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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인삼 농사'식 벤처투자

유정화 기자공개 2024-10-07 09:01:18

이 기사는 2024년 10월 04일 07:5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벤처캐피탈(VC) 업무를 소개할 때 인삼 농사와 비유하곤 합니다. 초기 단계 스타트업도 인삼을 재배하듯 꾸준히 지원할 수 있는 인내심을 가져야 성공적인 엑시트(투자금 회수)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한 벤처캐피탈(VC) 심사역에게 들은 말이다. 인삼을 재배하는 데는 8년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전 인삼을 수확한 땅은 2년간의 꼼꼼한 토양관리가 필요하다. 재배 기간이 길고 까다로운 탓에 씨를 뿌리고 상급으로 꼽히는 6년근 인삼을 기르기 위해 꾸준한 관리를 해야한다.

VC도 하나의 블라인드 펀드를 결성하면 통상 8년 이상을 운용한다. 초기 4년간 유망한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를 지원하고 남은 기간 사후 관리를 통해 성공을 돕는다. VC 업무는 장기적인 투자와 높은 불확실성을 수반하는 인삼 농사와 크게 닮아 있다.

그러나 올 들어 벤처투자 행태는 '인삼 농사'식 투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VC산업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초기 투자가 크게 줄었다.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초기 투자 비중은 지난해 말 24.6%에서 올 8월 19.6%로 하락했다. 대신 후기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말 37.8%에서 지난 8월 44.9%로 높아졌다.

위험도 높은 초기 스타트업 투자를 피하고 성장 궤도에 올라선 기업에 VC 투자 절반 가까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벤처투자가 모험 보다 안전을 선호하는 모습이다. 창업자의 열정, 능력보다도 매출, 손익처럼 눈에 보이는 숫자가 우선시된다. 스타트업도 투자 유치를 위해 안정적인 손익 관리를 중요시하고 있다.

이같은 경향은 유동성 파티가 끝나고 시작된 벤처 혹한기 여파가 뒤늦게 초기 영역까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대규모 투자금을 유치한 스타트업들의 성장이 정체됐고 VC 입장에서는 투자 결실을 맺지 못하면서 초기 투자에 대한 신중론에 힘이 실렸다.

투자할 만한 스타트업 자체가 줄었다는 의견도 있다. 인공지능(AI) 주도로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연구개발(R&D) 비용이 늘어나 신규 창업의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K-벤처신화를 이룬 카카오, 배달의민족, 쿠팡의 뒤를 잇는 스타트업을 발굴하기 어려워진 환경이다.

모험자본을 운용하는 VC의 역할이 중요해진 시점, 인삼 농사를 떠올려 볼 만 하다. 인삼은 자라면서 매년 영양 성분이 풍부해진다고 한다. 2년근 인삼 보다 6년근 인삼이 비싼 이유다. 긴호흡으로 성장 잠재력이 있는 초기 기업에 인내심과 책임감을 갖고 투자할 때 매출을 내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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