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70년 상징 파는 애경그룹, 절박한 고육지책의 득과 실유동성 압박, 마지막 카드 '애경산업'
고진영 기자공개 2025-10-15 16:48:15
이 기사는 2025년 10월 15일 14시51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달 중순 애경그룹이 드디어 애경산업의 새주인을 낙점했죠. 매도 주체는 AK홀딩스와 애경자산관리인데요. 최근 태광산업 측과 주식매매 MOU를 체결했습니다. 지금 AK홀딩스, 애경자산관리가 애경산업 지분을 각각 45.08%, 18.05%씩 보유하고 있고요. 매각가는 4000억원대 후반입니다. 애경 측이 애초 기대했던 수준엔 한참 모자라지만 솔직히 괜찮은 가격이죠.이르면 연내, 늦어도 내년 초에는 거래가 마무리될 것 같은데요. 애경그룹에겐 굉장히 큰 변화입니다. 애경그룹의 모태가 애경산업이잖아요. 1950년대 당시 애경유지공업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으니까요. 그룹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계열사를 판다는 게 보통의 결심은 아닐겁니다.
#AK홀딩스, 계열사 지원에 불어난 차입금
사실 애경그룹엔 다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재무적 이유가 가장 큰데요. 지주사인 AK홀딩스의 재무 부담이 지금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코로나 이후 계열사들한테 유동성을 지원해주다가 차입금이 너무 불었거든요.
AK홀딩스는 2020년부터 작년까지 제주항공에만 4차례에 걸쳐 2872억원을 밀어줬습니다. 코로나 탓이 컸겠죠. AK플라자와 AK아이에스에 지원한 금액까지 합치면 4500억원 남짓 됩니다. 여기에 또 AK플라자에는 1000억원을 빌려준 상태고요. 이 돈을 상당 부분 차입으로 충당했죠.
코로나 전인 2019년만 해도 AK홀딩스는 순차입금이 900억원도 안됐지만 올해는 6월 말 기준 6000억원을 넘겼습니다. 6년간 5000억원 이상이 늘었다는 겁니다. 2020년 이후 계열사에 내준 돈이 4500억원 정도라고 했는데 차입 증가폭과 규모가 비슷하죠. 밖에서 자금을 빌려와서 어려운 자회사들을 도왔다는 얘깁니다. 애경자산관리도 사정이 빠듯하고요.
애경자산관리는 연매출이 겨우 300억원밖에 안되지만 굉장히 중요한 곳입니다. 애경그룹은 AK홀딩스를 지주사로 두고 있지만 사실 옥상옥 구조거든요. 애경자산관리가 AK홀딩스 지분을 18.9% 들고 있고, 이번에 매각하는 애경산업 지분도 18% 정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AK플라자 최대주주이기도 하고요.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가 애경자산관리 지분 100%를 들고 있죠.
지배구조 정점에 있지만 사정이 빠듯한 이유는 그간 AK홀딩스뿐 아니라 애경자산관리도 같이 그룹사들을 지원해줬기 때문입니다. 2020년 이후 제주항공과 AK플라자, AK아이에스에 각각 200억원 정도씩 출자했거든요. 총 600억원이면 회사 규모와 비교할 때 상당한 부담입니다. 그래서 애경자산관리도 AK홀딩스와 마찬가지로 차입 부담이 확대됐습니다. 작년 말 순차입금이 536억원 정도예요. 코로나 전보다 350억원 정도 많아졌죠.
AK홀딩스와 애경자산관리 모두 차입구조도 굉장히 안좋습니다. 각각 총차입금의 83%, 79% 정도가 단기성이거든요. AK홀딩스는 6월 말 기준으로 약 5100억원, 애경자산관리는 작년 말 기준 430억원 정도를 1년 내 갚아야 하네요. 현금이 거의 없는 회사들이니까 차환이 필수적일텐데 여의치 않습니다.
#주담대로 끌어온 자금…'마진콜' 압박
그간 AK홀딩스와 애경자산관리는 자금조달을 하면서 절반 이상을 주식담보대출로 끌어왔습니다. AK홀딩스는 3180억원, 애경자산관리는 399억원을 주담대로 빌린 상태예요. 담보로는 애경산업과 제주항공, 애경케미칼, AK홀딩스 주식을 다양하게 맡겼고요. 특히 AK홀딩스는 제주항공 주식을 담보로 2000억원 이상을 대출했습니다.
하지만 제주항공은 올 들어 주가가 꽤 많이 떨어졌죠. 여객기 참사가 작년 말이었으니까요. 지금 주당 6000원대인데 사고 전과 비교하면 20% 정도 내렸고요. 그 탓에 AK홀딩스가 제주항공 주식을 담보로 대출한 금액 중에서 1000억원 규모가 담보유지비율을 못 맞추고 있습니다.
담보유지비율은 주식담보대출에서 대출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주식의 가치와 대출금액의 최소 비율을 말합니다. 은행이나 증권사가 1000억원을 빌려줬을 때 담보유지비율이 140%라면, 담보로 준 주식 가치가 최소 1400억원은 되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 밑으로 떨어지면 돈을 빌려준 쪽이 마진콜, 즉 추가 증거금을 요구하게 되는데요, 이걸 못 채우면 담보주식을 강제로 팔아서 대출금을 회수합니다. 이걸 반대매매라고 하고요.
물론 담보유지비율을 못 지킨다고 해서 실제 반대매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보통 기업과의 거래 관계를 고려해서 유연하게 좀 시간을 주기 때문이죠. 문제는 주담대 계약 연장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겁니다. 추가 담보를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고요. 실제로 기업 사례는 아니지만 당장 작년에 삼성전자 주가가 떨어지면서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이 담보를 추가로 제공한 일이 있었죠.
지금 AK홀딩스가 가진 제주항공 지분율이 50.4%인데 이중에 45.7%를 담보로 맡긴 상태니까 담보를 더 주긴 힘듭니다. 애경산업 주식도 45% 중에 43.6%가 담보로 가 있고요. 상환 능력이나 추가 담보 제공 여력이 거의 소진된 상황으로 여겨지는데요. 애경산업을 파는 이유겠죠.
이밖에 AK홀딩스가 애경케미칼 주식을 담보로 차입한 돈 중에서도 200억원이 지금 마진콜 선을 넘었거나 아슬아슬한 수준이예요. 이자 부담도 있기 때문에 애경산업을 매각하면 주담대 상환에 적지않은 부분을 쓸 것으로 보입니다. 애경자산관리도 마찬가지고요.
#왜 '캐시카우' 애경산업일까
그런데 매각 카드로 하필 애경산업을 꺼낸 이유는 뭘까요. 그룹에서 중요도로 따지면 AK플라자를 파는 게 타격이 덜하지만 이 회사는 지금 매력적인 매물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AK플라즈는 4년 전부터 '명품 없는' 지역 근린형 전략을 추진했는데 효과를 못봤습니다. 백화점업계는 지금 소비 양극화로 명품이 떠받치고 있으니까요. 2020년 이후 계속 적자 행진 중입니다. 요즘 M&A 시장이 만만치 않은데 잘 팔리기 어렵겠죠.
결과적으로 그룹 입장에선 든든한 캐시카우가 사라지게 됐습니다. 지금 애경그룹 구조를 보면 매출 규모는 애경산업이 애경케미칼이나 제주항공보다 적어도 가장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이익을 시현하고 있는 회사거든요.
그래서 이번 매각은 한 편으론 어쩔 수 없는 결정이지만, 다르게 보면 굉장히 리스키하기도 합니다. 단기적인 유동성 압박은 벗어날 수 있어도 그룹의 성격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니까요. 지금까진 화학과 항공산업의 변동성을 소비재사업이 보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외부 변수에 민감한 산업에 고도로 집중된 사업 구조를 갖게 된거예요.
다각화를 포기하고 재무 개선을 선택한 전략적 트레이드 오프인데요. 재무제표는 더 건전해지겠지만 이익 구조는 위험 부담이 커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인데, 중대한 전환점인 만큼 앞으로 새로운 방향 설정이 관건입니다. 매각대금으로 재투자는 어떻게 이뤄질지도 계속 시간을 두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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