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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보이즈와 티코 [thebell note]

허인혜 기자공개 2022-09-08 07:43:52

이 기사는 2022년 09월 06일 07:5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옛 유머집에는 꼭 '티코'에 관한 농담이 실렸다. 창밖으로 손을 뻗은 동승자에게 '날아갈 수 있으니 손을 넣으라'는 경고를 했다던가, 운전자는 코너링 때 손을 짚고 돌아야하니 꼭 장갑을 끼라던가. 요지는 경차 중에서도 작은 티코를 향한 조롱이다.

미국에서는 오랫동안 현대차가 티코처럼 농담거리로 쓰였다. 2002년 방영된 미드 '프렌즈'에서는 친구 여럿이 로또 당첨을 꿈꿀 때 참여하지 않는 한명을 두고 "다들 당첨돼서 헬기타고 다닐 때 너 혼자 현대차나 타고 다닐거야?"라고 핀잔을 주는 장면이 나온다. 현대차는 구두쇠나 타는 차라는 힐난이다.

그랬던 현대차와 기아의 이미지도 고급차 '제네시스'를 타고 변했다. 제네시스가 미국에서 첫 시동을 건 지 1년만에 프리미엄 브랜드 품질조사 1위에 올랐다. 만족도와 재구매 희망률 등을 하나씩 석권하며 명실공히한 '톱 티어' 차가 됐다. 현대차를 놀렸던 미드에는 PPL로 통쾌하게 복수했다. 요즘 미드에서는 슈퍼 히어로가 현대차를 탄다.

신분상승을 타고 판매량만 오르면 좋을텐데 또 다른 수치가 늘어 골치다. 미국 내 현대·기아차의 도난 횟수다.

lA에서만 올해 1634대의 현대·기아차가 도난당했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85% 급증했다. 전체 차량 절도 범죄 증가량의 75%가 현대·기아차 사례다. 시카고에서도 한달 보름 만에 642건의 현대·기아차 도난 사례가 접수됐다. 범죄 지역도 광범위하다.

원인은 '기아 보이즈(KIA boyz)'의 유행이다. 최근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 현대·기아차를 훔쳐 인증하는 범죄 놀이가 번지면서 도난 사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기아 보이즈를 해시태그로 단 영상들은 현대·기아차 중 도난 방지 장치인 엔진 이모빌라이저가 없는 차량을 골라 터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 방법으로 차를 훔친 절도범들이 SNS에서 절도법을 설파하면서 또 다른 기아 보이즈를 만들어 내고 있다.

완벽한 차는 없다. 결함에 따른 리콜과 부품 제공은 잦았던 일이다. 현대·기아차 미국법인도 해결책으로 도난 방지 장치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SNS 홍수의 시대에 부품 제공이라는 단순한 해결책을 내민 점은 못내 아쉽다. 차에 결함이 생긴 일과 그 결함이 놀림감이 되는 것, 놀리는 일 자체가 유행이 된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 차를 타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는 이미지는 고급 소비재인 자동차로서는 치명타다. 현대차가 기아 보이즈를 우스갯소리로 넘겨서는 안될 이유다. 소셜 미디어 속 유행도 얼마나 번질 지 종잡을 수 없다.

현대차는 1986년 처음으로 미국 법인을 냈다. "현대차나 탈래?"에서 히어로의 차가 되기까지 와신상담의 세월이 길었다. 긴 시간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가 기아 보이즈로 웃음거리가 된다면 퍽 속상할 것이다. '창문을 못 여는 비극'이 현대차 차주에게도 되풀이될지 모른다. 과거 티코 차주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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