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운용 재도약의 조건]‘기존고객 치중’ 반전 골든타임 발목잡혔나⑤신영증권 중심 관리 집중…허남권 대표 재신임 ‘딜레마’
이민호 기자공개 2022-06-30 08:04:37
[편집자주]
히트 상품을 연달아 내놓으며 시장에 각인됐던 신영자산운용이 최근 수년간 존재감을 잃고 있다. 지난해 주식형펀드 설정액 급감과 연기금 일임자금 대거 이탈은 ‘가치투자 본가’라는 위상이 무색할 만큼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수수료 수익은 전성기를 구가했던 2017년이후 불과 4년 만에 반토막 나면서 전환점 마련이 절실해졌다. 운용업계는 단순히 가치주 쇠퇴라는 시장환경 변화 외에도 신영자산운용의 구조적인 한계를 장기부진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더벨은 신영자산운용의 현재 상황과 재도약을 위한 해결과제를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6월 28일 14:5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신영자산운용의 운용규모가 지속적으로 감소한 주요 원인으로 기존 장기투자 고객 관리에 치중한 보수적인 운영이 지적된다. 신규고객 유입에 실패하면서 운용규모 반등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평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영금융그룹은 허 대표 재신임을 선택했다. 하지만 허 대표의 가치투자 철학을 지지하는 기존고객들이 신뢰를 잃고 이탈하고 있는데다 뚜렷한 후임자 찾기에도 실패하고 있어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기존고객 중심 보수적 운영…신영증권 ‘패밀리오피스’ 핵심 기반
신영자산운용은 2017년 이후 가치주와 배당주 침체로 ‘신영밸류고배당’과 ‘신영마라톤’의 수익률 부진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다른 하우스들과는 달리 기존 전략과 차별화된 신규상품을 내놓는 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타깃데이트펀드(TDF)를 비롯해 연금 자금을 대상으로 한 다변화된 전략의 상품들이 출시되기 시작한 것이 불과 지난해부터다.
운용업계는 신영자산운용의 이런 보수적인 하우스 운영이 신규고객 유입보다는 기존고객 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신영금융그룹의 전반적인 기조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신영자산운용 지분 85.9%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신영증권은 대부분 증권사와 달리 자산관리부문의 수익 기여도가 높은 독특한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3월 결산법인 신영증권의 지난해(2021년 4월 1일~2022년 3월 31일) 연결 기준 수수료수익은 1917억원으로 이중 집합투자증권취급수수료(162억원), 자산관리수수료(88억원), 신탁보수(332억원) 등을 포함한 자산관리부문은 인수 및 주선수수료(218억원) 등을 반영한 IB부문보다 전반적으로 큰 규모를 보였다.
신영증권 자산관리 비즈니스의 중심에는 APEX패밀리오피스가 있다. 신영증권은 2012년 4월 APEX패밀리오피스를 출범시킨 이후 고액자산가 고객 전담채널의 성공 사례로 키워내는 데 성공했다. APEX패밀리오피스 고객들로 조직된 투자클럽은 풍부한 자금력을 보유하고 있어 국내 일반사모운용사들이 유치에 사활을 거는 대표적인 LP 집단이다. 신영증권이 최근 신탁(패밀리헤리티지) 비즈니스에 힘을 실을 수 있었던 것도 상속과 증여 등 자산승계에 관심이 많은 이들 고객이 기반이 됐기 때문이다.
운용업계는 APEX패밀리오피스가 성장할 수 있었던 핵심 동력으로 국내 가치투자 1세대 매니저로 APEX패밀리오피스 태동 당시 전성기를 구가했던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를 꼽는다. 허 대표는 1996년 신영자산운용 창립멤버로 합류해 자산운용본부장(CIO)으로 ‘신영밸류고배당’과 ‘신영마라톤’ 등 국내 대표 가치주·배당주 펀드를 잇따라 히트시키면서 입지전적인 위치에 올랐다.
이들 펀드는 2010년대 초반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장세 이후 가치주 장세가 펼쳐지면서 2010년대 중반까지 국내 주식형펀드 수익률 상위에 줄곧 이름을 올렸다. APEX패밀리오피스 고객은 이들 펀드에 수익자로 참여해 많은 수익을 거머쥐었으며 반대로 이들 펀드에 먼저 가입한 고객이 수익 경험을 바탕으로 APEX패밀리오피스 고객으로 유입되는 선순환이 일어나기도 했다.
◇장기투자 고객 핵심 수익자…허남권 대표 재신임 ‘딜레마’
가치주 장세가 종료되면서 이들 펀드 수익률은 현재까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펀드에 남아 장기투자하고 있는 고객이 많다. 허 대표의 가치투자 철학을 지지하는 고객들로 높은 충성도를 보이고 있다. 신규고객 유입이 더디면서 이들 장기투자 고객은 펀드의 핵심 수익자로 자리잡았다.
신영자산운용의 펀드 판매비중을 보더라도 신영증권과의 끈끈한 관계가 드러난다. 지난해말 신영자산운용 전체 펀드 설정잔액(3조4936억원) 중 신영증권 설정잔액은 6044억원이다. 비중으로 따지면 17%로 전체 판매사 중 가장 높다. 신영증권은 2017년부터 신영자산운용의 최다 판매사 자리를 유지해왔다. 신영자산운용이 증권사뿐 아니라 다수 은행까지 판매사로 확보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신영증권의 영향력은 상당한 것이다.
허 대표의 과거 상품 출시 기조를 보더라도 신규고객보다는 기존고객에 친화적인 행보가 많았다. 허 대표는 ‘신영밸류고배당’에서 부진한 성과가 장기간 이어지자 2020년 들어 성과보수를 도입한 자펀드를 별도로 만들어 기존 장기투자 고객의 비용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신영밸류고배당’이 운용보수 0.39%만 받는다면 ‘신영밸류고배당성과보수’는 운용보수가 0.15%인 대신 5% 초과수익에 대해 10%의 성과보수를 매겨 수익자의 선택지를 넓혀주는 방법이었다.
다만 기존고객 관리에 치중한 나머지 반전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평가도 있다. 운용규모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하우스 수익성에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14년말 9조원까지 치솟았던 신영자산운용 전체 펀드설정액은 지난해말 3조5000억원까지 빠졌다. 수익률이 소폭 회복한 구간에도 기존고객의 환매가 이어지는데다 신규 라인업인 ‘신영TDF’ 시리즈나 ‘신영SHAI’ 시리즈에 신규고객 유입이 더뎌 장기 부진에 따른 근본적인 신뢰 저하를 지적하는 시선이 많다.
그럼에도 신영금융그룹의 선택은 허 대표에 대한 재신임이었다. 2017년 5월 대표이사(사장·CEO)에 선임된 허 대표는 2019년 5월 한 차례 연임에 성공한 뒤 지난달말로 임기가 종료됐지만 최근 재계약하면서 신영자산운용을 계속 이끌게 됐다.
하지만 신영금융그룹은 여전히 딜레마로 고민하는 상황이다. 이번 허 대표 재신임도 과거와 달리 적극적인 지지가 바탕이 된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신영금융그룹 일각에서 세대교체의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뚜렷한 후임자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 운용업계의 전언이다. ‘허남권=신영자산운용’의 이미지가 여전히 강한 상황에서 성급한 수장 교체는 하우스 정체성마저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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