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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와 질긴 인연…화승그룹 1563억 '허공에' [화승 법정관리 파장]후순위 출자 반전 노렸으나 회생신청으로 물거품

최익환 기자공개 2019-02-11 07:57:11

이 기사는 2019년 02월 08일 07: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경영난을 겪던 화승이 법원 회생절차를 신청하며 모회사였던 화승그룹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1950년대 고무신에서 시작해 1980년대 르까프로 성공하기까지 화승그룹의 역사는 신발과 함께 이어졌다.

2014년 화승을 외부에 매각한 이후 이듬해 사모투자펀드가 이를 되사오는 과정에서 후순위 출자자로 참여, 1563억원을 투자했으나 이번 법정관리 신청으로 인해 출자금을 모두 날릴 위기에 처하게 됐다.

◇ '기차표 고무신'으로 시작해 '르까프'까지 흥망성쇠

화승의 전신은 1953년 부산에서 설립된 동양고무산업이다. 동양고무산업은 설립 당시부터 ‘기차표 고무신'을 내세워 국내 고무신 업계의 선두주자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후엔 라이벌로 거론되어온 국제상사(현 프로스펙스)의 왕자표 고무신과 함께 시장을 양분했다.

위기도 있었다. 고무신 업계의 경쟁이 격화되던 지난 1966년 동양고무산업이 부도를 맞았기 때문이다. 이후 8년간 회사는 법정관리를 겪으며 자구책을 모색하기에 이르렀고, 화학섬유 신발을 제조하는 풍영화성(현 화승인더스트리)을 설립해 운동화 생산을 시작했다.

1970년대 초반부터 꿈틀대던 당시의 운동화 시장은 소득성장과 함께 급격히 커졌다. 운동화를 중심으로 매출이 증가하자 자연스레 채무변제에도 속도가 붙었고, 마침내 지난 1974년 동양고무산업은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이후 1978년엔 나이키(NIKE)에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제품을 공급하고 이를 유통하기 시작하는 등 완벽히 위기 극복에 성공했다.

1986년부터는 나이키와 결별하고 자체 브랜드인 ‘르까프'(LECAF)를 시장에 선보였다. OEM 생산과 해외브랜드 유통으로 쌓은 노하우를 통해 토종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였다. 이후 1988년 개최된 서울올림픽으로 일어난 스포츠 붐은 르까프의 성장을 견인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운동화 시장이 사양산업으로 접어들자 회사 사정도 다시 어려워졌다. 국내에 직접 진출한 나이키와 아디다스 등과의 경쟁 역시 녹록치 않아, 대리점이 무더기로 이탈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1998년 IMF 금융위기 여파에 회사는 다시 부도와 회생의 길을 걸어야 했다. 화승은 2005년에 들어서야 다시 정상기업으로 시장에 복귀할 수 있었다.

◇ 화승인더스트리, 화승 매각하며 아디다스 OEM권 가져와

그러나 화승이 복귀한 스포츠의류 시장은 해외 유명브랜드 중심으로 재편돼 있었다. 세계적인 규모의 나이키와 아디다스를 비롯해 노스페이스와 뉴발란스 등 브랜드까지 국내 시장을 장악한 지 오래였다. 주력사업인 운동화마저 경쟁자가 너무 많은 레드오션(Red-Ocean)이 된지 오래였다.

3세 승계를 앞두고 있던 화승그룹은 부채감축과 지배구조 개선이 절실했다. 화승과 화승인더스트리가 영위하던 운동화 사업 이외에도 신사업인 △첨단소재 △자동차 부품 △종합상사 등 챙겨야할 분야도 많았다. 결국 하락세를 겪던 모태기업 화승이 매각대상으로 지목됐고, 2014년 물류업체 경일에 지분 50.23%만을 매각해 2대주주로 남았다.

그러나 경일은 화승과의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에 실패해 재차 매각을 추진했다. 기존에 보유한 창고 등 네트워크를 통해 화승의 르까프·케이스위스·머렐 등 브랜드 유통을 시도했지만, 유통 노하우 부족과 함께 마케팅비용 목적의 단기차입금이 증가하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후 2015년 산업은행과 KTB PE가 화승그룹과 함께 2463억원 규모의 프로젝트 펀드를 조성해 화승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화승그룹이 선순위와 후순위를 합해 1563억원을 투자했고, 현대해상과 농협 등 LP가 650억원을 펀드에 투자했다.

매각 직전인 2014년 말 화승의 2대주주였던 화승그룹은 회사가 가진 아디다스 OEM 사업권을 화승인더스트리로 가져왔다. 소비자의 요구가 시시각각 변화하는 직접 유통만 화승에 남기고, ‘알짜'로 평가받는 OEM 사업은 화승인더스트리가 담당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화승인더스트리는 3세 형제 중 둘째인 현석호 부회장이 지배하는 회사다.

안정적인 매출처를 빼앗긴 화승은 2015년 매출이 ‘반토막'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화승의 실적은 지난 2014년 매출 5619억원, 영업이익 155억원이던 것이 2015년엔 매출 2362억원, 영업이익 38억원을 기록했다. 마케팅 비용 등 판매관리비가 들지 않는 OEM을 떼어낸 영향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IB업계 관계자는 "화승의 매출이 급작스레 3000억원 정도 감소한 것은 OEM 사업권을 화승인더스트리에 이전한 이유 때문"이라며 "PEF의 투자 전에 결정된 사안으로 화승그룹이 경일 측과 자체적으로 진행한 내용"이라고 전했다.

◇ 1563억원 허공에 날린 화승그룹…이사회는 산업은행 주도

2015년 이후 화승은 토종 자체 브랜드 르까프와 해외 브랜드 케이스위스·머렐을 유통만 전담하며 기업가치 상승을 노렸다. 이를 위해 구주 인수대금 600억원을 제외한 투자금 전액이 단기차입금 상환 등 재무구조 개선에 사용됐다. 금융비용을 줄여 마케팅에 투자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아웃도어 시장의 수축이 찾아와 화승의 매출은 성장하기는커녕 오히려 줄어들었다. 마케팅 비용 등 지출이 증가하자 단기차입금의 비중도 다시금 증가했다. 협력업체들은 화승의 사정이 어려워졌음에도 거액을 투자한 PEF를 믿고 거래를 지속했지만, 결국 화승은 지난 1일 서울회생법원에서 포괄적 금지명령을 받으며 사실상 회생절차에 돌입했다.

이에 대해 화승 관계자는 "회생절차 신청 당시 회사 내부에서는 극소수의 임원들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며 "회사 차원에서도 PEF 등에 문의해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PEF에 1563억원을 투자한 화승그룹 계열사에도 크고 작은 재무적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화승알앤에이 △화승소재 △화승네트웍스 △화승티앤씨 △화승인더스트리 등 LP 출자사들은 PEF 지분 상당량을 조금씩 손실처리해온 상황으로, 예상보다는 타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선순위와 후순위를 합해 가장 많은 616억원을 출자한 화승알앤에이는 이미 지난해 9월을 마지막으로 PEF 지분 전량을 손실처리한 바 있다.

한편 총 5인(감사 1인 제외)의 이사진으로 구성된 화승의 이사진 구성은 △산업은행(PE실) 2인 △KTB PE 1인 △화승그룹 1인과 현 김건우 대표이사 등으로 이뤄져있다. 이같은 구성은 2015년 PEF의 인수 이후부터 꾸준히 유지돼 왔다.

시장에서는 화승그룹이 후순위 출자자로 1500억원 이상을 투입했다는 점과 회사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다는 점을 투자 포인트로 삼았으나 결국 LP들의 손실로 귀결됐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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