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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DB 머니무브]'컨트롤타워' 주관 쟁탈전, 계열간 경합 '혈투'⑤플랜 조정에 연금사업자 사활…최상위 상품 각축

양정우 기자공개 2022-05-18 08:15:55

[편집자주]

172조원 규모에 육박하는 확정급여(DB)형 퇴직연금 머니무브가 본격화되고 있다. DB 적립금은 오랜기간 예·적금과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 등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 운용돼 왔지만 최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 시행을 계기로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속속 옮겨가는 추세다. 이에 따라 퇴직연금 사업자 간 경쟁도 치열해지는 분위기다. DB 적립금 시장 변화 판도를 더벨이 진단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5월 17일 07:00 더벨 유료페이지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72조원 확정급여(DB)형 퇴직연금의 머니무브가 본격화되자 국내 연금사업자의 경쟁 강도도 치솟고 있다. 격변을 앞두고 있는 시장은 최상위 시장 지배자가 손쉽게 뒤바뀔 수 있기에 늘상 격전지로 변모한다.

DB 자금이 조 단위를 넘어서는 대기업은 복수의 퇴직연금사업자와 계약을 체결한다. 선두권 입장에서는 연금사업자로 낙점 받는 건 당연시된 수순이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주관사로 불리는 운용관리기관 지위를 얻는 데 사활을 건다. 특정 기업이 DB 플랜의 조정에 나설 신호를 포착하면 그룹 내 계열사 간에도 주간 자리를 놓고 혈투를 벌이고 있다.

◇은행·증권·보험 '세 축'…주관사에 희비 교차, 터줏대감도 불안

국내 퇴직연금사업자는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등 세 축으로 나눠진다. 과거엔 업권별로 은행은 안정성, 증권사는 수익률 등 추구하는 스타일이 구분됐으나 근래엔 이런 경계선이 뚜렷하지 않다. 퇴직연금 시장이 금융권 전반의 거대한 추동력인 게 분명한 만큼 각자 경쟁력 강화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시장의 최대 화두로 꼽히는 DB 머니무브를 놓고 이들 연금사업자의 경합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올들어 교보생명보험은 오랜 기간 고수해온 일부 기업의 DB 주관사 자리를 은행권 경쟁사에 빼앗기며 곤욕을 치렀다. 기업마다 규제 강화와 경영 환경의 변화에 맞춰 DB 플랜의 새 판을 짜면서 터줏대감과 같던 연금사업자를 단번에 갈아치우는 여건이다.

퇴직연금 시장은 크게 제도의 주체인 기업과 운용관리기관, 자산관리기관, 상품제공기관으로 나뉜다. 기업마다 다수의 연금사업자에게 자금을 위탁하면서도 주관사 지위를 가진 운용관리기관을 별도로 선정하고 있다. 상품제공기관은 DB 자금이 실제 투입되는 비히클을 가진 자산운용사 등을 지칭한다.

운용관리기관(주관사)과 자산관리기관은 역할이 상이하다. 주관사는 적립금 운용방법과 정보제공, 연금제도 설계와 계리, 적립금 운용현황 관리, 운용지시 전달 등을 수행하는 콘트롤타워로 여겨진다. 자산관리기관은 기업의 부담금의 보관하면서 계좌 관리, 자금 수령, 퇴직급여 지급, 운용지시 이행 등을 소화한다. 이 때문에 국내 최상위 연금사업자는 무엇보다 주관사 자리를 노리고 있다.


주관업무를 차지한 연금사업자는 단지 부가적 수수료를 얻는 게 목적이 아니다. 고객의 퇴직연금 플랜을 함께 점검하는 자리인 만큼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더 각별한 소통을 나눌 수 있다. 경쟁사 일격이나 자체 실책으로 지위를 뺏기지 않는 이상 중장기적 파트너로서 경쟁 우위의 입지를 고수해 나갈 수 있다. 다른 연금사업자와 비교해 분배 받는 물량도 크게 설정되는 게 시장의 관행이다.

자산관리(WM)업계 관계자는 "교보생명보험처럼 오랫동안 돈독한 신뢰를 쌓아온 기업이 DB 주관사 자리를 바꾸면서 내부 긴장감이 고조된 사례가 누적되고 있다"며 "사업 환경이 급변 추세를 보이면서 이번 기회에 주간사 자리를 꿰차고자 공격적 영업에 뛰어든 사업자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금융그룹 업권 중첩, '증권-보험' 계열 간 각축

국내 퇴직연금사업자 시장은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등 여러 업권의 금융사가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이들 핵심 업권마다 계열사를 둔 금융그룹의 경우 계열끼리 각축전을 벌여야 하는 영업 환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최근 대규모 DB를 보유한 SK하이닉스가 원리금보장형 상품에서 벗어나고자 스탠스 조정을 추진하자 미래에셋증권과 미래에셋생명이 치열한 경합을 예고하고 있다. 모두 연금시장의 강자로 꼽히는 미래에셋의 간판을 내걸고 있으나 각 연금 파트에서는 서로 가장 막강한 경쟁 상대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 경합에서 주간사 자리를 확보하는 연금사업자는 향후 그룹 계열의 순차적 DB 조정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가능성이 있다.

DB 머니무브의 핵심은 수익률 개선이다. 거대 자금이 수익률 1%대에 불과한 원리금보장형 상품에서 좀더 수익에 초점을 맞춘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 이런 시장 흐름에서는 연금사업자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게 결국 상품일 수 밖에 없다.

2021년 상위 10% 우수 퇴직연금사업자 현황. 출처:고용노동부

이 때문에 상품제공기관의 입김도 점차 세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본래 자산운용사는 주관사를 비롯한 연금사업자가 운용 실무를 맡기는 대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 수익률 경쟁이 본격화된 만큼 최적의 상품을 마련해주는 운용사의 입지에 힘이 실리고 있다.

DB 자금은 어디까지나 퇴직연금 재원이다. 자산운용사 입장에서 운용 기간이 상대적으로 롱텀(long term)인 건 장점이지만 안정성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 자금이다. 하지만 임금상승률보다 낮은 운용수익률이 머니무브의 이유인 터라 낮은 변동성을 유지하면서도 국채나 예금보다 우월한 수익률을 확보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샤프지수(sharp ratio, 수익률-무위험 수익률/표준편차)가 월등한 최상위 상품을 내놔야 기업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다.

수익률 하락의 하한선을 지지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내는 건 녹록지 않은 과제다. 자산운용사마다 최적의 솔루션을 내놓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근 글로벌 자산배분 전략으로 안정적 수익률을 거두고 있는 타깃데이트펀드(TDF)나 EMP(ETF Managed Portfolio)펀드 등이 업계가 주력 전략으로 눈여겨보고 있는 후보군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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