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크립토 생크션 리스크]'크립토 천국' 싱가포르의 변화, 강해지는 규제현지 금융당국, 관리대상 사업자 확대…페이퍼컴퍼니 차단
노윤주 기자공개 2024-12-31 07:29:31
[편집자주]
아시아 금융허브로 불리는 홍콩과 싱가포르의 경쟁이 거세다. 이미 전통금융에서 맞붙은 이들의 다음 결전지는 가상자산이다. 홍콩이 중국 본토 리스크로 흔들리는 사이 싱가포르가 상당 규모의 가상자산 자본을 흡수했다. 이후 무분별한 진입으로 자금세탁 리스크가 불거지자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홍콩은 뒤늦게 크립토 시장에 문호를 개방하며 역전을 노리는 중이다. 중국 본토의 의도도 반영된 것으로 관측된다. 가상자산을 대하는 아시아 금융 허브의 역동적인 규제 변화 상황을 알아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2월 26일 10: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적극적으로 가상자산 산업을 육성하던 싱가포르는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과거 포용적인 가상자산 규제 프레임워크를 빠르게 만들면서 관련 기업을 유치했던 국가다. 하지만 2022년 이후 자금세탁방지, 투자자보호 등 문제가 대두되자 규제 정책 기조를 보수적으로 바꿨다.싱가포르서는 가상자산 관련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자를 '디지털 결제 토큰(DPT) 서비스 제공자'라고 부른다. 현지 규제당국은 해외 영업 기업도 규제 대상에 포함한 데 이어 올해부터는 지갑사업자까지 여기에 포함시켰다.
DPT 적용 사업자 유형을 확대하며 기업 규제를 나날이 강화하는 모양새다. 이제 단순히 코인 발행 목적만 가지고 싱가포르에 법인을 설립하는 건 어려워 보인다. 현지에 팀을 배치하고 '진짜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시아 금융허브' 이미지 살리자…자금세탁방지 총력
싱가포르는 2019년 결제서비스법(PSA)을 제정하며 가상자산을 제도권에 편입시켰다. IT 기술 발전, 핀테크 산업의 확대가 제도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주관부서인 싱가포르통화청(MAS)은 소비자의 결제 수단, 서비스 유형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관련 기업을 규제하기 위해 PSA를 마련했다. 분법돼 있던 '결제시스템에 관한 법률'과 '환전 및 송금업에 대한 법률'을 통합한 법이다.
PSA에서는 가상자산을 DPT라 부른다. 법정화폐와 가치를 연동하지 않고, 가치를 디지털로 표시하면서 결제 수단으로 사용 가능한 토큰이라고 정의했다. 이를 취급하는 가상자산 사업자는 라이선스를 획득해야 사업이 가능하다.
싱가포르 가상자산 라이선스는 △자금교환업 △표준결제기관 △주요결제기관 세 종류로 나뉜다. 자금교환업은 단순 환전업을 영위하는 기업에만 해당된다. 이에 가상자산 기업들은 사업 규모에 따라 표준결제기관 또는 주요결제기관 라이선스를 취득해야 한다.
표준결제기관 라이선스는 제공 중인 서비스의 월평균 거래액이 300만싱가포르달러(약 32억2000만원) 미만인 기업에 해당한다. 기본 자본금은 10만싱가포르달러(약 1억원)를 요구한다. 대표이사가 싱가포르 국적자이거나, 1명의 현지인 등기 임원, 1명의 취업비자 소지 임원이 재직해야 한다.
주요결제기관 라이선스는 서비스 월평균 거래액이 300만싱가포르달러를 초과한 기업들이 취득해야 한다. 업비트 싱가포르, 오케이엑스 등 거래소들은 모두 이 유형의 라이선스를 받았다. 자본금 20만싱가포르달러(약 2억6860만원)와 동일한 규모의 최소 담보가 요구된다.
2022년부터 MAS는 법인만 싱가포르에 두고 해외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기업도 규제 대상에 포함했다. 테라폼랩스, 쓰리에로우캐피탈 등 싱가포르 거점 가상자산 기업들이 파산하면서 막대한 투자자 피해를 낳았기 때문이다. 현지 당국도 페이퍼컴퍼니로 존재하는 곳들을 관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올해 발견된 자금세탁 사건들도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올해 중순 싱가포르 정부는 2019년부터 자금세탁·범죄자금 등으로 입수한 불법 자금이 60억싱가포르달러(약 6조436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특히 작년에만 30억싱가포르달러(약 3조2181억원) 수준 대규모 자금세탁 사태를 적발하기도 했다. 자칫 글로벌 금융 허브 명성에 금이 갈 수 있는 사건이다.
◇크립토 대형기업, 규제 강화에도 싱가포르 도전
올해부터는 더더욱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4월 시행된 PSA 개정안은 수탁형 지갑 서비스, 가상자산 전송용 지갑사업자까지 규제 범위를 확대했다. 또 외부 법률의견서와 감사인의 사전평가 제출을 의무화했다.
특히 라이선스 신청 시 △토큰 상장 절차 △고객 자산 보호 방안 △일별 정산 체계 △월별 잔고증명서 제공 등 구체적인 운영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자금세탁방지(AML)와 테러자금조달방지(CFT) 관련 내부 통제장치도 필수다. MAS는 고객 자산의 90% 이상을 콜드월렛에 보관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개정안에서 MAS는 "디지털자산 생태계 발정을 뒷받침하는 위험관리 가치제안을 가진 신뢰할 수 있는 플레이어들이 싱가포르에 자리잡게 하는 게 법 개정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또 "DPT라고 정의한 가상자산 매매에서 야기되는 소비자 피해 위험을 줄이고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목표하고 있다"고 적었다.
이처럼 강화된 규제에도 글로벌 가상자산 기업들은 싱가포르를 선택하고 있다. 올해 OKX, 업비트, 앵커리지, 비트고, GSR 등 13개사가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반대로 바이낸스처럼 라이선스 취득 포기를 선택한 기업도 있다. 보다 친화적 규제를 내세우는 국가를 선택하는 행보다.
업계는 싱가포르를 배제하고 가상자산 사업을 추진하기는 어렵다고 관측하고 있다. 규제 강화에 따라 사업 비중은 줄일 수 있지만 놓칠 수는 없는 시장이라는 설명이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싱가포르에는 여전히 좋은 창업자들과 막대한 자금이 존재한다"며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긴 어려워진 게 사실이지만 가상자산 사업을 추진하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국가"라고 말했다. 이어 "MAS가 규제와 육성을 동시에 책임지고 있어서 규제 혼선이 없고 포용적 기조로 다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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