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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60년 히스토리]‘락희개발’로 출발한 GS건설, ‘신흥강호’에서 빅5로⑤IMF 이후 급성장, 전통 강자들 제치고 상위권 진입…신사업 확대 관건

고진영 기자공개 2021-09-15 07:47:54

[편집자주]

건설업계에선 해마다 시공능력을 줄세우는 성적표가 매겨진다. 항목별 점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업계의 '파워 시프트(Power Shift)'를 짐작해볼 수 있는 연례 이벤트와 다름없다. 특히 대형사들에게는 상징성 싸움이자 자존심 문제로도 의미가 있다. 도입 60년, 시공능력평가를 통해 시장의 판도 변천사를 되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1년 09월 10일 15:21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GS건설은 2000년대 가장 무섭게 세를 불린 건설사 중 하나로 꼽힌다. 모태는 락희(樂喜)개발이다. LG그룹 창업주인 고(故) 구인회 회장이 1969년 자본금 1억원을 들여 세웠다. 6년 뒤에는 럭키개발로 간판을 바꿨고 1979년 럭키해외건설을 흡수합병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IMF 외환위기가 닥치기 전만해도 시평 10위권 뒷자리였는데 이후 대형사들이 줄줄이 밀려난 공백을 메우며 고정 ‘빅5’로 치고 올라왔다. 다만 3강 안착에는 고전 중이다. 올해의 경우 오랜 라이벌 DL이앤씨(옛 대림산업)가 분할한 틈을 타 3위를 탈환하긴 했으나 수성이 쉽지 않아 보인다.

◇락희개발, M&A로 뼈대 구축…IMF 외환위기 이후 '굴기'

GS건설이 시공능력평가 순위 30위권에 처음 이름을 올린 것은 1980년이다. ‘럭키개발’이라는 사명으로 25위에 랭크됐다. 그 전년 럭키해외건설을 품에 안은 효과가 컸다. 지금 서로 순위를 다투고 있는 DL이앤씨가 당시 2위, 현대건설이 1위, 대우건설(대우개발)은 5위에 이미 자리를 잡은 상태였으니 GS건설은 다소 등장이 늦었던 셈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성장 속도가 빨랐다는 이야기다. 1981년 증권거래소에 상장하고 1995년 LG건설로 다시 상호를 바꿨다. 1999년 8월 LG엔지니어링, 2000년 10월에는 백양개발을 흡수해 사업구조 뼈대를 완성해갔다.

특히 IMF 이후 찾아온 건설업계 불황 속에서 오히려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LG그룹 특유의 보수적 경영문화로 외형보다 내실경영에 집중한 효과가 컸다. 현금흐름과 수익성에 무게를 둔 덕분에 다른 건설사들과 비교하면 저가 수주가 거의 없었다.

실제로 GS건설은 2001년 상반기 상장건설사 중 최고의 수익성을 기록하며 그 해 처음으로 시평 5위권을 뚫었다. 그룹내 위상도 달라졌다. 출발 당시에는 ‘구색 갖추기’ 정도의 입지였으나 2000년대 초부터 주요 계열사로 대접받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성장세에 부스터를 달았다. GS건설의 상징과도 다름없는 ‘자이(Xi)’ 브랜드를 당시 론칭했다. 배우 이영애씨를 기용해 ‘앞선 생활로의 초대’라는 광고 카피를 내세웠는데 아직까지 성공적 마케팅 사례로 손에 꼽힌다. GS건설을 주택 강자에 올려놓은 동력이다.

◇'구씨 일가'와의 이별, GS그룹 대표 계열사로

파죽지세 속에 2005년 큰 변곡점을 맞았다. LG그룹 공동 창업자인 구인회 회장 일가와 허만정 회장 일가가 승계 문제로 각자의 길을 가면서 계열사간 분리작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당시 허씨 일가는 건설과 정유, 유통 등의 계열사를 맡아 GS그룹을 새로 출범했다. GS건설이 LG건설에서 이름을 바꾼 것도 이때의 일이다.

계열 분리와 함께 GS건설의 위상은 그룹의 간판 계열사로 한층 부상했다. 이 시기 시평 순위 역시 2004년 6위, 2005년 5위, 2006년 4위 등 매년 한 단계씩 점프했다. 2007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빅3 진입에 성공했는데 현대건설과 삼성물산, 대우건설, DL이앤씨가 독점하던 전통적인 구도에 매서운 위협이었다.

오너일가의 관심 역시 각별한 듯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2008년 허창수 회장의 동생인 허명수 당시 사장을 CEO로 올렸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오너 경영을 통해 힘을 실으려했던 의도로 읽힌다. 이후 순위 등락이 있긴 했으나 2010년까지 3위와 4위를 오가며 기세를 유지했다.

잘나가던 GS건설에 돌연 가시밭길이 깔린 것은 2012년이다. 상반기 대규모 영업적자를 내며 톱 5에서 밀려났고 2013년에는 1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2010년대 들어 해외사업장에서 저가수주 출혈경쟁을 펼치며 곪았던 부실이 한꺼번에 터진 탓이다. 연평균 영업이익을 5000억원씩 올리던 호시절이 아득해졌다.

창사 이래 최악의 악몽에 부딪힌 GS건설은 다시 승부수를 띄웠다. 오너 경영에서 다시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을 택했다. 이때 구원투수로 낙점된 인물이 지금 9년째 회사를 이끌고 있는 임병용 부회장이다. 부임 당시 오너 일가가 대표에서 물러난다는 내부 불안이 겹치면서 혼란스런 시기였으나 시련은 잠깐이었다.

◇임병용 호(號), '자이(Xi)'의 저력을 키우다

임 부회장은 특이하게 검사 출신으로 정통 건설맨은 아니다. 굳이 분류하면 재무통에 가까운데 수익성을 중시하는 경영 스타일로 잘 알려졌다. 2000년대 후반 그룹 차원에서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사활을 걸었던 시기에도 임 부회장이 인수금액을 6조원 이상 제시하지 않았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결국 조선업계가 불황으로 치달으면서 ‘신의 한수’였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는 전략적으로 자이 경쟁력을 키우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주택시장이 재건축과 재개발 중심으로 바뀔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예측은 맞아 떨어졌다. 자이의 브랜드 파워 덕분에 2015년 GS건설은 재건축 수주전에서 경쟁사들을 압도하며 사상 처음으로 연매출 10조원을 돌파했다. '5대 건설사' 타이틀 역시 되찾았다.

2018년 시평에서는 영업이익이 1조원을 돌파하면서 10대 건설사 중 가장 높은 실적을 냈다. 5년 만에 적자 1조에서 영업이익 1조로 변신한 셈이다. 지난 날의 어닝쇼크를 완벽하게 떨쳐냈다.


이후 2019년 4위로 한단계 상승, 올해는 3위로 재진입했다. 다만 이는 DL이앤씨가 분할에 따른 지배구조 재편으로 신설법인으로 분류되면서 재무성과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이유가 컸다. 때문에 내년에는 GS건설의 순위가 다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간 GS건설이 매출 대부분을 주택사업을 통해 냈다는 점도 양날의 검으로 지적되고 있다. 계속 성장을 위해서는 미래 먹거리 확보가 관건으로 꼽힌다. 실제 GS건설의 경영 문화는 당초 보수적 스탠스가 강했으나 최근에는 오너 4세를 앞세워 신사업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 신사업부문은 허창수 회장의 장남인 허윤홍 사장이 전담 중이다. 모듈러주택과 수처리운영 등 건설업 및 연관산업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꾸렸다. 올해 상반기 건축·주택, 플랜트, 인프라 등 3개 부문이 일제히 뒷걸음질했으나 신사업 부문은 매출이 50% 이상 뛰었다. 아직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못 미치지만 성장세만 보면 가장 눈에 띈다. 보수에서 '혁신'으로의 전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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