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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금융' 왜 우리만 반대로 가나 [thebell note]

이종혜 기자공개 2022-09-14 08:15:13

이 기사는 2022년 09월 13일 07: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혁신의 심장' 실리콘밸리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창업자들 때문일까. 아니다. 그보다 앞서 미국 정부의 탄탄한 지원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체제에서 구소련과 패권 경쟁을 벌이던 국방부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고자 마이크로파(극초단파), 반도체 개발회사들이 실리콘밸리로 모여들었다. 당시 실리콘밸리의 최대 고용주는 록히드마틴의 전신인 방위사업체 '록히드미사일'이었다. 미국 벤처기업 1호인 휴렛패커드(HP)도 6·25 전쟁 당시 미군에 레이더와 전자제품을 납품하며 사업을 키웠다. 벤처캐피탈(VC)이 큰손이 된 것은 냉전 이후 민간의 정보기술(IT)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다.

한국의 벤처생태계 역시 8할은 정부의 지원 덕에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산업을 육성하는 것보다는 구조를 개혁하는 데 방점을 찍으면서 그 한계가 드러났다. 외환위기 이후 벤처기업은 재벌 대기업을 대체할 주역 또는 청년실업 문제를 타개할 수단으로만 치부됐다. 지금도 여전히 육성해야 할 산업이라기보다는 '스타트업이 고용증가율을 3배 높였다'는 수치들만 강조되곤 한다.

이런 배경에서 외형적으로만 빠르게 성장한 기업들이 주목을 받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국내 유니콘 기업 23곳 중 18곳(80%)이 이커머스, 플랫폼 기업이다. 이 때문에 최근 벤처업계는 주식시장보다는 '코인시장'에 비유되곤 한다. 급격히 변하고 성장했지만 생존율은 낮다는 의미다. 정부는 "초격차 기업을 육성하겠다"고 말하지만 실제 반도체나 로봇, 인공지능(AI) 등 딥테크 기업을 키울 장기적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민간 위주의 벤처생태계 조성'이 강요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갖춰야 할 신기술, 신산업 육성의 토대는 마련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모펀드 역할을 해온 모태펀드의 예산은 축소됐고 연기금, 공제회 등의 출자예산도 줄어들 전망이다.

세계적으로 정책금융이 주도하는 시대가 다시 열리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라는 외부의 적이 부상하면서 실리콘밸리에서는 딥테크와 국방부의 밀월관계도 재개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미국 육군에 10년간 증강현실(AR) 헤드셋을 공급하는 220억달러 계약을 체결했다.

구글도 군 기관 정보를 AI 기반 클라우드로 통합하는 시스템을 수주하기 위해 분주하다. 유럽도 모태펀드 역할을 하는 유럽투자기금(EIF)을 통해 딥테크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를 만들고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정책금융을 레버리지 삼아 민간투자를 유도하는 구조가 추진되고 있다. 왜 우리만 반대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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