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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코로나19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가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0-06-10 15:46:54

이 기사는 2020년 06월 10일 15:4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기업인수합병(M&A)계약이나 금융계약에는 통상 중대악화사유(Material Adverse Change: MAC) 규정이 포함된다. 계약을 체결한 후 MAC가 발생하면 계약을 해제하거나 계약 전부 또는 일부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M&A계약의 경우 MAC의 표준적인 내용은 계약체결과 클로징 사이에 당해 거래의 기본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인수대상 기업의 사업이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는 사실이다.

계약을 체결할 때 당사자 쌍방은 자신이 보유한 모든 예측정보를 활용한다. 심지어 아무리 발생 가능성이 낮다고 해도 전쟁의 발발이나 지진을 포함한 천재지변도 이제는 모두 다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MAC가 활용될 여지는 극히 제한적이다. 그래서 MAC는 계약의 해제보다는 계약 내용 재협상 요구의 근거로 활용되는 것이 보통이고 판례도 많지 않다.

미국 로펌 프리드 프랭크에 따르면 델라웨어 주 법원에서 MAC를 이유로 한 M&A계약 해제가 인용된 판례는 지금까지 단 한 건 밖에 없다. 2018년 에이크론(Akorn) 사건에서는 기업인수계약 체결 후 대상 기업의 재무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EBITDA가 86% 감소했고 기업가치는 주당 32달러에서 5-12달러로 하락했다.

여기서 법원은 MAC 조항이 계약체결 시에 알려졌던 리스크를 묵시적으로 매수인에게 분담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매도인측 주장을 배척하였고 제약회사인 인수대상 회사가 생산하는 3대 주요 품목에서 새 경쟁사들이 출현한 사실은 회사에 특유한 사정으로 보았다. 보통 산업 전반에 발생한 상황의 악화는 MAC로 인정되지 않는다. MAC는 산업 전반에 발생한 리스크는 매수인이 부담하도록 하고 회사에 특유하게 발생한 리스크는 매도인이 부담하도록 한다는 해석도 있다.

그 외 몇몇 판례가 계약의 해제를 승인하지는 않았지만 일정한 기준을 제시한다. 유의미한 기간 동안 이익이 40% 감소했다든지 2분기 연속 수익이 50% 감소한 것은 MAC에 해당한다고 본 판결이 있다. 한 영국 판례는 NAV의 20% 감소를 판단기준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물론 숫자가 크다고 반드시 MAC에 해당하는 것도 아니고 숫자가 작다고 반대로 해석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일시적인 실적저하는 MAC를 발생시키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보통이다. 결국 정량적 기준이 아닌 정성적 기준이 MAC 발생 여부를 결정하게 되고 개별 사안의 사실관계가 판단의 기준이 된다.

대부분의 M&A계약은 천재지변이나 에피데믹 같은 사유는 원칙적으로 MAC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한다. 코로나19도 그 차원에서 해석될 여지가 크다. 또, 이미 취약한 재정상태에 있는 회사의 경우 외부적 요인에 의해 상태가 더 악화된다면 그 외부적 요인을 MAC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여지는 거의 없다. 매수인이 그러한 사정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뉴욕 주의 한 판례(Lyondell)도 회사의 도산은 MAC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코로나19는 계약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코로나19는 M&A와 금융계약의 세계에서 매우 특이하고 새로운 변수이기 때문에 판단이 쉽지않다. 더구나 코로나19 자체의 미래도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같은 돌발 상황보다 훨씬 더 진행이 빠르기도 하다.

일부 국가에서는 금융계약의 경우 문제를 입법으로 해결하기 시작했다. 대학생 등록금대출계약이나 주택담보대출계약의 효력을 일시 정지시키는 것이 그 예다. 금융계약의 경우 계약체결과 클로징 사이의 간격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MAC 인정은 상대적으로 더 어려울 것이고 따라서 입법적 해결이 필요해진다. 물론 M&A 파이낸싱은 별개의 문제다.

사업장이나 생산시설 내 확진자 발생으로 인한 사업장 일시폐쇄, 다수 근로자의 격리, 또 여행제한 조치 등으로 발생하는 영업, 생산활동의 중단은 그 의미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MAC 관련 조항의 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지속성 기준은 설정이 더 어렵다. 한마디로 사업환경에 극단적인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기다.

현재 미국과 영국 법률실무계의 전반적인 의견은 코로나19를 사유로 MAC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면서 계약을 해제하거나 내용을 수정하는 것은 가능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가 회사의 사업과 가치에 중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그러한 사정이 상당한 기간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데 대해 매수인측이 무거운 입증책임을 진다. 특히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입증이 어려울 것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도 가장 효과적인 분쟁 해결 방법은 협상이다. 코로나19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계약체결 당시에 예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리스크를 당사자 쌍방이 재분배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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