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12월 05일 07시02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오너 3세의 현재 직급 다음이 임원이었을 뿐 초고속 승진은 아닙니다."주요 그룹의 정기 인사가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다. 업황 악화로 시름을 앓고 있는 유통사들도 정기 인사를 통해 전열을 재정비하는 분위기였다. 이 중 한 유통사 오너 딸의 임원 승진 이슈에 언론 담당 조직이 공식적으로 내놓은 답변이다. 동시에 이 회사의 장남은 1년 만에 상무에서 전무를 달았다. 이래저래 '초고속'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유 모를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다가 3여 년 전 코스닥 분야를 출입할 때 만난 한 임원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동갑내기였던 이사는 입사 후 해외 근무뿐 아니라 회사의 지원을 받아 MBA를 수료하고 상당히 빠르게 임원 자리에 올랐다. 오너를 보좌하면서 사실상 비서실장 역할을 했다.
가볍게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소속 기업의 2세 승계 계획에 대해 물었다. 오너에게는 해외에서 대학을 다니는 20대 초반의 아들이 있었는데 승계를 원하지 않는 눈치였다. 이 임원은 아들과 소통하면서 마음을 달래고 경영자로 만들기 위해 돕는 역할도 했다.
역할 범위가 너무 큰 것이 아닌지에 대해 물었고 예상 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오너의 조카였다. 회사가 직원에게 제공할 수 있는 혜택을 다 누린 비결이 궁금했는데 단 번에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작은 기업일수록 2세에게 더 빨리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신입부터 시작하면 오히려 직원들 사이에서 무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초고속 승진을 통해 '계급장'을 부여해야 범접하기 어려운 아우라를 품으며 비로소 후계자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 임원이 받는 특혜에 대한 내부 불만을 잠재운 것도 일반 직원과 다른 '클래스'임을 알린 덕분이다.
규모가 있는 유통가와 중소기업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최근 유통가 오너 자녀들의 승진 흐름과 교차되는 지점은 분명히 있다. '2025년 정기 인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능력이 검증 안된 어린 자녀들을 빠르게 승진 시킨 곳이 많다. 위 이사의 논리를 대입해 보면 초고속 승진으로 자녀의 격을 높여 승계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반면 유임 후 역할을 확대한 곳도 있다. 2024년 인사에서 미래 성장 동력 발굴 담당 명목으로 임원 배지를 줬다면 이제 본업까지 맡겼다. 자녀가 중장기적인 호흡을 가지고 경영을 배울 수 있도록 초고속 승진과 또 다른 판을 깔아줬다. 이러나저러나 일반 직원 입장에서는 특혜다.
오너가의 초고속 승진은 늘 비판이 따른다. 부모 세대가 빠른 승진을 통해 자녀의 입지를 빠르게 굳히는 게 나은지 신입부터 시작해 경영 수업을 오래 받는 게 맞는지에 대해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다. 하지만 그들이 기업이 지속 가능한 경영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것은 필수다.
초고속 승진을 통해 오너 자녀들이 쓰지 않을 수 없는 '왕관'을 어차피 썼다면 무게를 즐기기를 바란다. 다만 내년에는 오너가의 초고속 승진 소식보다는 경영 성과와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 형성된 미담(美談)이 더 많이 들렸으면 좋겠다. 부모가 만들어준 자리에 걸맞게 품격을 올리는 것은 이제 본인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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