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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0.02% 주주의 이사회 진출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1-09-15 09:00:05

이 기사는 2021년 09월 15일 09: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엑슨모빌의 0.02% 주주인 행동주의 헤지펀드 엔진원(Engine No.1)이 주주총회에서 3인의 사외이사를 이사회에 진출시킨 사건은 2021년 글로벌 자본시장 최대의 화제다. 지분은 작았지만 엔진원은 블랙록을 포함한 대형 기관들의 지지를 받았다. 엔진원은 엑슨모빌이 과거에 집착해 기후변화 시대에 걸맞은 변신에 실패하고 있고 그 때문에 지속적으로 기업가치가 하락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새로운 장단기 전략과 사외이사 자리 4개를 요구했었다. 엑슨모빌 이사회는 12인으로 구성된다.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그렇게 해서 엔진원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 엔진원은 위임장 대결에 회사가 쓴 비용과 거의 같은 액수인 3000만 달러를 쓴 것으로 알려졌는데 엑슨모빌 주가가 상승했는가. 상승했더라도 0.02% 소량이 얼마를 벌어주었을까. 통상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회사와 화해하면서 지출한 비용의 일부를 보전받는 전략을 쓰지만 엑슨모빌 사례는 화해가 아니고 정면 대결이어서 그에 해당되지도 않는다. 헤지펀드를 지지하는 기관들은 지지는 하지만 비용까지 분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총 승리 후에 엔진원은 엑슨모빌 사례와 유사한 목적으로 상장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나섰다. 엔진원은 고비용을 치른 대가로 받은 이름값으로 펀드 확충에 도움을 받는 효과를 누릴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엔진원이 최초 성공사례로 기억되기 때문이므로 다른 소형 펀드들이 같은 효과를 노리고 따라 할 수는 없다.

획기적인 기업지배구조 개혁으로 엑슨모빌의 주가가 올랐다는 보고는 없다. 주총 이후에 주가가 움직인 것은 유가 상승 때문이었다. 다른 석유회사 주가도 마찬가지로 올랐다. 컬럼비아대 카피 교수는 엔진원은 엑슨모빌이 화석연료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공격했지만 화석연료 가격 상승으로 수익이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결국 수익을 시현했지만 따지고 보면 판단 착오 덕분이다.

카피 교수는 엔진원과 같은 행동주의 펀드를 시스템 리스크 행동주의 펀드라고 부른다. 특정 기업의 실적보다는 포트폴리오 전체의 실적에 초점을 맞추기 떄문이다. 많게는 1만 개 이상의 종목에 투자하는 대형 기관들이 동조하는 이유다. 엑슨모빌이 환경오염을 줄이게 되면 엑슨모빌 자체보다는 시장 전체에서 리스크가 감소하기 때문에 기관의 포트폴리오는 수익을 시현한다는 것이다.

현재 글로벌 자본시장이 꼽는 가장 큰 시스템 리스크는 기후변화에서 발생한다. 시스템 리스크를 관리하는데 중점을 두는 펀드와 기관들은 주가의 단기적 상승에 집착하지 않는다. 기후변화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면 일부 기업 주가의 단기적 하락은 감수할 수 있다. 엔진원이 엑슨모빌을 겨냥해 성공했던 배경이 여기에 있고 엑슨모빌의 지배구조 개선이 주가 상승으로 연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시장이 엔진원의 캠페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엑슨모빌 사례는 주식회사 이사의 의무와 책임 측면에서도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엔진원과 같은 ESG 행동주의 헤지펀드를 통해 선임된 이사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의 문제다. 주식회사 이사들이 시스템리스크의 축소를 지향하는 헤지펀드와 대형기관들의 목적에 맞추어서 자신이 속한 회사의 수익을 감소시키고 주가를 하락시킬 수도 있는 결정을 내려도 좋은가.

이사는 선임되면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 사회적 이익을 위해 회사의 이익을 훼손하는 행동은 아직 위법한 충실의무 위반이다. 향후 엑슨모빌의 신임 사외이사 3인의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아마도 자신들의 활동이 ESG라는 큰 틀에서 이해되어야 하고 ESG 이념 구현은 결국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으로 귀결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회사의 목적 논의로 되돌아가게 된다. 어려운 사법적 판단의 소재가 생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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