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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이' 바이오 기평, 투자자는 못 믿는다

민경문 산업2부 차장공개 2019-12-27 09:18:23

이 기사는 2019년 12월 26일 07: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기술성평가(기평)는 기술특례 상장의 첫 관문이다. 바이오테크 대부분이 기평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등급 지표는 기술력의 척도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정작 기평 결과는 ‘깜깜이’다. 제도적으로 이를 밝힐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일부 ‘우등생’만 공시를 통해 결과를 공개할 뿐이다. 공모주 투자자를 위한 핵심 자료인 증권신고서에서조차 '정보 공개'가 의무는 아니다.

특히 문제는 기평에서 낙방한 바이오회사에서 발생한다. A등급 미만의 점수를 받았다고 통보받는 게 전부다. 왜 떨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구체적인 풀(full) 리포트는 거래소만 확인 가능하다. 해당 바이오업체로서는 항의할 근거조차 찾기 어렵다. 간혹 ‘재심’을 요청했다가 통과되는 경우도 있다. 평가기관이 어디냐에 따라 점수가 달라지는 것과 무관치 않다. 바이오업체 입장에서 기평 결과를 ‘복불복’으로 받아들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평가기관은 왜 결과를 둘러싼 구체적인 내역을 공개하지 않는 것일까. 이유는 단 하나다. 아무도 결과에 책임을 지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펙사벡'의 간암 글로벌 3상 임상에 실패한 신라젠과 '인보사 케이주 논란'에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던 코오롱티슈진이 모두 기술성평가에서 AA등급을 받았다. 국내 기술특례 상장 1호 기업으로 주목을 받은 헬릭스미스 역시 임상3상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진 못했다.

합격과 불합격의 논리를 제시해야 하지만 평가기관 어느 곳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 평가위원 스스로 결과에 당당하지 못하니 이를 공개하길 꺼려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거래소에서 선정된 두 곳의 평가사들은 교수 등 외부위원을 따로 뽑기도 하는데 이들이 특정 바이오업체의 기술력을 검증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비전문가들이 모여 돈 몇 푼(약 1500만원) 받고 수행하는 형식적인 검증 절차”라는 지적도 나온다.

기평은 국내 회사채 신용평가사와도 묘하게 대비된다.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NICE신용평가 3곳 밖에 없지만 해당 등급리포트에는 평가 담당자 이름, 적용된 평가방법론 등이 구체적으로 명기돼 있다. 잡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회사채 투자자들의 신뢰를 일정 부분 얻고 있다. (NICE신용평가 관계사인 NICE평가정보·NICE디앤비가 더벨이 실시한 국내 기술성 평가기관 조사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은 점은 아이러니긴 하다)

거래소도 기평을 둘러싼 시장의 불신을 키우는데 일조하고 있다. 심사를 앞둔 바이오업체로선 거래소가 어떤 평가기관을 선정하느냐가 최대 관심사다. 몇 달 전에는 13곳이던 전문 평가기관 풀을 18곳으로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기평을 활용하는 IT기업의 수요를 맞추기 위한 용도라고 하지만 오히려 전문성과 평가 역량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평 외에 거래소 주도로 실시하는 전문가 회의는 ‘옥상옥’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불신이 쌓이면 기평 제도 자체가 투자자들한테 외면당할 수 있다. 믿고 거르는 '기평'이 되선 곤란하다. "기술성평가 기관을 평가해야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평가 자격이 없는 기관은 과감히 퇴출시킬 필요가 있다. 현 정부가 '미래 먹거리' 1순위로 꼽은 바이오산업 발전이라는 명분과도 맞닿아 있다. 정 안된다면 기평 없이 그냥 시장 판단에 맡기는 것도 방법이겠다. 기평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가 한국 외에 거의 없다는 점은 눈여겨 볼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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