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09년 03월 03일 13:5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숨죽인 투자시장에서 '관급펀드'의 활약(?)이 어느 때 보다 눈부시다. 이 중 최근 벤처ㆍ사모펀드(PEF)업계를 달구는 최대 화두는 11개 정부부처가 후원하는 신성장동력펀드.
종잣돈(Seed Money) 600억원으로 계획한 사업에 3조5000억원의 투자금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을 주도한 지식경제부 관계자들조차 예상치 못한 흥행에 놀라워 하고 있다.
당초 '녹색기술산업', '첨단융합산업', '지식서비스산업' 3개 분야에서 각각 1000억원짜리 펀드 1개씩 만들려고 했던 사업에 무려 36개의 사모투자회사(PEF), 창업투자조합 등이 몰렸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민간 기관투자가(LP)들이 투자를 꺼리는 시기에 정부가 나서 투자금 모집을 주도한 점이 주효했다.
게다가 투자조건도 상당히 좋다. 기존 사모펀드 등의 경우 대개 만기 6~7년, 의무적으로 투자대상을 확정해야 하는 출자약정기간은 3년 미만으로 설정돼 왔다.
또 투자손실이 발생했을 때 운용사들이 출자한 자금부터 손실처리에 사용하도록 한 이른바 '우선손실충당금' 도 내야했고 관리보수도 대개 2% 미만에 그쳤다.
그러나 이번 펀드는 만기 8~10년에 출자약정기간도 4~5년에 달한다. 관리보수도 2.5%를 받을 수 있고 기준수익률인 IRR 5%만 넘어선다면 추가수익 20%에 대해서는 성과보수까지 받을 수 있다.
이를 두고 업계 관계자들은 "일단 운용사로 선정만 되면 정부에서 돈 받아 4년간 편안하게 딜소싱하면서 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구조"라고까지 평하고 있다. 벤처조합 뿐만 아니라 중대형 PEF의 GP(무한책임사원 :펀드 운용사)나 LP로 활동했던 투자기관도 10여곳 이상 참여한 점이 이해가 간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한 곳이 으레 그렇듯 신성장동력펀드도 운용사 선정 전부터 예상치 못한 잡음이 일기 시작했다.
우선은 국내 LP들의 혼선이다. 정부가 펀딩에 앞장서고 있다보니 LP들 역시 어느 정도 '기여'를 해야 하지 않냐고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당초 지식경제부가 재무적투자자(FI)로 업계에 거론했던 곳 가운데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은 LP가 아닌 GP를 하겠다고 신청서를 내면서 일찌감치 발을 뺀 형국이다.
남은 LP 가운데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이나 우정사업본부는 "어느 선까지 정부에 호응해줘야 하나"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지식경제부를 시어머니로 둔 우정사업본부는 기금 가운데 벤처투자 한도 상당액을 제공할 것이란 추측이 돌고, 작년 PEF업계에 9000억원을 풀어줬던 국민연금은 올해 추가적인 펀딩여부나 시기를 신성장동력펀드와 겹치지 않게 조절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어떤 방식이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몸을 사렸던 LP들이 이번 펀드로 운신의 폭이 더 좁아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운용사나 투자금의 '성격' 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외국자본의 출자를 환영한다"는 정부의 방침 탓에 이번 펀드에 참여하겠다는 해외 GP나 LP들도 수십여곳에 달한다. 국적만 봐도 미국, 유럽, 홍콩, 중동 등 전 세계에 걸쳐 있다. 하지만 이들 운용사나 해외자금이 "한국의 녹색산업, 첨단산업을 직접 발굴해 투자하라"는 정부의 의도대로 움직여 줄지는 미지수다.
관련업계에서는 "일부 해외운용사나 해외자금이 자신들이 기존에 운용하고 있거나 투자자로 참여한 펀드에 한국정부 자금을 슬쩍 끼워 레버리지를 일으키려 한다"는 의구심이 제기된지 오래다. 이런 우려가 현실화될 경우 외국자본의 수익률 게임에 한국정부가 자금을 대준 꼴이 된다.
게다가 치열한 경쟁에서 심심찮게 불거져 나올 '특혜' 문제도 펀드의 순수성을 침해할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이미 업계에서는 "어떤 운용사가 누구에게 줄을 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런 의혹들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은채 펀드가 조성될 경우 향후 후유증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투자대상의 '실체' 도 의문이다.
총 3000억원 규모로 잡았던 펀드가 예상치 않은 흥행으로 8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민간연구소들 상당수가 이번 사업이 투자할 산업의 구체성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도대체 어떤 회사나 기술에 투자할지 애매하다"는 것이다.
자칫 기술력이나 사업성이 검증되지 않은 채 '테마주'만 형성하고 '벤처버블'과 유사한 '녹색버블'을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차가운 시선도 없지 않다.
신성장동력펀드를 기반으로 10년짜리 한국산업의 먹거리를 찾아내겠다는 정부의 의도는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민간기반의 펀드와 달리 '수익률'을 좀 희생하더라도 유망산업과 기업을 발굴해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순수한 의도가 현실화되려면 그만큼 '양질의 거래'와 '양질의 자본'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 벤처기업을 살리겠다며 의욕적으로 발행했던 프라이머리 CBO가 결국 총체적 부실로 투자기관의 생존을 위협하고 업계의 투명성을 훼손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신성장동력펀드가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지금의 흥행을 기뻐하기보다 오히려 냉정하게 현실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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