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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M&A 전략을 묻다]'K-소부장' M&A 둘러싼 세 가지 쟁점 보니⑩승계포기 등 상속이슈로 매물 쏟아져, 소부장 간 합병 가능성도

김혜란 기자공개 2022-11-22 13:02:15

[편집자주]

반도체 기업 간 인수·합병(M&A)은 다른 섹터에서 이뤄지는 딜에 비해 난이도가 높다. 장벽 높은 반독점심사, 조 단위에 이르는 위약금. 이런 특성 탓에 원매자가 인수 의지가 있어도 함부로 뛰어들기가 어렵다. 그러나 M&A가 취약한 국내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는 데 매우 유리한 전략임은 분명하다. 'K-반도체' 역시 해외 기업 인수를 통해 생태계를 넓혀왔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전쟁'이 심화되며 M&A 환경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선택할 전략과 성공 가능성을 가늠해 본다.

이 기사는 2022년 11월 18일 14:1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메모리든 시스템 반도체든 반도체 산업은 한 덩어리의 밸류체인 클러스터로 존재한다. 국내 반도체 산업의 양대 축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소재·부품·장비(소부장)를 외부에서 조달하지 않으면 사업을 해나갈 수가 없다.

반도체 밸류체인 내 중요성이 큰 만큼 소부장은 M&A 시장에서도 전략적 투자자(SI)나 재무적 투자자(FI)들이 꾸준히 관심을 갖는 섹터다. 최근에는 창업세대의 은퇴로 매물화된 소부장 기업들이 많다. 다만 규모의 경제를 갖추지 못한 탓에 M&A를 통한 덩치 불리기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1세대, 상속 대신 매각 선택…매물로 쏟아진다

국내 반도체 산업은 1980년대 삼성전자가 뛰어들면서 생태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국내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의 역사도 이쯤에서 출발했다. 당시 창업자들은 주로 1950년대 후반생이다. 꽤 시간이 흐른 만큼 지금은 1세대들이 은퇴할 시점이라 승계냐, 매각이냐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다.

반도체 장비 기업을 인수한 한 사모펀드(PEF) 운용사 대표는 "최근에 매물로 나온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을 보면 상속 이슈로 매물화되는 경우가 많다"며 "2세가 하이테크 산업에 관심이 없어 1세대들이 물려줄 수 없을 때 매각을 선택하는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PEF 운용사들이 과거 인수했다가 펀드 만기시점이 도래해 엑시트(투자금 회수) 하는 과정에서 매물화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국내 반도체 장비사 중 매각을 원하는 회사가 많으나 대부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의존도가 커 매각 추진 사실이 알려질 경우 (삼성전자 등의 반발로) 딜이 무산되는 경우가 많아 물밑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논의가 이뤄진다"며 "HL그룹과 두산, 태광 등 굵직한 기업과 PEF 운용사들이 잠재적 인수자"라고 설명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ASML 본사에서 피터 베닝크(Peter Wennink) ASML CEO, 마틴 반 덴 브링크(Martin van den Brink) ASML CTO 등과 함께 반도체 장비를 점검하는 모습.

◇경기 불황, 밸류에이션엔 어떤 영향?

올해 하반기부터 불어닥친 반도체 불황은 내년까지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불황일 때는 반도체 섹터 M&A가 활성화될까 아니면 오히려 주춤해질까. 밸류에이션 책정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분명한 점은 내년까지 메모리와 비메모리 불황이 지속되면 소부장 기업들도 수익성 저하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매도자 입장에선 경기 침체 탓에 실적이 꺾인 상태라면 매각 시기를 미루는 게 낫다. 기술력을 갖춘 강소기업의 경우 대외변수 탓에 일시적으로 어려운 것일 뿐 분명히 회복되기 때문에 '숫자'를 만들어놓고 인수자와 협상에 나서는 게 제값 받기가 유리하다. 불황일 때는 디밸류에이션(평가절하)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말하면 인수자 입장에선 내년 이후 미래가치를 내다보고 인수가를 제시한다면 경쟁사를 누르고 강소기업을 인수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앞선 PEF 운용사 대표는 "올해와 내년은 예상치 못한 경기 침체 탓에 실적이 부진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작년 실적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할 경우 딜이 성사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대형 회계법인에서 M&A를 전문으로 하는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하반기부터 고전하기 시작하면서 그 영향이 소부장까지 미칠 것"이라며 "중소형 소부장들이 내년 영업자체가 어려워져 M&A든 파이낸싱이든 기업금융 분야에서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준비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몇 년 동안은 해외 SI나 FI가 국내 반도체 소부장 회사들을 인수하고 싶다며 알아봐달란 요청이 많았으나 당시엔 막상 소개할 만한 딜이 없었다"며 "잠재적 바이어는 다수 있어도 반도체 호황이라 (소부장 기업들이) 굳이 매각할 생각이 없었으나 올해부터 분위기가 달라진 만큼 내년에는 매물로 나올 기업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소부장간 합병으로 '규모의 경제' 키워라

자금력 있는 SI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에 역량 있는 FI가 소부장 기업을 인수한다면 기업 입장에서도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전체 생태계 육성 관점에서 보면 규모의 경제를 M&A의 목적으로 두고 이뤄지는 소부장 기업 간 합병이 중요하다.

국내 소부장 기업들은 상당히 영세하다. 장비사만 놓고 봐도 미국의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와 램리서치, KLA, 일본의 도쿄일렉트론, 네덜란드의 ASML 등과 견줄만한 규모의 기업이 국내에는 없다. 예를 들어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가 한 분기당 벌어들이는 돈이 6조원이 넘는 데 반해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장비사 원익IPS는 연간 매출 1조원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규모의 경제가 안 되면 성장이 정체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소부장 핵심은 오랜 기간 상당한 자금을 쏟아부어 연구개발(R&D)를 해내 첨단 장비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소부장 기업들은 영세해 R&D에 집중하기 힘들다. 규모가 커야 벌어들이는 돈으로 R&D에 재투자할 수 있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세계적 반도체 기업을 배출했음에도 이를 뒷받침할 만큼 규모있는 글로벌 장비사를 만들지 못했다"며 "이제부터라도 장비사를 합병시켜 R&D센터를 짓고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도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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