 둔 바 있다.
STX는 무역상사의 역할에 집중한다. 본래 STX는 금속과 철강 등 원자재와 에너지, 기계·엔진 등 산업재 트레이딩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여기에 전통적인 영역이었던 종합상사의 사업을 이커머스, 디지털 분야까지 확장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세계 최초의 원자재·산업재 B2B 플랫폼을 열어 빅데이터 기반의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배터리(이차전지) 원자재도 주목하고 있다.
STX그린로지스는 해운사업 분야에 초점을 맞춘다. STX는 자사 보유 선박을 통해 용·대선 사업을 펼치고 있다. 국내 1위의 제3자 선박 관리 회사인 STX마린서비스를 자회사로 뒀는데 합병 후 선박관리 사업이 STX그린로지스와 통합될 것으로 보인다. 5월 이사회를 통해 관련 건을 결의했다.
사업 집중도를 높이려는 의도는 신설 법인의 사명에서도 읽힌다. STX가 3월 분할 계획을 밝히며 지었던 신설기업의 가칭은 'STX그린오션'이었다. 원안이 해운과 조선업, 물류업 등 해상 사업 전반을 아우르는 범용적 사명이었다면 STX그린로지스는 해운업과 물류업으로 폭을 조금 더 좁힌다.
◇신설법인에 전략가 배치한 STX
STX는 주주총회 소집공고를 통해 신설회사의 이사진을 미리 고지했다. 대표이사로는 이우형 STX전략사업본부장이 내정됐다. 감사는 김연석 STX재무전략본부장이 맡는다. STX의 전략가들이 신설법인에 총출동하는 셈이다.
이우형 신임대표 내정자는 SK맨 출신이다. SK네트웍스에서 첫 발을 떼 1989년부터 2006년까지 긴 시간을 몸담았다. 이후 SK가스·SK어드밴스에서 2007년부터 2019년까지 일했다. STX에서는 상무 직함을 달고 있다.
담당했던 업무의 범위가 넓고, 각각의 업무를 맡은 기간도 오래돼 많은 분야에서 베테랑인 점이 강점으로 보인다. SK네트웍스 시절에는 89년부터 06년까지 석유화학팀 자리를 지켰다. SK가스에서는 영업개발본부장을 거쳤고, STX에서는 해운사업본부장을 지냈다.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다.
STX가 해운사업 확대를 노리고 뛰어들었던 흥아해운 인수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STX 자회사 STX마린서비스와 대주주인 사모펀드 AFC코리아(APC PE)가 합작한 STX컨소시엄은 2020년 흥아해운 인수를 추진한 바 있다. STX의 선박해운 사업과 흥아해운의 화학운송 경험을 합하고 계열사의 해운사업을 수직계열화한다는 목표였다.
이 내정자는 인수 추진 기간동안 흥아해운의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최종적으로 인수는 무산됐지만 STX가 미래 먹거리를 걸고 나섰던 인수전에서 이 내정자가 핵심적인 인물이었다는 점은 증명된 셈이다. STX는 인적분할이라는 새로운 전략 '선박의 키'를 다시 이 내정자에게 맡겼다.
대주주가 사모펀드라는 점은 'STX그룹 재건'이라는 대전제만 놓고 보면 유리한 조건은 아니다. 대주주 PF의 주인인 AFC코리아가 선박과의 인연이 깊은 곳이라는 점이 약간의 위로지만 결국 손을 털고 나가는 게 사모펀드의 목표라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TX의 인적분할에 STX그룹 재건이 연상되는 건 영원을 약속할 만큼 융성했던 STX그룹의 과거 때문이다.
쓰러져가던 회사가 인수합병으로 되살아나고, 괄목할 만큼 잘 나가다가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등 외풍을 맞고 다시 쓰러지는 스토리는 사실 STX 외에도 흔하다. 하지만 STX의 역사가 두고두고 회자되는 건 그 히스토리를 만든 주역인 강 전 회장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에 더해 짧은 시간 융성과 몰락이 반복됐기 때문일 것이다.
STX는 1976년 설입된 쌍용중공업이 전신이다. 외환위기로 어려워진 쌍용중공업을 전설의 샐러리맨 강 전 회장이 사들이며 2001년 STX가 됐다. 자신이 최고재무책임자(CFO)였던 회사를 매수했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조선호황기가 찾아온 데 더해 특유의 공격적인 합병 전략이 맞물리면서 사세가 급격히 커졌다. 2012년 유동성 위기를 맞기 전까지 재계순위 10위권에서 두산이며 LS그룹의 대항마로 꼽힐 정도였다. 강 전 회장도 한국의 100대 부자 20위권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해운과 조선 등 해양관련 사업 집중도가 높았던 STX그룹은 해양 사업의 명운을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강 전 회장은 재계의 야인으로 꼽혔지만 결국 다시 보통의 야인으로 돌아가게 됐다.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고작 약10년의 역사다.
성공의 역사는 짧았지만 여파는 길다. STX는 지난해 약 1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1조1886억원으로 전년 대비 28.4% 늘었지만 계열사들의 손실을 감당해야 했다.
STX는 올해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나선다는 각오다. 인적분할이 가장 큰 변화고, 신사업도 예정돼 있다. 이달 인도네시아에 합작법인도 설치했다. 이차전지 핵심원료인 니켈의 공급망을 구축한다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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