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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M&A 전략을 묻다]증설? 신사업? DB하이텍의 딜레마와 선택⑧매각 안 한다면…신사업 진출, 12인치 파운드리 진입 가능성도

김혜란 기자공개 2022-11-21 12:53:26

[편집자주]

반도체 기업 간 인수·합병(M&A)은 다른 섹터에서 이뤄지는 딜에 비해 난이도가 높다. 장벽 높은 반독점심사, 조 단위에 이르는 위약금. 이런 특성 탓에 원매자가 인수 의지가 있어도 함부로 뛰어들기가 어렵다. 그러나 M&A가 취약한 국내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는 데 매우 유리한 전략임은 분명하다. 'K-반도체' 역시 해외 기업 인수를 통해 생태계를 넓혀왔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전쟁'이 심화되며 M&A 환경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선택할 전략과 성공 가능성을 가늠해 본다.

이 기사는 2022년 11월 16일 16:2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8인치(200㎜) 웨이퍼(반도체 원판) 기반 파운드리(위탁생산) DB하이텍은 M&A 시장에서 꾸준히 이름이 언급되는 기업 중 하나다. 매각설이 제기되고, 그때마다 DB그룹이 부인하는 상황이 반복돼왔다.

매각 가능성을 제기하는 쪽에선 투자 여력이 충분하지 않은 DB하이텍이 10년 후를 장담할 수 없는 8인치 파운드리 사업만 갖고 버틸 수 있겠냐고 주장한다. 8인치 팹(Fab·공장)은 구형이라 증설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고, 그렇다고 진화한 12인치(300㎜) 영역으로 진출하기엔 어마어마한 투자금을 감당해야 한다. 결국 DB그룹이 매각설을 잠재우려면 10년 넘어까지 DB하이텍을 어떻게 이끌고 갈지에 대한 확실한 비전과 플랜을 시장에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DB하이텍 앞에는 여러 선택지가 있다. 업계에서는 M&A를 통해 신사업을 추가해 포트폴리오를 넓히거나 중장기적으로 12인치 파운드리로 전환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를 위해 브랜드사업부(시스템 반도체 설계 사업 담당) 분할·매각 등을 통한 사업구조 재편을 시도하는 것도 검토할만한 시나리오다. 인수 측으로든, 매도자 입장이든 앞으로도 M&A 시장에서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매각 가능성, 얼마나 되나

DB하이텍이 다른 기업을 투자·인수해 현재까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사례는 2008년 투자한 전력반도체 팹리스 웰랑뿐이다. 지금까지 DB하이텍은 투자은행(IB) 시장에서 바이어(buyer) 아닌 셀러(Seller) 쪽으로 인식됐다.

DB그룹이 "DB하이텍 매각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부인했음에도 여전히 IB 업계를 중심으로 매각설이 나오는 것은 8인치 사업의 한계, 지배구조 개편 문제가 얽혀 있는 탓이다.

지금 8인치 공정도 언젠가는 12인치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데, 과거 유동성 문제로 매각 위기에 내몰렸던 DB그룹이 또다시 파운드리에 수조원을 쏟아부을 수 있겠냐는 게 매각 가능성을 제기하는 쪽의 주장이다. 또 지배구조 개편 과제를 풀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DB하이텍을 지배하는 DB Inc.가 작년 말 기준으로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요건을 갖추면서 어떤 형태로든 손을 써야 하는 상황에 놓인 건 사실이다. DB Inc.가 DB하이텍 지분을 기존 12.42%에서 30%까지 더 사거나 부채를 늘려 DB하이텍의 장부가가 DB Inc. 자산총액 50% 안에 들어오도록 조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지분 매입에는 수천억원이 들고 부채를 늘리면 재무건전성이 나빠진다. IB업계에서 매각을 타진해온 이유다.

DB그룹이 파운드리 사업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해도 설계 사업부에 대해선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업계 일각에서 최근 분할을 추진하다 잠정 중단한 브랜드사업부 매각 가능성을 제기한다. 업계 관계자는 "브랜드사업부의 매출 규모가 2000억~3000억원 정도는 되나 영업이익률이 40%대에 달하는 파운드리에 비해 수익성이 낮아 (DB하이텍이) 매각하고 싶어 한다"고 주장했다. 설계와 생산 부문을 완전히 분리하면 파운드리 고객사의 기술 유출 우려를 불식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매각 시나리오가 현실화돼도 실제 성사는 장담할 수 없다. 파운드리든, 팹리스든 매물로 나와도 국가의 반도체 자산을 해외에 넘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국내 기업이 바이어로 소화해줘야 한다. 자금력 있는 LX세미콘이 최근 반도체 M&A 시장 큰손으로 부각되고 있으나, 시너지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고민해봐야 한다.

매각은 IB업계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가능성과 시나리오일 뿐이다. 김준기 창업 회장은 반도체 사업에 대한 애착과 의지가 강하고 여전히 사업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직은 여러 여건상 대대적 사업 개편을 실행에 옮기기란 쉽지 않다는 분석에 지금은 힘이 실리고 있다.
DB하이텍 경기도 부천공장(Fab1) 전경

◇M&A 통한 신사업 진출 가능성은?

DB그룹이 아무리 부담이 되더라도 반도체 사업을 계속 끌고 나가겠다는 의지와 결단이 확실하다면, 8인치 파운드리 성장성의 한계를 어떻게 넘을지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시장에 보여줘야 한다.

업계에선 DB하이텍의 충북 음성 상우 공장이 있는 11만7000평 부지를 활용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이 부지에는 아직 개발하지 않은 공터가 많아 여기에 8인치 팹을 증설하거나 중장기적으로 12인치 공장도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12인치 사업을 고민한다면 현재 반도체 쇼티지(공급부족) 문제가 심각한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등 차량용 반도체 생산라인을 검토할 가능성이 크다. MCU는 주로 12인치 28나노미터~40나노미터(nm,1㎚는 10억분의 1m) 공정에서 생산된다.

차량용 반도체 설계를 하는 LX세미콘이나 현대자동차 등을 고객사로 확보하고 팹 건설에 들어간다면 자금 부담도 일부는 덜 수 있다. 팹리스는 안정적인 생산이 중요한 만큼 파운드리에 설비 투자를 단행하는 사례는 많다. DB하이텍의 현금이 올해 연말 기준으로 1조원에 가까워질 것으로 점쳐지나 현재 상우 팹에 8인치 실리콘카바이드(SiC) 생산을 테스트하는 작업에 있고 점차 생산라인을 구축해 나가야 해서 자금 나갈 곳이 많다.

아니면 세제혜택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미국 등 해외에서 구형 팹 매물을 찾는 것도 고민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신사업 진출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예상치 못한 불황이 닥친 탓에 8인치든 12인치든 증설 계획이 있어도 투자 시점은 미뤄질 수 있다. 그 사이 기존 포트폴리오 보완, 미래 먹거리 확보 목적으로 M&A를 시도할 수 있다. 앞선 관계자는 "반도체 기업 이슈인 환경 관련 사업 진출을 위해 관련 매물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한 글로벌 IB 임원은 "지금은 8인치 호황이라 DB하이텍이 돈을 너무 잘 벌고 있지만, 지금처럼 증설을 안 한다는 전제로는 3년 뒤가 정점일 것"이라며 "파운드리는 사업을 키우려면 투자를 계속해야 하는데 잘못했다간 부담이 커 그룹 입장에선 계륵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번 돈으로 반도체 연관된 다른 사업을 진출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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