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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에게 '의료사업'이란 [thebell desk]

최은진 제약바이오부 차장공개 2022-09-26 07:16:24

이 기사는 2022년 09월 23일 07:4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그룹에서 의료사업은 '사업'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폐암이라는 가족력 탓에 오너일가에게 건강은 필생의 과업과도 같았다. '암을 고칠 수만 있다면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다'는 고 이병철 회장의 병마 중 어록은 후대에 깊은 울림을 준다.

고 이건희 회장의 각별한 건강관리도 유명하다. 호흡기 질환 탓에 겨울엔 따뜻한 나라에서 타지생활을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병마는 피할 수 없었다. 이병철 회장은 위암 판정 후 10년 뒤 폐암으로 작고했다. 이건희 회장 역시 폐암의 일종인 림프절암으로 투병했고 급성 심근경색으로 6년간 병상에 있다 별세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삼성을 글로벌 톱티어로 이끈 걸출한 인물들도 '건강'은 정복할 수 없는 난제였다. 그래서 의료사업은 오너일가에게 있어 단지 사업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

이병철 회장은 종합병원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고려병원(강북삼성병원)을 세웠고 이건희 회장은 세계 일류 병원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삼성서울병원을 설립했다. 창업주에 이어 후계자까지 일관성 있게 추진한 의료사업은 불모지와도 같은 대한민국에 의료 인프라를 만든 건 물론 질적 역량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계기였다.

특히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2008년 이건희 회장이 만든 국내 첫 '암병원'은 암정복의 길을 한발짝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삼성서울병원이 글로벌 암치료분야에서 처음으로 국내 1위 입지를 차지한 것도 그 덕분이다.

하지만 선대회장들의 의료사업 철학이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을까. 암 이외의 분야에선 아산병원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2011년 '폐암만 1등'이라는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평가에 이건희 회장이 격노해 조직 물갈이를 했던 일화를 떠올리면 선대회장의 꿈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 아산병원은 내분비·비뇨기·소화기·신경·호흡기·심장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국내 1위를 석권했고 서울대학교병원, 세브란스병원 등도 약진하고 있다.

이병철·이건희 회장은 직접 의료재단의 등기임원에 올라 병원일을 챙겼다. 철학이 확고하니 질책도 있었지만 과감한 투자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관행적인 계열사 기부금과 건강검진사업 밀어주기만 있을 뿐 그 이상의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다.

2015년 메르스 사태로 대국민 사과를 한 게 삼성그룹 의료사업의 마지막 이슈라는 점도 유감이다. 숫자에만 익숙한 삼성 고위임원들이 병원운영의 수뇌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유야 어떻든 삼성그룹에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의료사업이 중요해 진 시점에 이렇다 할 철학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우려되는 지점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병원과 연결된 그 어떤 사업고리도 없다. 현대중공업그룹이 아산병원을 중심으로 신약개발 및 투자 전진기지를 마련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의료사업은 관리의 영역이 아니다. 명확한 철학과 꾸준한 투자가 필요하다. 진화하는 의료환경에 기민하게 적응하는 동시에 변화를 도모해야 그나마 도태되지 않는다. 삼성에 있어 의료사업이란 뭘까, 이 질문에 그 누가 답을 내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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