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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thebell note]

김규희 기자공개 2021-10-27 07:42:18

이 기사는 2021년 10월 26일 07:4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영화감독 함춘수는 수원에서 윤희정이라는 화가를 만난다. 희정의 작업실에 가 그림을 구경하고 저녁을 먹으며 가까워진다. 춘수는 환심을 사기 위해 자신을 숨겼지만 의도치 않게 결혼한 사실을 들켜버린다. 크게 실망한 희정은 화를 내고 혼자 집에 간다.

영화감독 함춘수는 다시 수원에서 윤희정이라는 화가를 만난다. 희정의 작업실에 가 그림을 구경하고 저녁을 먹는다. 하지만 그때와는 달리 칭찬 대신 희정의 작품을 비판한다. 결혼한 사실도 털어놓는다. 심지어 바지를 벗어버리는 등 스스로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럼에도 희정의 춘수에 대한 호감은 지속된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뉜다. 같은 장면이 반복되지만 결과는 다르다. 감독이 정한 제목은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다. 하지만 어떤 게 ‘맞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쌍용차는 새 주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서울회생법원은 지난 20일 우선협상대상자로 에디슨모터스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예비협상대상자는 없다. 인수전에는 3곳이 참여했지만 인디EV는 중도 포기했고 이엘비앤티는 자금 증빙을 제대로 못하면서 평가에서 제외됐다.

우협 선정 직후 강영권 대표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KDB산업은행의 지원을 요구했다. 그는 “마힌드라가 쌍용차를 인수할 때도 산은이 지원해줬는데 국내 기업이 인수한다는데 지원해줘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쌍용, 대우, 마힌드라 같은 재벌그룹이 포기한 회사”라며 “우리나라 기업이 회생시키려 나섰는데 산업계, 금융권, 정부 모두가 열심히 도와줘야한다”고 덧붙였다.

강 대표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말이다. 실제로 산업은행은 2010년 마힌드라가 들어왔을 때 곧바로 자금지원을 재개했다. 아직 회생계획안이 통과되기도 전이었지만 1500만달러 규모의 수출금융 한도를 열어주고 상환기일이 도래한 대출 중 540억원을 한도대출로 전환해줬다.

하지만 지금의 산업은행은 다르다. 22일 발표한 입장문에는 소신이 담겨있다. 산업은행은 “자금지원은 국민 부담으로 조성되는 만큼 자금조달 내용과 수준, 향후 사업계획에 대한 충분한 입증과 검토를 거쳐야 한다”면서 “인수 관련 협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언론을 통해 산은 지원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강조했다.

쌍용차 회생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강 대표는 테슬라를 넘어서는 전기차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천명했지만 의지만 갖고 되는 일은 아니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는 게 자동차 업계 중론이다.

17년 만에 국내 기업으로 돌아온다고 마냥 반길 일이 아니라 사업계획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때다. 성급한 자금 지원은 손실폭만 늘릴 뿐이다.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산업은행의 판단이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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